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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 가득한 ‘셜록’의 컴버배치
하나의 현상이다

등록 2014-02-21 19:32수정 2015-10-23 14:36

영국 <비비시>(B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셜록> 시리즈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세계의 많은 이들을 매료했다. 닿을 수 없는 중저음의 목소리, 신비롭고 영롱한 초록 눈빛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팬들은 그의 형편없는 패션감각마저 사랑한다. 허당 속에 숨은 섹시함을 발견할 수 있어 오히려 치명적이다. BBC 제공
영국 <비비시>(B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셜록> 시리즈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세계의 많은 이들을 매료했다. 닿을 수 없는 중저음의 목소리, 신비롭고 영롱한 초록 눈빛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팬들은 그의 형편없는 패션감각마저 사랑한다. 허당 속에 숨은 섹시함을 발견할 수 있어 오히려 치명적이다. BBC 제공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종종 남들이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온도로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셜록> 시즌3(2014, 영국 비비시)을 불법 다운로드로 이미 다 본 이가, 한국방송(KBS)의 한국어 더빙판을 보기 위해 귀가를 서두른다거나, 그렇게 두 차례나 작품을 챙겨본 이가 한국방송에서 발매하는 디브이디(DVD) 출시 일정이 2월에서 3월로 늦춰진 것에 새삼스레 격분하고, 그것도 모자라 오씨엔(OCN)의 한국어 더빙판으로 한 차례 더 보기 위해 앞선 두 개의 시즌을 통째로 복습하느라 밤을 새우는 바람에 바이오리듬을 깨버리고야 마는 지독한 수준의 반복학습. 혹은 신문기자로 하여금 오다가다 마주친 외고 필자를 붙잡고는 “언제 한번 베네딕트 컴버배치에 대해 써달라”며 사적인 청탁을 하게 만드는 종교에 가까운 사심. 영국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팬덤 규모는 할리우드 톱스타들의 그것만큼 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열기만큼은 근래에 보기 드문 수준의 온도를 자랑한다.

2010년 <셜록>으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른 뒤, 그는 <스타트렉 다크니스>(2013)와 <호빗> 프랜차이즈에 출연하고, 스필버그와는 <워 호스>(2011)를, 게리 올드먼과 콜린 퍼스 같은 대선배들과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를 찍으며 단숨에 당대 가장 흥미로운 영미권 남자배우의 자리를 차지했다. 그에 대한 열광은 비단 영미권과 한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옆나라 일본은 아예 <영국남자>라는 제호의 잡지를 창간하고는 창간호 표지모델로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세웠고, 중국의 한 네티즌은 드라마 <셜록>의 등장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아마추어 게임을 개발해 공개했다. 미처 그의 연기를 접하지 못한 이들이라면 이 모든 인기가 아서 코넌 도일이 창조한 탐정 셜록 홈스의 인기에 힘입은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홈스를 연기한 수많은 남자배우들 중에 이토록 뜨거운 수준의 애정을 한 몸에 받은 남자는 일찍이 없었다. 컴버배치에 대한 대중의 열광에는 셜록 홈스라는 캐릭터에 대한 애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저음과 명료한 발음, 청록색 눈 매력
호킹 등 자기확신 가진 인물 연기로
보는 이들까지 그 신념에 물들게 해
캐릭터에 대한 애호 넘는 팬덤 형성

컴버배치의 매력에 대해 논할 때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것은 그의 목소리일 것이다. <셜록>과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 컴버배치는 낮고 두껍게 깔리는 윤기 있는 저음과, 모든 단어를 선언하듯 정확하고 명료하게 내뱉는 특유의 발음으로 보는 이들을 설득한다. 고풍스럽고 어딘가 오만하기까지 한 그의 영국식 억양 또한 세계인을 사로잡은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전부일까. 그가 스물일곱의 나이에 주연을 맡은 티브이영화 <호킹>(2004, 영국 비비시)에서, 컴버배치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으로 온몸의 근육이 천천히 마비되는 20대의 스티븐 호킹을 연기한다. 젊은 나이에 사위어만 가는 팔다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빅뱅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호킹을 연기하는 컴버배치에게서 특유의 저음이나 명료한 발음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앳된 목소리와 안면근육 마비로 인해 형편없이 일그러지는 발음이지만, 그럼에도 브라운관 너머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 그의 매력은 고스란히 살아 있다.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내리는 육신 안에서도 형형하게 살아 빛나는 청록색 눈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물이 지닌 확고한 신념에 전염되게 만든다.

확고한 신념. 어쩌면 팬들조차 “미남이 아니라 미남을 연기한다”고 말하곤 하는 이 창백하고 기묘한 외모의 소유자를 일약 스타로 만든 비결은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컴버배치는 어떤 종류의 자기확신을 가진 인물을 연기할 때 대중의 눈을 자신에게 붙박아둔다. 자신의 직관과 통찰에 대한 차가운 확신을 지닌 남자 셜록(<셜록>)이나, 당대의 지배적인 우주론이었던 ‘정상우주론’에 반기를 들고 빅뱅이론을 포기하지 않은 젊은 날의 스티븐 호킹(<호킹>), 정치적 신념과 종족에 대한 자긍으로 철저히 무장한 확신범 테러리스트 존 해리슨(<스타트렉 다크니스>) 같은 천재형 캐릭터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적진을 향해 말을 타고 돌진하던 영국군 대위 스튜어트(<워 호스>)나, 자신의 전지전능함과 황금에 대한 욕망으로 똘똘 뭉친 거대한 용 스마우그(<호빗> 프랜차이즈), 영국판 <장학퀴즈>에 출전해 우승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안경잡이 대학원생(2006, <스타터 포 텐>)은 물론, <어톤먼트>(2007)의 소아성애자 폴 마셜과 같은 변태적인 캐릭터마저 컴버배치의 육신을 통과하면 한 가지 목표만을 위해 매진하는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확신에서 비롯된 차가우리만치 단호하고 오만한 태도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이만이 가능한 절제된 표현은 컴버배치가 분해 사랑받아온 캐릭터들의 공통점이다. 이런 특징 앞에서 컴버배치의 육체적 매력은 차라리 부차적인 것에 가깝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컴버배치의 깊은 눈이나, 특유의 억양 같은 육체적 특징들은, 작중 인물의 굳건한 확신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셈이다. 컴버배치가 연기하는 배역들이 종종 무성애자처럼 그려지거나, 금욕적인 인물처럼 보이는 것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단 하나의 욕망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이들은, 그 외의 모든 부차적인 욕망은 대수롭지 않게 대하는 법이다.

종종 대중은 당대에 결여된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들에게 환호한다. ‘공정함’이라는 가치가 훼손되었다 믿었을 때 등장한 안철수 의원이나, ‘한국에는 존경할 만한 보수주의자란 없는가’라는 질문이 대두될 때 새삼스러운 주목을 받은 표창원 전 교수와 윤여준 전 장관처럼. 대중문화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라서, 새로운 트렌드는 당대의 결핍에서 출발한다. 21세기의 첫 10년이 지날 무렵, 무엇에 대해서든 확신을 가지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일반 대중이 정보 자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지만, 오히려 정보의 과잉과 다원주의의 도래, 갈수록 그 복잡도가 심해지는 사회·정치·경제 체제 등으로 인해 예전과 같은 확신을 가지는 것은 점점 더 요원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 등장해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확신을 연기하는 배우가 바로 컴버배치다. 진실을 알기 어려운 복잡한 사건들 앞에서 단호하고 명쾌하게 진실을 발견해내는 천재 탐정이나, 자신이 지닌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파괴적인 수단이라도 서슴지 않고 동원하는 정치 테러리스트를 보면서, 대중은 인물이 지닌 비범한 확신에 매료되는 것이다.

물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처럼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잿빛의 냉전 속을 헤매는 인물을 연기한 적도 있지만, 흔들림 없이 전진하는 인물들을 연기하는 컴버배치의 행보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개봉 대기 중인 영화 <제5계급>(2013)에서 컴버배치는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를 연기하고, 현재 제작 중인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2014)에서는 정보공학의 아버지이자 당대 최고의 지성인 앨런 튜링으로 분한다. 모두 당대에 모두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들은 아니다. 어산지는 관련 정보원들의 신분을 여과 없이 노출시켜버린 비윤리적인 해커라는 손가락질을 받고 있고, 튜링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당대 영국 정부와 사회의 박해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모두 천재적인 두뇌와 뒷걸음치지 않는 확신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은 인물들이라는 특징을 공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2015년에 돌아올 <셜록>의 4번째 시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종종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온도까지 애정을 끌어올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컴버배치가 인물을 연기하는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쉽게 확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세계에서, 컴버배치는 욕망하고 목표하는 한 가지를 향해 소실점처럼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인물을 연기한다. 그리고 팬들은 그런 컴버배치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친다. 그의 형편없는 패션감각조차 연기에만 매진하는 태도라고 알아서 변호하면서. 자신이 타인을 연기하는 방식과 타인이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 이처럼 일치하는 배우라니. 지금 컴버배치는 그저 배우가 아니다. 그는 차라리 하나의 현상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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