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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내희 칼럼] 법조계 비리와 대학의 인문학 교육

등록 2016-09-11 19:00수정 2016-09-11 19:21

강내희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법조계의 집단적 부정부패가 묵인되는 것을 보면서 상황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대학교육에서 인문학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라고 본다. 어린 나이에 고시에 합격한 것을 가문과 대학의 명예로 삼게 만든 우리 사회는 이제 법조계의 총체적 비리를 문제로 안게 되었다.

올해 한국 사회를 가장 추하게 만든 사회 부문은 지금까지는 단연 법조계가 아닌가 싶다. 법조계가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할 부정부패를 저질러왔다는 사실이 올해만큼 민낯 그대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 2016년은 그래서 한국의 법질서가 전례 없는 치욕을 겪고 자긍심이 박살난 ‘법난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이 난의 특징은 그 원인이 법조계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고, 그 주역은 알다시피 최유정, 진경준, 홍만표, 김대현, 우병우, 김수천, 김형준 같은 법원과 검찰의 전·현직 고위직 인사들이다.

법조계 전체가 썩어 문드러지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빤한 사안을 두고 검찰은 으레 수사를 기피하고, 법원은 솜방망이 처벌을 일삼는 것을 보면, 비리 혐의가 드러난 인사들과 사법계 전반이 한통속일 것이라는 추론은 가능하다. 법조계의 집단적 부정부패가 민주공화국 체계 안에서 늘 묵인되는 것을 보면서 상황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대학 교육에서 인문학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라고 본다.

인문학 교육의 실패가 법조계 인사들의 부정부패로 바로 이어졌다는 말은 아니다. 대학의 인문학을 모르면 도덕성을 기를 수 없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자연과 사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고, 윤리적 삶을 살 수 있다. 학문적 지식과 교양깨나 있다는 사람일수록 비윤리적 행위를 하는 경우도 많다. 2차 세계대전의 원흉 히틀러도 나름의 미적 감각을 지닌 예술 애호가요 교양인이었다. 그가 지배한 나치 독일은 문화를 구실로 국민을 동원한 것으로 유명하다. 부정부패에 관여한 법조계 인사들도 나름대로 인문학 교육을 받고 문화적 소양을 길렀을 수 있다. 그들의 비리 행위와 한국의 인문학 교육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론하는 것은 따라서 단순화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때로는 사태를 단순하게 보는 것이 필요하다. 넥슨 사건으로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과 수많은 비리 혐의를 받고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둘 다 학부 3학년생일 때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 재학 중에 어렵다는 고시에 합격했으니 두 사람은 수재일지 모르겠으나, 고시 준비로 대학 생활을 보냈다는 것은 가소로운 일이다. 30년 넘게 대학 강단에 서본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고시 준비 학생들 가운데는 시험과목에 포함된 학과목은 애써 찾아도 인문학 등 기초학문 과목은 수강을 기피하거나, 등록만 해놓은 채 결석하는 일이 흔했다. 두 사람도 비슷한 태도였다면, 사회적 비판과 개인적 성찰에 도움 되는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법학전문대학원이 설치되어 있어서 사법계로 진출하려는 학생들도 학부 전공을 마쳐야 하지만, 한국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사법시험 합격 후 사법연수원 교육을 이수하면 20대 초반에도 ‘영감’ 소리를 듣는 판검사가 되었다. 젊은 나이에 고위직에 오르면 개인으로선 출세일지 모르나 사회적으로 보면 이만큼 위험한 일도 없다. 지금도 진행 중인 법조계 비리 사건이 그 증거다.

판사는 임관할 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고, 법관 윤리강령을 준수하며, 국민에게 봉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선서하고, 검사는 “불의의 어둠을 걷어내는 용기 있는 검사,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따뜻한 검사, 오로지 진실만을 따라가는 공평한 검사,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바른 검사”가 될 것을 선서한다. 최근 비리 사건에 이름을 올린 인사들도 똑같은 선서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2016년 한국 역사에 오명을 남기게 된 것은 그 선서를 할 때 아무런 자기 성찰이나 사회적 정의감, 인간애를 느끼지 않았다는 말 아니겠는가.

한국의 대학 교육은 속성반으로 운영되는 측면이 크다. 어린 나이에 고시에 합격한 것을 놓고 가문과 대학의 명예로 삼게 만든 우리 사회는 이제 법조계의 총체적 비리를 문제로 안게 되었다. 자기 삶에 대한 성찰, 사회적 문제에 대한 비판적 의식, 인간 존재의 의미 탐구를 도외시하도록 만든 대학 교육의 책임도 크다. 인문학 교육의 실패가 사회적 실패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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