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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어셈블리’, 그렇다면 미국엔 ‘부통령이 필요해’

등록 2015-08-07 18:45수정 2015-10-26 17:33

미국드라마 <부통령이 필요해>
미국드라마 <부통령이 필요해>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한국방송 수목극 <어셈블리>는 그동안 국내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본격 정치드라마다. 웃자고 만드는 코미디 프로그램 안에서 정치를 농담의 소재로 삼는 것마저도 눈치를 봐야 하는 현실에서 풍자도 아니고 사실성을 강조한 정치물의 등장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국내와 달리 미국은 지금 정치물 붐이다. 저 유명한 <하우스 오브 카드>를 비롯해 <마담 세크리터리>, <알파 하우스> 등 다양한 장르의 정치물이 쏟아져 나오며 지지율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제일 개성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부통령이 필요해>(원제 ‘Veep’)다. 웬만해선 실망하는 법이 없는 에이치비오(HBO)산 작품인데다 에미상 시상식에도 단골로 호명될 만큼 완성도도 검증됐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기존에 잘 다루지 않았던 부통령의 세계를 그린다.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직책의 2인자’라는 다소 모순적인 수사에 걸맞은 부통령의 정체성과 권력의 미묘한 속성이 그야말로 발광하는 풍자 코미디 형식에 담겨 쉴 새 없는 웃음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부통령 셀리나 마이어(줄리아 루이드라이퍼스)의 주 임무는 중요하고 긴급한 업무로 바쁜 ‘미합중국의 위대한 대통령’을 대신해 별 볼 일 없는 협회에나 출석도장을 찍어야 하는 얼굴마담 노릇이다. 내심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의 야망을 품고 있지만 그 거품 권력의 실체를 아는 의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고, 대중매체들 역시 만만한 그녀를 틈만 나면 조롱거리로 삼는다.

반전은 이 작품이 부통령의 애환 따위를 말하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거다. 진정한 묘미는 화려한 수사로 가득한 워싱턴 정가의 신화를 노골적인 욕설 코미디로 전복한다는 데 있다. 부통령부터 솔선수범해서 에미넴의 랩보다도 빠르게 쏟아내는 상스러운 욕설들에는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위선적 수사의 속내를 까발리는 통쾌함이 있다. 가령 한 공식연설에서 ‘저능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장애인 비하라는 비난에 휩싸이자 품위 있는 사과문 작성에 여념이 없던 셀리나가 심기를 거스린 직원들에게 ‘저능아’를 수백번 강조한 더 수위 높은 욕설을 터트리는 식이다. 그 강도를 차마 지면에 옮기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말에 그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정치적인 공정함’에서 최대한 멀어질 수 있을까를 고심하며 하나하나 공들여 빚어낸 말들이기에 전복적인 쾌감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또다른 방식으로 권력의 적나라한 속성을 리얼하게 드러내는 정치극인 셈이다. 전 시즌을 통틀어 최고의 명대사라 할 만한 “개소리에도 재능이 필요해”라는 대사는 바로 이 작품에 정확히 적용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올해 방영된 시즌4에서는 셀리나가 대통령의 사임으로 엉겁결에 백악관을 접수하게 된 덕에 국제적 스케일로까지 확대된, 더 막나가는 욕설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폭염만큼이나 짜증지수를 유발하는 국내 정치현실에 신물이 난 이들에게 피서용으로도 강추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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