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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강용석은 왜 ‘예능인’을 자처하나

등록 2013-06-28 19:35수정 2015-10-23 14:45

전 국회의원이자 현 방송인 강용석은 <썰전>을 통해 기존의 독한 이미지를 많이 떨쳐냈다는 평을 듣는다. 제이티비시 시사토크쇼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 제공
전 국회의원이자 현 방송인 강용석은 <썰전>을 통해 기존의 독한 이미지를 많이 떨쳐냈다는 평을 듣는다. 제이티비시 시사토크쇼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 제공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여성 아나운서 싸잡아 모독하고
고발 일삼다 정치서 퇴출된 그가
잇달아 ‘자폭성 쇼’ 벌이더니
‘예능인 강용석’으로 부활했다
온건 정치인 이미지 포장에 한창…
그에게 방송·정치는 별개가 아니다

“방송활동 하다가 일이 끊긴 연예인이 정치를 했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어요. 역시 정치인이 한 끗발 위다!” <제이티비시>(JTBC) 시사토크쇼 <썰전>의 2부 ‘예능심판자’에서, 이윤석은 뼈가 담긴 말로 강용석을 겨냥했다. 이윤석의 말은 절반만 맞는다. 정계에서 물의를 일으키고도 연예계로 진출해 방송을 하고 있는 정치인도 지금까지는 강용석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강용석이 출연하고 있는 <썰전>은 기묘한 프로그램이다. 예능 제작진이 만들되 프로그램 분류상 ‘교양’의 카테고리에 들어가고,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되 사회는 코미디언 김구라가 보는 이 프로그램은 방송 4개월 만에 6월치 갤럽 조사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14위에 오르며 올해 상반기 방송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김구라와 강용석,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이 매주의 정치계 이슈를 다루는 1부 ‘하드코어 뉴스 깨기, 썰전’의 이슈 파급력만큼은 지상파의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특정 뉴스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각기 다른 분석과 논쟁’을 내세웠지만, 1부의 형식은 논쟁이라기보단 장삼이사들의 술자리 정치방담에 가깝다.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입법안 중 통과되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강용석의 ‘경험담’에, “방송계로 말하자면 프로그램 기획안과 같은 거냐”는 김구라의 ‘애드리브’가 더해지고, “원래 입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는 게 거의 없다”는 이철희 소장의 ‘확인’이 덧붙는 식의 대화 리듬은 전형적인 ‘뒷담화’의 그것이다. 이 뒷담화는 정치판 내부의 고급정보를 흘려줄 수 있는 강용석, 이철희의 존재 덕분에 더 솔깃해진다. 세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둘러앉을 수 있는 삼각형의 테이블, 몸을 숙여 서로를 바라보며 주고받는 고급 정보, <썰전>은 친밀하고도 은근한 태도로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음증을 해소해준다.

프로그램 상승세의 가장 큰 수혜자는 역시 강용석이다. 나락까지 추락했던 대중적 이미지는 어느새 ‘비교적 호감’의 영역까지 올라왔다. <썰전> 2부에 함께 출연중인 아나운서 박지윤은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석희와의 인터뷰에서 “(강용석에 대해) 격한 감정이 있었는데, 요즘은 방송인으로서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용석과 집단모욕죄와 집단손해배상 송사로 얽혔던 여성 아나운서의 호의적인 언급이라니,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강용석의 대중적 이미지가 부드러워지면서, 이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곽병찬 <한겨레> 논설위원은 6월19일치 칼럼 ‘두 편의 시와 두 남자 그리고 성’을 통해 강용석을 방송 진행자로 고용한 유선채널과 종편채널에 화살을 돌리며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강씨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입심이 달리나 지명도가 떨어지나 허접스럽기가 못 미치나, 그런 방송이 있는 한 인생 역전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에스비에스>(SBS) 박상도 아나운서는 “방송은 잊힌 사람, 낯선 사람보다는 욕을 먹고 있어도 많이 알려진 사람을 선호한다”며 방송사가 비판과 논란을 감수하면서도 강용석을 쓰는 것을 막장드라마의 논리에 대입하기도 했다.

이런 도덕적 비판들은 과연 효과가 있을까? <썰전>을 시청하는 사람들 중 절대다수는 강용석이 어떤 사고를 쳐서 정계를 떠났는지 알고도 <썰전>을 본다. 그는 여성 아나운서 직종을 싸잡아 모욕했고, 집단모욕죄로 고소당하자 그것의 법리적 오류를 증명해 보인답시고 코미디언 최효종을 고소했으며, 송사관계로 얽힌 여성 아나운서 100명의 이름과 주소를 인터넷에 유출했다. 스마트폰을 통해 손바닥 안에 인터넷이 들어온 시대라, 이 모든 과정은 전 국민 앞에 생중계되었다. 불과 2~3년 전의 일이다.

‘정치인 강용석’이 보인 일련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동의하느냐 않느냐는, ‘예능인 강용석’의 존재를 용인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한다. 누군가는 비분강개하며 그가 나오는 프로그램 시청을 거부할 것이고, 누군가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문제는 ‘찜찜함에도 불구하고’ 강용석을 용인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 강용석’은 용서할 수 없으나, ‘예능인 강용석’은 재미있고 흥미로우니까. 그 찜찜함을 안고도 판단을 잠시 보류한 채 방송을 보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이들에게 도덕적 문제 제기는 큰 효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예능인 강용석’의 활약이 사실은 ‘정치인 강용석’으로 재기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을, 둘이 사실은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살펴보는 거다.

강용석은 자신의 이미지 전환을 위해 공격적으로 방송을 이용했다. 한창 고소·고발의 이미지로 정치적 생명이 경각에 달했을 때, 그는 자처해서 <티브이엔>(tvN) 토크쇼 <화성인 바이러스>에 ‘고소왕’ 타이틀을 달고 출연했다. 여기에 그가 같은 씨제이이앤엠(CJ E&M) 계열 방송사 <엠넷>(Mnet)의 <슈퍼스타 케이> 예선에 참여해 “아이들을 위해 노래한다”며 못 부르는 노래나마 열창을 하고는 광속으로 탈락하는 해프닝이 더해지자, 강용석이 그간 빚어온 일련의 물의들까지 거대한 기행 쇼의 일부처럼 보이는 초현실적인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더 떠들썩한 쇼를 크게 벌여서 자신의 치부를 덮어버린 셈이다.

자신의 약점이나 치부를 공격적으로 드러내어 농담의 소재로 삼는 것은 정치의 방식이라기보단 예능의 방식에 가깝다. 황기순은 자신의 도박 전력을, 엄용수는 반복된 결혼과 이혼을 언급하며 개그를 던지고, 웃음을 통해 그 약점을 극복한다. 그리고 이 리스트의 끝에 강용석이 있다. 강용석은 윤창중 사건에 대해 말하다 말고 자기도 “집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던 적이 있어서 잘 안다”는 자폭성 발언으로 제 과거를 자조하고,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입조심 특강’을 진행하면 잘할 자신이 있다는 식의 농담을 꺼내 제 과거를 상기시킨다. 그는 지금 ‘정치인 강용석’이 져야 할 과오에 대한 책임을, 정치의 방식이 아닌 예능의 방식을 택함으로써 피하고 있다.

‘예능인 강용석’이 ‘정치인 강용석’의 치부를 덮어준 덕분에, ‘정치인 강용석’은 방송을 통해 정견을 펼칠 기회를 얻었다. 강용석은 <썰전>에서 다른 우파 논객들처럼 ‘종북’과 ‘국가주의’의 프레임을 사용하지 않는다. 햇볕정책의 실패로 인해 핵이 개발되었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우파 논객들과 달리, 강용석은 “북한에 대해 유화책을 쓴 정부도 있었고, 강경책을 쓴 정부도 있었으나 둘 중 어느 쪽도 북한의 핵 개발을 막는 데 성공하지 못했으니, 누구의 탓이냐를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이념적 비판을 피해 간다. 대신 그는 실리적인 이유를 들어 보수의 정책을 변호한다. 강용석은 ‘중학교 때부터 치열하게 경쟁을 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이나 비행 청소년, 왕따 문제 등이 생길 틈이 없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기에 사교육이 줄어든다’며 국제중학교의 존속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욕망을 실리와 효용 차원으로 설명한다.

여당 성향이지만 여당에서 제명된 덕에, 필요한 순간이면 여당도 비판할 수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쉽게 합의를 보지 못해 정부 출범이 늦어지자, 강용석은 여당의 정치력 부재를 탓하며 “이한구 원내대표가 사표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눈치는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굳이 행동을 같이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는 지금 방송을 통해 자신을 ‘상대를 종북주의자라고 낙인찍지 않고, 필요하다면 여당도 비판하며, 이념이 아니라 실리로 보수의 정책을 설명하는 생각보다 멀쩡하고 온건한 정치인’으로 다시 포장하는 중이다.

많은 이들이 강용석을 두고 “방송 잘하니까, 정치로만 안 돌아가면 좋겠다” 정도의 지점에서 타협을 한다. 그의 아들조차 “정치보단 방송만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강용석에겐 방송과 정치가 별개가 아니다. ‘예능인 강용석’의 활약을 더 냉정한 눈으로 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아마 강용석이라면 이 글조차도 ‘대세’의 방증이라며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그리고, 남은 이야기.

“승한씨 사는 곳이 동교동이라고 했죠?”

“네.”

“거기가 강용석 지역구였던가요?”

“그러니까 제가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혹시 다음에 또 나올까 봐.”

“에이, 설마요.”

“설마라뇨. 이명박도 <야망의 세월>로 대중적 이미지를 구축했잖아요.”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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