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과자의 집>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과자의 집>
일본 드라마 <과자의 집>
<과자의 집>은 여러모로 <심야식당>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좁고 후미진 골목길의 가게 문이 열리고 <심야식당>에도 출연했던 배우 오다기리 조가 등장할 때는 정말이지 살짝 헛갈리기도 한다. 매번 이야기를 여는 도입부가 동일한 것도 <심야식당>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인다. <티비에스>(TBS)의 심야 드라마라는 점이나 회당 30분 내외 분량의 짧은 드라마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무엇보다 두 작품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낡고 더디어 자꾸만 뒤로 밀려나거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헌사라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다만, <과자의 집>은 밤 시간의 퇴근족이 아니라 낮 시간의 꼬마아이들을 주 고객으로 한다. 이를테면 <심야식당>의 동심판인 셈이다. 이 드라마에서도 조그맣고 오래된 가게가 주 배경이다. 막과자며, 값싼 장난감이며, 여러 잡다한 물건들이 빼곡한 구멍가게다. 주인공 다로(오다기리 조)와 그의 할머니(야치구사 가오루)는 수십년이 되도록 꾸준히 이곳을 지키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 단골이던 아이가 훌쩍 큰 어른이 된 뒤 다시 찾아와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세월이 비껴간 듯한 정겨운 공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게의 위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온다. “이 구멍가게는 언젠가 문을 닫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오프닝은 한때 동네 어린이들의 작은 천국이었던 이곳이 현재 심각한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음을 설명해준다. 월 매상은 고작 4만엔, 순수익은 3만엔이 채 안 된다. 한번 하는 데 250엔짜리인 ‘어항 속 금붕어 잡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꼬마들 서넛이 한 아이의 “편의점 가자”는 말에 이내 자리를 털고 떠나가는 장면은 가게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속도의 시대에는 많은 것들이 구태로 치부되며 도태되고 사라진다. <과자의 집>역시 속도전에 밀려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나직하게 속삭인다. 일직선으로 질주하는 시간의 속도 못지않게 오래 축적되어 온 시간의 깊이 또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바깥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 보이지만, 사실 ‘과자의 집’은 수많은 이들의 추억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곳이다. 정신없이 살아왔던 누군가는 그 안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도 하고 상처와 방황에 대한 길을 찾기도 한다. <과자의 집>은 그렇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간과 삶을 다른 관점에서 돌아보게 한다.
드라마 연출을 맡은 이는 일본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이시이 유야다. 일본 아카데미 8개 부문을 휩쓴 영화 <행복한 사전>을 통해 속도전의 세상에서 독특한 느림의 미학을 설파했던 그는 이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의 속도를 그려낸다. <행복한 사전>에서 협연했던 오다기리 조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도 함께 빛을 발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