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미의 TV 톡톡
<착하지 않은 여자들>(한국방송2)은 김혜자, 장미희, 채시라, 이하나 주연으로, 모성가정 3대의 순탄치 않은 삶을 담은 가족드라마다.
드라마는 캐릭터 코미디의 성격을 띠며, 기존의 배우 이미지를 적극 활용한다. 유명한 요리 선생이자 조강지처인 강순옥 캐릭터는 수십년간 조미료 광고 모델이었으며, 최근 도시락 사업으로 ‘대박’ 난 김혜자의 이미지와 딱 맞는다. 결혼기념일에 장모란(장미희)을 만나러 가는 남편에게 진수성찬을 싸주었다는 일화는 강순옥 캐릭터를 대변한다. 요리하는 현모양처의 겉모습에 설사약과 세제로 뒤통수를 치는 ‘착하지 않은’ 면모가 숨어 있다. 강순옥은 장모란을 보자마자 발차기를 날리고 우아한 입술을 실룩대며 “꼴값을 하십니다”란 비아냥을 퍼붓지만, 죽을병에 걸린 장모란을 데려와 좋은 것을 해 먹인다. 애정과 증오, 모성과 엽기가 동전의 양면처럼 붙은 여성의 분열적 속내를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영화 <마더>의 김혜자만큼 잘 표현할 배우가 어디 있으랴.
아름다운 ‘세컨드’, 장모란 역의 장미희는 특유의 톤으로 “아름다운 밤이에요”란 대사를 들려준다. 미술관에서 남의 머리채를 쥐고도 “나, 환자예요”란 한마디로 주위를 평정하는 연극적인 매력은 장미희가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철없고 억척스러운 현숙의 좌충우돌을 연기하기 위해 채시라는 몸을 던진다. 전작 <여자만세> <맹가네 전성시대> 등의 드라마에서 보았던 ‘드세고 씩씩한 여자’ 캐릭터의 확장판이다. 이하나 역시 밝고 귀여운 ‘톰보이’ 스타일의 정마리 역을 맡아 드라마 <태양의 여자>에서 보여주었던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안국동 한옥, 1970년대의 음악다방, 1980년 ‘레이프 가렛’ 공연 등을 통해 문화적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서울시 미래유산’ 사업을 드라마 자체가 수행하는 셈이며, 근대소설 여주인공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정마리의 논문과 여성 3대를 그린 이 드라마가 궤를 같이한다. 드라마는 캐릭터 열전을 통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교육에 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현숙은 고교시절 ‘레이프 가렛’ 공연에 갔다가 정학을 맞고, 억울한 누명이 더해져 퇴학당한다. 당시 담임 선생은 학생들의 몸에 등수를 붙이고, 이의를 제기하는 현숙에게 “네가 꼴등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한다. 그는 “썩은 가지는 잘라내야 한다”는 반교육적인 신념으로 현숙을 퇴학시키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남자와 결혼한 뒤 재단을 압박하고 성공한 제자들과 모임을 가지며 ‘존경받는 스승상’을 받는다. 그는 현숙에 대한 죄책감도 없고, 여전히 쓰레기로 여긴다. 경쟁 위주의 교육이 빚어낸 출세 지향적 교사의 전형이다. 드라마는 괴롭힘 당하는 청소년이나 교직을 신성시하는 검도사범을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드라마는 또한 현재 대학 교육에도 일침을 가한다. 첫 회에 캠퍼스의 낭만처럼 펼쳐졌던 자장면 파티는 기실 학생들의 학점 쌓기와 인문학 고사 위기, 시간강사의 불안정한 신분 등이 빚어낸 동상이몽의 장이었다. “선생을 존경하는 학생도 없고, 학생을 사랑하는 제자도 없으며” 취업 전쟁에 내몰린 학생들은 대학 교육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폐강 반대 서명을 받는 것조차 취업을 위한 거래란 점은 현재 캠퍼스 풍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 명의 선생이 수많은 학생의 삶을 구할 수 있다는 검도 사범의 말이 마치 ‘미래 유산’ 세트장에서 울리는 듯 아득하게만 들린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잉여싸롱] 남자는 없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
‘착하지 않은 여자들’ (한국방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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