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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심야식당’ 동심판…시간보다 강한 추억의 미학

등록 2015-12-04 20:52수정 2015-12-05 09:56

일본 드라마 <과자의 집>
일본 드라마 <과자의 집>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과자의 집>
<과자의 집>은 여러모로 <심야식당>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좁고 후미진 골목길의 가게 문이 열리고 <심야식당>에도 출연했던 배우 오다기리 조가 등장할 때는 정말이지 살짝 헛갈리기도 한다. 매번 이야기를 여는 도입부가 동일한 것도 <심야식당>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인다. <티비에스>(TBS)의 심야 드라마라는 점이나 회당 30분 내외 분량의 짧은 드라마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무엇보다 두 작품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낡고 더디어 자꾸만 뒤로 밀려나거나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헌사라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다만, <과자의 집>은 밤 시간의 퇴근족이 아니라 낮 시간의 꼬마아이들을 주 고객으로 한다. 이를테면 <심야식당>의 동심판인 셈이다. 이 드라마에서도 조그맣고 오래된 가게가 주 배경이다. 막과자며, 값싼 장난감이며, 여러 잡다한 물건들이 빼곡한 구멍가게다. 주인공 다로(오다기리 조)와 그의 할머니(야치구사 가오루)는 수십년이 되도록 꾸준히 이곳을 지키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 단골이던 아이가 훌쩍 큰 어른이 된 뒤 다시 찾아와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세월이 비껴간 듯한 정겨운 공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가게의 위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온다. “이 구멍가게는 언젠가 문을 닫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오프닝은 한때 동네 어린이들의 작은 천국이었던 이곳이 현재 심각한 운영난에 시달리고 있음을 설명해준다. 월 매상은 고작 4만엔, 순수익은 3만엔이 채 안 된다. 한번 하는 데 250엔짜리인 ‘어항 속 금붕어 잡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던 꼬마들 서넛이 한 아이의 “편의점 가자”는 말에 이내 자리를 털고 떠나가는 장면은 가게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속도의 시대에는 많은 것들이 구태로 치부되며 도태되고 사라진다. <과자의 집>역시 속도전에 밀려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나직하게 속삭인다. 일직선으로 질주하는 시간의 속도 못지않게 오래 축적되어 온 시간의 깊이 또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바깥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 보이지만, 사실 ‘과자의 집’은 수많은 이들의 추억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곳이다. 정신없이 살아왔던 누군가는 그 안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도 하고 상처와 방황에 대한 길을 찾기도 한다. <과자의 집>은 그렇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시간과 삶을 다른 관점에서 돌아보게 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드라마 연출을 맡은 이는 일본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이시이 유야다. 일본 아카데미 8개 부문을 휩쓴 영화 <행복한 사전>을 통해 속도전의 세상에서 독특한 느림의 미학을 설파했던 그는 이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의 속도를 그려낸다. <행복한 사전>에서 협연했던 오다기리 조 특유의 나른한 분위기도 함께 빛을 발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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