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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계약결혼…뻔한 로맨틱이 아니네?

등록 2016-10-21 19:24수정 2016-10-21 19:51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모리야마 미쿠리는 좀처럼 직업을 구하지 못한다. 대학원에 진학한 뒤 어렵게 구한 파견직에서도 학력이 오히려 부담이 돼 계약 연장에 실패한다. 구직공포증마저 생길 무렵, 독신 샐러리맨 쓰자키 히라마사의 가사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모리야마는 뜻밖에도 그곳에서 적성을 깨닫는다. 모리야마는 쓰자키에게 가사노동을 제공하는 대가로 급여를 받는 계약결혼을 제안하고, 쓰자키도 이를 받아들이며 기묘한 비즈니스 부부가 탄생한다.

일본 <티비에스> 채널과 국내 케이블 <채널 더블유(W)>에서 동시 방영 중인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파격적 발상이 돋보이는 로맨스 드라마다. 얼핏 보면 ‘루저’ 여성과 초식남의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같지만, 여성 고용불안, 젊은층의 결혼 기피 현상 등 그 안에 내재된 사회적 쟁점들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로맨스 장르에서 사랑의 완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주 사용해왔던 ‘계약결혼’이라는 소재를, 결혼에 은폐된 젠더권력관계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화두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기존의 낭만적 결혼관계를 고용주 남편과 노동자 아내의 비즈니스 관계로 묘사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기혼여성들의 가사노동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모리야마가 쓰자키를 합리적인 고용주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그가 모리야마의 노동의 가치를 알아본 순간부터다. 쓰자키가 모리야마의 호의 어린 방충망 청소 덕분에 방 안이 밝아진 사실을 알아채고 감사를 표하는 이 장면은 그동안 미세한 일상 속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취급받아 왔던 가사노동이 가시화되는 순간이다. 실제로 모리야마와 쓰자키의 결혼계약서는 이 노동에 대한 구체적인 급여계약서로 작성된다. 일본의 기회비용법에 따라 계산한 전업주부의 연간 무상 노동 시간은 2199시간, 여기에서 시급을 산출해 1일 7시간 노동으로 계산한 결과, 모리야마는 월급 19만4천엔을 받을 수 있다. 계약서 작성과 함께 모리야마의 직업이 ‘전업주부’라고 당당히 소개되는 장면이 첫 회 마지막을 장식한다.

김선영
김선영
다소 억지스러울 것 같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전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재미있다는 것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미덕이다. 올해 2분기 일본 드라마 최고 수작이라 평가 받는 <중쇄를 찍자>의 각본가 노기 아키코의 필력이 또 한번 힘을 발휘했다. 전작에서 만화 원작의 사랑스러움과 진지한 메시지를 잘 조화시켰던 노기 아키코는 역시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에서도 캐릭터들의 엉뚱함을 잘 살리면서 그 안에 사회적 시선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여성 캐릭터의 매력도 여전하다. 씩씩한 문과 출신 여주인공 아라가키 유이와 이를 보조하는 섬세한 공대 출신 남주인공 호시노 겐의 궁합도 꽤 좋다. 여러모로 4분기 일본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 중 하나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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