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방송·연예

희망을 말하는 일본판 ‘미생’

등록 2016-05-06 20:34수정 2016-05-07 09:29

일본드라마 <중쇄를 찍자>
일본드라마 <중쇄를 찍자>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중쇄를 찍자>
지난해 출판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져나가던 책들 가운데 <중쇄를 찍자>라는 작품이 있었다. 제목처럼 책을 만들고 한권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안겨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인데, 좋은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 공감이 특정 업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주간 만화잡지 편집부에서 일하게 된 신입사원이 차츰 세상에 적응해나가며 꿈을 키워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마음을 움직이는 성장담이다.

얼마 전 일본 <티비에스>(TBS)에서 방영을 시작한 <중쇄를 찍자>는 마쓰다 나오코의 이 동명만화를 영상화한 드라마다. 국내에서는 만화잡지 편집부라는 일본 특유의 배경이 좀 낯설 수도 있으나, 대신 주인공 구로사와 고코로(구로키 하루)에게서 낯익은 모습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전직 유도선수다운 특성을 회사 업무에 적용하는 모습이 <미생>의 장그래를 떠올리게 해서다. 장그래가 승부처마다 바둑의 철학을 따르며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듯, 고코로 역시 언제 어디서든 유도인의 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간다.

물론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중쇄를 찍자>는 기본적으로 명랑성장만화의 세계다. 둘 다 냉혹한 생존경쟁의 장에 뛰어든 사회초년생이지만, 장그래가 사색적이고 진중한 데 반해 고코로는 한판승의 맛을 아는 유도선수 출신답게 시원시원한 열혈청년으로 그려진다. 드라마에서 그녀의 매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은 첫 회 도입부인 고토칸출판사 최종면접 신이다. 고코로의 독특한 이력을 시험하기 위해 기습공격하는 사장을 단숨에 엎어치기하는 모습은 그녀의 승부사적 기질과 함께 이 드라마 역시 그처럼 한판승의 재미를 주는 명쾌한 이야기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실제로 매회 다양한 사건이 벌어져도 이야기는 늘 희망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렇다고 마냥 긍정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작품도 아니다. 고코로가 ‘힘내’라는 응원에 정말 격려받는 것과 달리 누군가는 이 대책 없는 말에 상처받을 수도 있음을 이 작품은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모두가 고코로같이 패기 넘칠 수도 없을뿐더러 의욕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도 없다. 드라마가 말하는 희망은 그저 소박하다. 고코로가 늘 되뇌는 유도정신처럼 “자신의 힘을 최대한 살려 올바른 곳에 사용하고, 타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감사해하며,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사회가 바로 희망이다.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그리고 이 정신을 그저 말뿐이 아니라 작품 전체의 태도로 보여준다는 점에 이 작품의 진정한 묘미가 있다. 고코로의 직장에도 편집장, 부편집장, 연차 높은 선배 등 서열이 있으나 그 안의 누구도 멘토를 자처하며 설교를 늘어놓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동료를 믿는 자세가 최선의 결과로 이어진다. 그들의 연대와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한 권의 좋은 책은 그렇게 우리 사회의 이상적 모습에 대한 은유로 확대된다.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1.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시그널’ 10년 만에 돌아온다…내년 시즌2 방송 2.

‘시그널’ 10년 만에 돌아온다…내년 시즌2 방송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3.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민주주의 ‘덕질’하는 청년 여성, 이토록 다정한 저항 [.txt] 4.

민주주의 ‘덕질’하는 청년 여성, 이토록 다정한 저항 [.txt]

스승 잘 만난 제자, 제자 덕 보는 스승…손민수·임윤찬 7월 한무대 5.

스승 잘 만난 제자, 제자 덕 보는 스승…손민수·임윤찬 7월 한무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