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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는 일이 기적이야

등록 2014-12-11 19:29수정 2015-05-26 10:42

[이재익의 명대사 열전] 올 한해 최고의 드라마 대사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는 일이 기적이다. - 천송이

2014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요즘, 여러 분야에서 올 한 해 최고의 ○○○을 뽑는다. 이 칼럼, 명대사 열전에서도 올 한해 최고의 명대사를 뽑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의무감이 들었다. 해서 이번 회와 다음 회는 올 한 해 최고의 드라마 대사, 최고의 영화 대사를 뽑아보기로 했다.

대사 자체의 예술성만 놓고 본다면 영화가 더 유리하다. 문학에서도 시와 소설의 문장이 다르듯, 100분 전후로 이야기를 압축시켜야 하는 영화의 대사는 수십 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 드라마의 대사보다 대체적으로 더 상징적이고 힘이 세다. 이런 차이를 감안하고 보시길.

이번 회에서는 2014년 최고의 드라마 명대사를 골라보았다. 영광의 수상자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천송이씨! 축하합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하는 일이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 딴 게 기적이 아니고 그게 기적이더라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연 전지현(왼쪽), 김수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연 전지현(왼쪽), 김수현.
자기 잘난 맛에 오만하게 살던 여배우 천송이가 사랑의 감정 앞에서 감사하는 대사다.

세상에는 수많은 연인과 부부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천송이는 왜 서로 좋아하는 일, 그 흔한 일을 기적이라고까지 거창하게 표현했을까? 대사 안에 생략되어 있을 법한 단어 하나를 넣어본다.

좋아하는 사람이 날 ‘똑같이’ 좋아하는 일이 기적이다.

이제 좀 감이 온다. 연인이든 부부든 서로 똑같이 사랑하는 일은 정말 기적이라고 부를만하다. 심지어 사랑의 결실이라고들 표현하는 결혼식장에서조차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 대해 갖는 사랑의 크기와 방식은 다른 경우가 많다.

한쪽은 안정과 여유를 바라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뜨거운 열정이 더 오래 지속되기를 바랄 수 있다. 한쪽에서는 결혼이 절실한데 다른쪽에서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일 수 있다. 한쪽에서는 결혼이 도전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도피처일 수 있다.

수많은 합의 끝에나 이를 수 있는 결혼을 앞둔 커플마저도 이렇게 서로 입장이 다른데 보통의 연인이나 결혼한 지 한참 되는 부부들은 얼마나 다를까? 그러니 서운할 수밖에. 서운한 끝에 체념하거나 떠나지 않으면 다행이지. 서로 똑같이 좋아한다는 건 기적 맞다.

그런데 천송이의 대사를 좀 더 음미해보면 이런 생각에 다다른다. 평생 기적만 바라고 살 건가? 모세도 아닌데 바닷가에서 바다가 갈라지길 기다릴 텐가?

우리 그러지 말자. 내가 좀 더 많이 사랑해도 억울해하지 말자. 내 마음이 더 급해도 보채지 말자. 상대가 나보다 더 뜨거움을 이용하지 말고 상대가 나보다 차갑다 해서 비난하지도 말자. 크기와 모양이 다르더라도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자. 그것만으로도, 기적은 아닐지라도 축복으로는 충분하니까.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손해 보면서까지 사랑을 해야 하냐며 냉소를 짓는 사람도 있을 테지. 물론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삶은 공허하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대체 불가능한 것이기에 사랑이 없는 빈자리는 그 어떤 재화와 관계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대체된 것처럼 착각할 뿐.

이제 곧 크리스마스, 새해를 맞는다.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 좋은 계절이다. 쓸쓸한 이들이여. 혹 나랑 똑같이 나를 좋아해 줄 사람이 나타날 기적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지어다. 쓸쓸하지 않은 이들이여. 감사할지어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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