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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진작 이러시지…선택과 집중으로 살아난 박명수

등록 2013-09-27 19:38수정 2015-10-23 14:41

‘호통’, ‘아버지’, ‘탈모’, ‘얇은 다리’ 등등. 박명수는 캐릭터가 참 다양한, 행복한 개그맨이다.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그는 최근 <무한도전>과 <해피투게더3>으로 개그감을 집중하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호통’, ‘아버지’, ‘탈모’, ‘얇은 다리’ 등등. 박명수는 캐릭터가 참 다양한, 행복한 개그맨이다.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그는 최근 <무한도전>과 <해피투게더3>으로 개그감을 집중하고 있다. 문화방송 제공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2009년 급성간염 앓은 뒤
체력과 집중력 떨어졌지만
10여개 프로 맡으며 안간힘
예능감 떨어졌다는 말 들려
‘무도’ ‘해투’로 정리한 요즘
그의 존재감 다시 드러나

멤버들이 나눠 가진 007가방 중 진짜 돈이 들어 있는 가방을 찾아야 하는 전형적인 <무한도전> 추격전, 언제나처럼 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박명수는 007가방이 아닌 책가방을 들고 추격전에 뛰어든다. 보다 못한 제작진은 박명수에게만 따로 게임의 룰과 진행상황을 설명해주는 도우미를 붙여주고,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직감한 박명수는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일을 저지른다. 여의도 문화방송(MBC) 사옥 소품실을 찾아가, 여분의 007가방을 빌려 ‘가짜 돈가방’을 여섯 개나 만들어 멤버들에게 슬쩍 흘려준 것이다. 네 개의 가짜 가방과 두 개의 돈가방 후보를 놓고 벌이던 뻔한 게임이, 삽시간에 사방에 가짜 가방이 난무하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궁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지난 9월14일과 21일, 2주에 걸쳐 방영된 문화방송 <무한도전>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2’ 특집을 보며, 쇼의 오랜 팬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박명수가 살아나야 <무한도전>도 살아난다’고. 나 또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좀 진작에 이러시지.

2009년 급성간염을 앓으며 죽다 살아난 이후로, 박명수가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준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부실한 체력과 젊은 나이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온 탈모 탓에 <무한도전> 멤버들 사이에서 ‘아버지’ 소리를 듣던 박명수였다. 간 수치가 4600까지 치솟았던 아찔했던 순간은 멤버 중 최고령자였던 박명수에게 고질적인 체력 저하를 안겨줬고, <무한도전>이 집중력과 지구력을 요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그는 힘에 겨워했다. 문제가 된 게 장기 프로젝트만은 아니었다. <무한도전>의 초창기, 그는 특유의 ‘버럭’하는 성미와 정신줄을 내려놓은 듯한 엉뚱한 멘트, 막무가내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모습들로 ‘무한 이기주의’라는 쇼의 모토를 제공했고, ‘오합지졸 루저들이 승리하는 쇼’라는 쇼의 색깔을 결정하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멤버였다. 투병 이후엔 사정이 바뀌었다. 멘트도 타이밍도 영 예전 같지 않았고, 자기 스스로 주눅이 들어 예전처럼 치고 나오지 못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 쏟아지는 피곤을 이기지 못해 쓰러져 잠을 청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고, 진심으로 짜증을 내는 장면들이 카메라에 잡혔다. 박명수는 여전히 웃기는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발군의 활약을 펼치는 후배들에게 자기 자리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박명수를 성의 없다고 비난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 돌아온 여파를 감안해야 하지 않느냐고 그를 옹호했다.

현대 한국처럼 바쁘고 치열한 사회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건강도 챙긴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기 몸뚱어리 하나가 밥벌이 수단의 전부인 방송인들은 누구보다 더 제 건강을 챙겼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박명수는 그러지 못했다. ‘가만히 입만 털면 되는 거 아니냐’고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말로 사람을 웃기는 것 또한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다. 자신이 준비한 멘트를 뻔뻔스럽게 밀어붙일 용기, 어느 타이밍에 멘트를 쳐야 가장 효과적으로 남들을 웃길 수 있을지 타이밍을 재는 집중력, 상황을 읽어서 본능적으로 진퇴 여부를 결정하는 감각까지, 결국은 그것 또한 몸이 하는 일이다. 천하장사 출신 강호동이 열 시간이 넘는 녹화를 진행하면서도 좌중을 압도하는 집중력을 보여주는 것도, 유재석이 자신에게 허락했던 몇 안 되는 일탈인 담배를 끊고 헬스를 시작한 것도 다 이 연장선상에 있다. 다행히 박명수는 자신의 투병까지 농담의 재료로 삼을 정도로 뼛속까지 코미디언이었고, 자신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 또한 흔쾌히 인정하며 유머의 소재로 활용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사람이 아프고 나면 제일 먼저 하게 되는 일은 무엇일까? 역시 주변 정리일 것이다.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생업을 접을 용기나 형편이 된다면 제일 좋고, 그게 아니라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을 줄이는 게 순서다. 박명수는 그러지 않았다. 죽다 살아난 다음 해인 2010년, 한 해 동안 그가 고정 출연했던 프로그램은 기억나는 대로 대강 주워섬겨도 다음과 같다. <무한도전>, 한국방송(KBS) <해피투게더 시즌 3>, 에스비에스(SBS) <밤이면 밤마다>, 문화방송 <일요일 일요일 밤에> ‘에코하우스’, ‘뜨거운 형제들’, 한국방송 <스쿨 버라이어티 백점만점> 등이다. 여기에 조기 종영했던 케이블 티브이 프로그램들과, 그해 10월이 되어서야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했던 문화방송 라디오 <두 시의 데이트>까지 더하면 그가 고정 출연한 작품 수는 두 자릿수에 이른다. 급격하게 집중력을 잃으며 자신의 본진이라 할 만한 <무한도전>이나 <해피투게더 시즌 3>에서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던 시기에 동시에 일어난 일이다.

물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사람일수록 일을 내려놓는 것은 더 어려운 법이다. 여기저기에서 자신을 찾고 필요로 할수록 냉정해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이 아직 40대 초반의 한창나이이며 왕성하게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증명해 보일 필요도 있었으리라. 문제는 그래서 덥석덥석 선택한 선택지들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라디오 부스 안에서는 능숙하게 진행하던 박명수는, 카메라 앞에만 서면 메인 엠시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어눌하고 막무가내인 모습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그는 그 콘셉트를 엠시 자리에서도 계속 유지했다. 쇼의 큰 흐름을 읽고 때로는 흘려보낼 수도 있어야 하는 자리인 엠시는 그런 덕목만으로는 지탱할 수 없는 역할이었고, 그가 메인 엠시로 출연했던 티브이 프로그램들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곤 했다. 그리고 가뜩이나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감행한 다작의 행보는 정작 자신이 집중해야 할 프로그램에서의 부진으로 이어졌다.

이런 행보는 작년까지 계속됐다. 1993년 데뷔 후 20년을 목전에 뒀던 작년 말, 박명수는 문화방송 <방송연예대상>에서 그토록 갈망하던 대상을 수상했다. 예능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지만, 정작 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정작 활약이 뛰어났던 2000년대 중반은 다 건너뛰고, 감도 떨어지고 퍼포먼스도 별로인 2012년에 대상을 받은 건 그의 표현대로 ‘개근상’에 다름 아니냐는 것이 중론이었던 것이다. 2012년 한 해, 오랜 파업으로 반년 가까이 쉬었음에도 박명수는 문화방송에서만 총 7개의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니까. 진작에 기념되었어야 할 그의 활약 대신, 엉뚱하게도 종합편성채널까지 11개가 넘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느라 컨디션 관리가 하나도 안 되던 시절의 몸부림이 기념의 대상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러던 그가 다시 예전의 감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 그가 출연 작품을 다시 <무한도전>과 <해피투게더 시즌 3> 두 개로 줄인 시점과 맞물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록 박명수와 함께 늙어가는 쇼 <무한도전>이 공정한 경쟁을 지키는 대신 룰을 알려주는 도우미를 붙여주는 길을 택하긴 했지만,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반전으로 게임 전체를 뒤흔든 건 도우미의 힘이 아니라, 몇 수 앞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박명수의 집중력 덕분이었다. 그의 팬들이 그가 <무한도전> 장기 프로젝트에 전념하기 위해 문화방송 <세바퀴>에서 하차한다는 소식에 걱정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쉰 것 또한 같은 이유에서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박명수가 언제 다시 그 부족한 체력으로 다작을 하기 시작하고, 집중력을 잃고 흔들리는 일이 없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다만 박명수가 그동안 하던 프로그램들을 하나둘씩 정리한 뒤, 근래에 보기 드문 활약을 펼치는 어떤 시절에 대해서는 기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누구나 나이를 먹다 보면 병들고 쇠약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언제까지나 청춘인 것처럼 건재함을 과시하고 싶은 건 누구에게든 당연한 욕망일 것이나, 그럴수록 자신의 현재를 냉정하게 돌아보고, 우선순위를 정해 자신이 진짜 집중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마치 지금의 박명수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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