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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재해 생존자와 인명 구조견의 운명적인 만남

등록 2016-04-15 20:25수정 2016-04-16 10:43

 일본드라마 <스무 살과 한 마리>
 일본드라마 <스무 살과 한 마리>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스무 살과 한 마리>
소년의 첫 기억은 어둠이다. 그 암흑 속에서 나타난 커다란 혀가 얼굴을 핥던 감각을 소년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날이 6434명의 사망자와 4만3천여명의 부상자를 낸 한신대지진의 날이었다는 건 오랜 시간 뒤에야 알았다. 소년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고, 아기침대가 방어막이 되어 무너진 건물 안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해 있던 그를 발견한 건 바로 재해구조견이었다.

지난해 1월17일, 일본 한신대지진 20주기를 맞아 <엔에이치케이>(NHK)에서 방영된 특집드라마 <스무 살과 한 마리>는 재해생존자와 인명구조견의 우정을 통해 치유와 희망을 말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후지와라 리히토(스다 마사키)는 태어난 해에 발생한 한신대지진으로 부모를 모두 잃는다. 조부모의 정성스러운 양육 아래 밝은 아이로 자라나지만 재해의 어두운 기억은 문득문득 악몽처럼 찾아와 그를 괴롭힌다. 그런 리히토의 삶이 변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은 재해구조견 조련사 바바 아키오(혼다 히로타로), 섬세한 구조견 큐와의 운명적 만남이다.

드라마는 리히토가 큐의 핸들러가 되어 그와 각별한 교감을 나누는 동안 비극의 피해자에서 구원자로 변화하는 과정을 담백하고 차분하게 그려낸다. 거대한 참사를 극적으로 재현하기보다 소박한 드라마 안에 슬픔을 담담하게 녹여내는 방식이 오히려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상처를 대하는 태도다. 이 작품은 결코 과거를 잊고 미래에서 치유와 희망을 찾자고 말하지 않는다. 가령 한신대지진 당시 소방관이던 바바 아키오가 참사 발생 시간에 바늘이 멈춘 시계를 늘 지니고 다니는 것처럼, 비극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기억될 때 비로소 치유도 가능해진다.

<스무 살과 한 마리>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 사회가 비극에 대처하는 방식과 여러모로 비교된다. 역사적 비극을 대할 때 늘 반복되는 우리의 문제는 이제 그만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망각적 태도였다. 해마다 대대적인 추모행사로 한신대지진의 기억을 이어가는 일본과 비교할 때, 같은 해에 일어난 삼풍백화점 참사가 어떤 방식으로 추모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과거 삼풍백화점 위치에 지어진 신축 건물들이 말해주듯 우리 사회는 늘 비극의 흔적을 지우고 삭제하는 방식으로 상처를 억압해왔다. 인양 작업이나 ‘기억공간’ 조성을 둘러싸고 갈등 중인 세월호 참사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고스란히 반복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스무 살과 한 마리>에서 리히토의 성장드라마는 ‘첫 기억’, 즉 한신대지진의 날을 기억하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그의 생일과 참사의 발생일은 같은 해다. 성장은 그렇게 상처의 생생한 기억 위에서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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