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드라마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일본드라마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지난해에는 요리를 소재로 한 ‘쿡방’ 열풍이 불더니 올해는 집을 소재로 삼는 ‘집방’이 인기라고 한다. ‘쿡방’ 열풍의 배경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거품경제 붕괴 이후 먹고 요리하는 방송에서 위로와 대리만족을 느낀 일본의 유행 흐름을 국내에서 뒤따라가는 것이라 분석한 바 있는데 ‘집방’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본 역시 ‘쿡방’ 이후 집을 소재로 한 방송이 연이어 등장하며 먹는 문제 다음으로 주거에 대한 불안 혹은 판타지를 반영했다.
2010년 후지티브이에서 방영된 드라마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원제 ‘프리터, 집을 사다’)는 그 인상적인 사례다. 제목만 보면 명랑하고 유쾌한 자기계발 성공기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단순히 주거불안을 넘어서 ‘집’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중산층 문화의 어두운 그늘을 통해 불황시대 일본의 총체적 문제를 담아낸 작품이다. 가령 주인공이자 ‘프리터’족으로 등장하는 다케 세이지(니노미야 가즈나리)에게서는 일본 청년세대의 고용불안이, 부친 다케 세이치(다케나카 나오토)의 모습에서는 회사 조직 내의 경쟁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자녀와의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는 전통적 가부장의 위기가 발견된다. 결정적으로 모두를 시련에 빠뜨린 엄마 다케 스미코(아사노 아쓰코)의 우울증의 근본적 원인에는 거주불안으로 공동체가 와해된 이웃과의 불화가 있었다.
드라마는 꿈도 야망도 없이 “그저 그런” 인생에 자조하던 다케 세이지가 엄마의 병을 계기로 가족의 문제를 돌아보고 필사적으로 희망을 되찾으려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가 엄마의 우울증 치료차 새로운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목표로 삼게 된 ‘집 마련’은 물리적 의미를 떠나 궁극적으로는 가족공동체의 회복, 더 나아가 일본 사회의 재생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드라마는 다케 가족의 절망 극복기를 마냥 낙관적이지도 절망적이지도 않게, 진지한 사회비판과 대중적 판타지 사이에서 균형 있는 시선으로 그려나간다. 그해 드라마들 가운데 높은 시청률과 인기를 누린 이유다.
물론 한계도 있다. 모든 시련과 극복은 결국 개인의 의지 문제라고 해석될 여지도 다분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보수적인 티브이조선이 2013년에 이 작품을 방영한 것도 그러한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유사한 불황시대라 해도 일본과 국내의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의 희망적 결말은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최저생계를 넘어선 생활이 가능하고, 사회 초년생인 다케의 주택 마련을 지원하는 최소한의 복지제도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 유행할 국내의 ‘집방’들이 판타지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현실까지 담아내기를 바랄 뿐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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