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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방송·연예

최순실의 공범은 우리 가까이에 있다

등록 2016-10-28 22:29수정 2016-10-28 22:33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샤먼’ 최순실
티브이조선 개국 첫날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는 <최박의 시사토크 판>에 출연한 박근혜에게 “박 전 대표를 보면 빛이 난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형광등 100개쯤 켜신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티브이조선 개국 첫날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는 <최박의 시사토크 판>에 출연한 박근혜에게 “박 전 대표를 보면 빛이 난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형광등 100개쯤 켜신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6일의 일이다. 급한 일이 있어 올라탄 택시, 기사가 말을 건다. “날씨가 많이 춥죠?” “네, 을씨년스럽네요.” 별 의미 없는 날씨 관련 인사말인 줄 알았던 대화는 갑자기 엉뚱한 쪽으로 방향을 튼다. “오늘이 10·26인데, 박정희 대통령께서 노하셨나.” 단순한 환절기 기상 현상에 세상을 떠난 박정희 대통령의 심기가 작용한 탓이라는 초현실적인 해석을 시도한 택시기사는 그 이후에도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요약을 하자면 그런 내용이었다. “순진한 박근혜 대통령 옆에 사악하고 요사스러운 무당 최순실이 붙어서 국정을 농단했으니 하늘에 계신 박정희 대통령께서 피눈물을 흘리고 계실 거다.” 얼떨떨한 10여분의 대화가 끝나고 택시에서 내린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한국은 박근혜-최순실 때문에 신정국가가 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신정국가였다는 사실을.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가를 헤아려 보려면, 그 뿌리로 1990년대 중반부터 몇몇 언론이 부추긴 박정희 시절에 대한 향수를 되돌아봐야 한다. 1995년 문민정부가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을 통해 역대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과 청산을 감행했을 때만 해도 재평가나 향수 어린 회고 같은 건 대놓고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치욕스러운 역사를 늦게나마 바로 세우자는 김영삼 대통령의 의지에 전 국민이 환호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당시 역사 바로 세우기 사업의 일환이었던 일제강점기 청산의 바람을 타고 흥행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993년 발간. 1995년 영화화)에서처럼 ‘강대국들의 견제에도 자주국방을 꿈꿨던 사람’이라거나, ‘절대왕정으로 르네상스를 피워 올리고 자체적인 근대화를 할 수 있었으나 당파싸움 때문에 고뇌하다가 끝내 독살된 정조’라는 서사 위에 은은하게 박정희에 대한 그림자를 드리운 <영원한 제국>(1993년 발간. 1995년 영화화)처럼 은근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유신악몽이 구국의 결단으로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박정희에 대한 미화와 향수 조성이 노골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건 정권 말기 대통령 친인척 비리로 “민주화 투사 출신 대통령이라 해도 별수 없는 것인가”라는 식의 정치 혐오가 번지고, 외환위기에 이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를 맞이한 시민들의 비명이 높아질 무렵이었다. 조갑제 당시 월간조선 편집장은 <월간조선>에 연재한 박정희 전기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통해 ‘근대화 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를 써 내려갔고, 소설가 이인화는 <인간의 길>에서 박정희가 “이미 자기 운명의 찻잔을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다 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고 주장했다. 박정희가 안가에서 자신과 측근들을 위한 비밀 연회를 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목이 낡은 러닝셔츠를 입고 다닌 강직하고 청렴했던 대통령이라는 신화로 가려지고, 영구독재를 위해 헌정을 중단시킨 유신의 악몽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경제를 견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던 구국의 결단으로 묘사됐다.

1990년대 시작된 박정희 판타지
고스란히 딸 박근혜에게 투사
이명박 집권 5년간 더욱 노골화
경북서만 기념사업에 1270억원

“형광등 100개 아우라” “근혜님꽃”
종편과 지지자들의 개인숭배
반대파들의 체념과 비웃음이
‘샤먼’ 최순실의 국정농단 공범

생애 마지막 날까지 제 심복과 부마항쟁을 피로 진압할 계획을 나누다가 세상을 떠난 독재자에 대한 전방위적인 찬양은, 놀랍게도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당시 한국인들이 처해 있던 상황이 “금 모으기 운동”처럼 국가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 개개인의 희생과 헌신을 동원해야 하는 국가주의적 캠페인이 다시 등장한 시기이기도 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청렴하고 검소하며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만 헌신했던 고독한 군주. 온갖 영웅주의 서사로 도배된 박정희 판타지는 1997년 당시 일반인으로 지내던 박근혜가 정계 진출을 선언하며 고스란히 박근혜의 머리 뒤에 후광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삼성과 현대의 발전사를 훑으며 개발독재 시대를 향수 어린 눈으로 회고했던 문화방송 드라마 <영웅시대>(2004~2005)는 마지막 회에서 재벌들의 이기주의를 질타하는 박정희(독고영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경제개발이라는 목표를 이유로 재벌들한테 온갖 특혜를 허용하고 끈끈한 정경유착을 유지했던 박정희가 졸지에 재벌의 탐욕을 꾸짖는 도덕적인 군주로 묘사된 셈이다.

2008년 당내 계파 싸움에 밀린 친박들이 대거 탈당해 미래한국당에 입당해 당명을 ‘친박연대’로 바꿨을 때, 많은 사람들은 개인숭배 정당이라는 비아냥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친박연대는 ‘박’이라는 한 글자의 힘으로 지역구 6석과 비례대표 8석을 얻는 데 성공했고, 박근혜를 통해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형태의 개인숭배는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다. 2009년 포항시를 시작으로 곳곳에 박정희 동상이 서기 시작했고, 이명박 집권 5년 동안 경상북도 지역에서만 박정희 기념사업에 국가 예산과 지자체 예산 1270억원이 투입됐다. 경상북도는 매년 박정희의 출생일마다 ‘박정희 대통령의 사상과 철학을 선양하고 그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켜 역량 있는 신예 작가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수대전’이란 행사를 열었다. 이명박의 대선 공약으로 옛 문화체육관광부 부지에 건설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중화학공업화와 유신체제’라는 부스에서 유신체제를 “경공업 중심 정책의 한계를 딛고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변경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추진된 것이라는 식으로 변호했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하자 박근혜를 통한 박정희 개인숭배는 더욱더 노골적이 되었다. 티브이조선 개국 첫날 조선일보 박은주 기자는 <최박의 시사토크 판>에 출연한 박근혜에게 “박 전 대표를 보면 빛이 난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형광등 100개쯤 켜신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고, 제작진은 화면에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입혔다. 비록 제작이 무산되긴 했으나 채널에이는 개국하자마자 박정희의 생애를 다룬 50부작 드라마 <인간 박정희>를 편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한국방송(KBS)도 질세라 박정희 정권 당시 포항제철의 건설을 다룬 드라마 <강철왕>을 제작하려다가 회사 내외의 항의에 중단했다. 대선 당시 곽형식 대구한의대 명예교수가 “꽃 중의 꽃- 근혜님 꽃. 8천만의 가슴에 피어라”라는 노래를 부른 동영상은 박근혜 개인숭배가 어디까지 갔는가를 보여주는 지표였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엔 더 이상 눈치보지 않아도 되는 개인숭배의 세상이 열렸다.

“하늘에 계신 각하, 생신 축하드립니다”

2013년 11월14일, 티브이조선의 시사프로그램 <돌아온 저격수다>는 진성호 전 의원의 멘트로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 생신 축하드립니다.” 박정희 탄생 96돌을 기념하던 방송은 박정희를 ‘내전으로 얼룩진 한국이 잘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 위대한 영웅으로 미화하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34일이나 되어서야 뒤늦게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던 2014년 5월19일 채널에이의 <시사병법>은 진행자의 입을 빌려 “감당하기 힘든 인생의 역경이 많았던 대통령, 그래서 더 꿋꿋하고 강해져야만 했던 대통령이 오늘은 눈물을 참지 않았다”며 한 편의 신파를 써 내려갔다.

최순실이라는 샤먼이 대통령을 쥐고 흔들었다는 이야기에 우리는 새삼 라스푸틴의 이름을 거명하며 경악하지만, 사실 최태민-최순실이라는 샤먼들이 대를 이어 국정을 농단한 것은 박정희-박근혜라는 ‘반인반신-쿼터갓’에 대한 개인숭배가 만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라 전체가 신정일치에 가까운 개인숭배를 그러려니 하며 인내하거나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지지자들은 그 신앙에 제 이성을 맡겼고, 반대파들은 체념했다. 이에 나는 이 지면을 빌려 반성한다. 이 직업에는 대중매체를 관찰하고 그를 통해 사회의 공기를 읽어 글에 반영해야 할 책무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종합편성채널들과 보수 매체들의 노골적인 개인숭배를 보고도 진지한 비평을 포기한 채 비웃기만 했다. 저자들이 원래 그렇지. 종합편성채널이 본디 그런 거 아니겠어. 그렇게 거대한 샤머니즘의 물결을 무시한 탓에, 최순실이라는 샤먼이 그 파도 뒤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공범들은 언제나 우리 코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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