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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허윤희는 선곡도 직접 한다. “신청곡으로도 눈비가 오고 계절이 바뀌는 때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청취자와 함께 공유하는 건 라디오 디제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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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
CBS ‘꿈과 음악 사이에’ DJ 허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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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허윤희는 선곡도 직접 한다. “신청곡으로도 눈비가 오고 계절이 바뀌는 때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날씨와 계절의 변화를 청취자와 함께 공유하는 건 라디오 디제이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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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 같은 사람이 있다. 늘 거기 있던 사람은 “벌써 10년이나 됐냐”고 되묻지만, 늘 그곳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10년밖에 안 됐냐”고 말한다. 매일 밤 10시면 어김없이 들리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떤 사람일까? 그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직접 찾아갔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 늘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안이다. 그 누군가(무언가)가 나만 바라보지 않더라도 말이다.
<시비에스>(CBS) 라디오 93.9㎒ ‘허윤희의 꿈과 음악 사이에’의 진행자 허윤희씨가 그렇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의 목소리는 매일 밤 10시에 있는 듯하다. 한달 뒤인 2017년 1월이면 그가 ‘꿈음’(꿈과 음악 사이에)을 맡은 지 10년이 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10주년’은 인터뷰를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 라디오 진행자들은 연예인이나 아나운서가 대부분이다. 그들과는 달리 허윤희씨가 사람들을 만나는 통로는 ‘꿈과 음악 사이에’가 유일하다. 매일 밤 만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오랫동안 궁금했던 이유다. 11월16일 오후 서울 목동 시비에스 방송국에서 허윤희씨를 만났다.
-디제이 허윤희를 인터뷰한다고 하니,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베일’에 싸여 있다는 느낌이 있는데, 의도한 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고요(웃음). (디제이 되고) 초반엔 인터뷰 기사도 많이 나갔어요. 일부러 숨기거나 하진 않았어요.”
-‘꿈음’을 들어보면, 개인 신상과 관련된 얘길 잘 안 하던데요?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것들을 싫어하는지 같은 얘기들은 방송 중에도 많이 해요. 다만 몇살인지 결혼은 했는지 같은 얘기들은 잘 안 하죠. 그런데 알 만한 분들은 또 다 아시던데요.(웃음)”
-의도하는 바가 있는 거네요?
“뭐 대단한 건 아니고요. 사연들 중엔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 저보고 언니라고도 하세요. 그런데 굳이 정정하진 않아요. 저를 그렇게 부르는 게 편안하다고 느낀다면 청취자의 마음속에 언니로 남는 게 디제이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요. 라디오라는 게 보는 게 아니라 듣는 거잖아요. 그리고 상상하는 거니까요.”
“사람들 앞에서 말도 못하던 제가…”
허윤희씨는 1981년생이다. 포털에서 검색을 하면 나온다. 그는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분들이 많아서 나이는 입력해뒀다”며 “마흔을 넘기면 그마저도 지워버릴까 생각중”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2006년 음악전문 디제이로 시비에스에 들어왔다. 오후 4시 ‘가요 속으로’를 석달 남짓 진행하다 2007년 1월1일부터 ‘꿈과 음악 사이에’를 맡았다. ‘꿈과 음악 사이에’는 밤 10시부터 자정까지 1990년대 전후 가요를 틀어주는 프로그램이다. 1970년에 시작된 프로그램으로 가수 김창완씨 등이 디제이를 맡기도 했다.
-2006년이면 스물여섯일 땐데, 내보내는 노래들이 어색하진 않았어요?
“오후 4시 프로그램 할 땐 더했고요. 제가 주로 들어왔던 노래들보다 세대가 빨랐으니까요. 그런데 또 점점 적응해가더라고요.”
-입사한 지 1년도 안 된 새내기 디제이에게 황금시간대라고도 할 수 있는 밤 10시 프로그램을 맡긴 거네요?
“제 목소리 같은 것들이 오후 프로그램보단 밤 시간대에 더 맞다고 판단하신 거 같아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게, 시비에스 오기 전에 경기방송 라디오에서 심야 프로그램을 했거든요. 그땐 혼자서 진행하고 원고 쓰고 선곡하고 다 했어요.”
-라디오 디제이가 꿈이었던 거예요?
“원래 방송사 아나운서 준비를 했었어요. 쉽지 않더라고요. 여러 번 낙방하고, 졸업하고 나니 뭔가 쫓기는 듯한 상태였는데, 그때 경기방송에 리포터로 들어가게 됐고요. 리포터 하다가 디제이를 해보라고 해서 하게 됐어요. 그러던 중에 때마침 시비에스에서 음악전문 디제이를 뽑은 거고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 전으로도 후로도 음악전문 디제이는 뽑지 않았거든요.(웃음)”
-10대, 20대의 허윤희는 말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나요?
“전혀요. 내성적이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걸 힘들어하는 그런 성격이었어요. 친구도 그렇게 많지 않아요. 목소리도 작고. 그래서 트라우마 같은 게 있었어요.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할 일이 있잖아요. 그러면 얼굴이 빨개지고 아이들이 깔깔깔 웃던 경험이 있는데. 그 뒤로 점점 위축돼 더 말을 못하게 되는.”
-그런데 아나운서를 하려고 했어요?
“대학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는데, 진로를 결정할 때쯤, ‘내가 잘 못하는 것에 도전하다 보면 나의 그런 면들도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랬던 허윤희가 디제이를 하고 있는 거네요?
“디제이 한다니까 친구들은 ‘니가? 디제이를?’ 이러죠. 남들 앞에 나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서.”
26살에 맡은 ‘꿈과 음악 사이에’
오는 1월이면 “벌써” 10주년
‘윗세대’ 음악·청취자 대하다
“이제야 맞는 옷을 입은 느낌”
작가와 2인 제작…선곡도 직접
사연·신청곡 통해 세상 알아가
“2시간 동안 DJ도 다른 삶 살아
변하지 않는 곳으로 남았으면”
‘익숙함이 좋긴 한데…’
-한달 뒤면 ‘꿈음’ 디제이 10년인데, ‘벌써 10년이구나’ 하는 실감이 들어요?
“아니요. 5년 정도 한 거 같아요. 오래 했다는 느낌은 안 들어요. 저희 프로그램이 매일매일의 콘셉트가 크게 다르진 않으니까. 12월이 돼 ‘어, 벌써 1년이 다 갔네?’ 하는 그런 기분이에요.”
-‘10년밖에 안 됐어?’라고 하는 청취자들도 많던데요?
“맞아요. 사연들 중엔 ‘십 몇년 전부터 들었다’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웃음) 아마도 프로그램이 편안하고 익숙하니까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꿈음’은 크게 바뀌지 않았을지라도 10년 동안 ‘인간 허윤희’는 나이를 들어가잖아요.
“그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예전엔 조심스러운 점이 많았어요. 저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하니까, 말을 단정적으로 하기 조심스러웠어요. 제 의견이 정답인듯 말하는 게. 뭐 대단한 인생을 논하진 않더라도 사연을 소개하다 보면 제 생각들을 말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도로만 말했었죠. 이제 저도 30대 중반을 넘어가니까, 청취자들과 접점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이제야 제 옷을 입은 느낌 같은. 뭐 여전히 저보다 나이 많은 청취자들이 많지만요.”
-선곡은 작가가 해요?(꿈음은 디제이 허윤희와 작가, 두 명이 제작한다.)
“제가 직접 해요. 원고를 보고 고르기도 하고, 신청곡을 받거나, 그 신청곡에 어울리는 노래들을 고르죠.”
-그럼 오늘 내보낼 음악들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거네요?
“그렇죠. 미리 정해놓기도 하는데, 또 그때그때 바꾸기도 해요. 사연 읽으면서 노래 검색해서 바꾸기도 하고.”
-선곡에 영향을 주는 건 어떤 것들이에요?
“그날그날의 분위기가 있어요. 우선, 날씨죠. 비가 오면 신청곡들이 확 달라져요. 눈이 와도 그렇고. 계절 영향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아, 절기에도 민감해져요.(웃음)”
-세상 변하는 걸 다 알 수 있네요?
“‘단풍놀이 가는 시기구나, 꽃구경 가는 계절이구나. 사람들이 이맘때 이런 걸 하는구나’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언제 보는지, 모의고사를 언제 보는지도 알죠. 내일은 수능이니까, 어젠 ‘마지막 야자(야간자율학습)였다’는 사연 많았죠. 경찰관은 순찰하면서, 소방관은 대기하면서 많이 들어요. 제가 어디 가서 이런 분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겠어요? 그런데 라디오니까 그런 속 깊은 곳에 있는 얘기를 꺼내주는 것 같아요. 제가 그분들을 잘 모르니까, 잘 아는 사람들에겐 자존심 같은 것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얘기들을 다 털어놔주세요. 그게 라디오의 매력이죠.”
-‘꿈음’엔 날씨나 계절에 맞춘 노래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러다 보면 음악이 반복되진 않나요?
“그런 면이 있어요. 신청하는 노래들이 겹칠 때도 많고. 청취자들 느끼거나 생각하는 게 비슷한 거 같아요. 적어도 1~2주 안에 내보냈던 곡들은 안 내보내려 하고 있어요. 고민거리 중 하나예요.”
-그런데 또 청취자들은 매일 듣는 게 아니니까….
“그렇죠. 신곡을 들려주면 ‘꿈음답지 않다’는 의견이 올라오기도 해요. 오랜만에 듣는데, 너무 최근 노래들만 나오면 또 실망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또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가 나오면 ‘이 노래 또 나오네’라고 느낄 수도 있는 거죠. 제가 해결해야 할 딜레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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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 ‘꿈음’이 시작되면 ‘인간 허윤희’는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 ‘디제이 허윤희’가 된다.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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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음은 내게도 또 다른 세상”
-차분하고 때로는 우울하기도 한 ‘꿈음’의 분위기는, 디제이 성격과도 닮은 건가요?
“평소 성격이 묻어나긴 하죠. 그런데 스튜디오에 혼자 들어가 방송을 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기분이 약간 가라앉아요. 진지한 사연을 소개하면서 ‘어떤 답을 해줘야 할까’ 생각하다 보면 차분해지죠. 제가 화도 내지 못하고 소리도 안 지를 것 같다고 하시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요.(웃음)”
-10년을 함께한 ‘꿈음’은 허윤희씨에게 어떤 곳이었나요?
“저도 사람인지라 속상한 일도 있고 울고 싶은 날도 있고 피곤한 날도 있잖아요. 그럴 때 밤 10시가 돼 방송을 시작하면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청취자들이 꿈음에서 많은 위로를 받듯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내가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러 오늘도 와 주었구나’ 하는. 굉장히 큰 위로였어요. 그냥 일만 한다고 생각했다면 빨리 지쳤을 거예요.”
-밤 10시부터 두 시간, 허윤희도 다른 삶을 살다 가는 거네요?
“그 두 시간은 인간 허윤희가 아니라 사람들이 반겨주는 디제이 허윤희로 사는 거죠.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꿈음’을 10년 가까이 끌고 온 원동력 중 하나는 허윤희의 추억과 경험인 것 같은데, 그게 바닥나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네요. 청취자 입장에선.
“진행하는 저는 오죽하겠어요.(웃음) 닳아질까봐 걱정하는 건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걸 원하는 분들이 많으셔서 힘이 돼요. 어떤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변화를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요즘 많이 하는 중이에요.”
-청취자들이 꿈음에서 무엇을 얻어 갔으면 좋겠어요?
“저도 어렸을 때 라디오 좋아했어요. 라디오를 켜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처럼 청취자들에게도 편안한 쉼의 공간이 펼쳐졌으면 좋겠어요.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몇 년 만에 다시 듣는다’며 미안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사실 그건 제가 감사할 일이죠. 11시부터 듣는 분도 있고 ‘드라마 보고 왔어요’ ‘박보검 보고 왔어요. 드라마에 나온 노래 틀어주세요’ 하는 분들도 있어요. 언제 들러도 그곳이 그대로 있다는 든든한 느낌으로 남아줬으면 하고 바라요. 변하지 않는 나만의 공간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날 인터뷰는 꿈음 방송 3시간 전인 저녁 7시께 이뤄졌다. 약속 시각보다 30분 일찍 도착해 방송국 옆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던 중 일본의 수필가 히라마쓰 요코가 쓴 <어른의 맛>을 집어 들고 책장을 넘겼다.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왔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확실치 않은 순둥이 같은 맛이다. 잔잔하기만 한, 시간이 완전히 멈춰버린 것 같은 아련함. 그곳에 자완무시(일본식 계란찜)의 참맛이 있다.”
허윤희씨와 그가 진행하는 꿈과 음악 사이에를 표현하기에도 딱인 듯해 옮겨 적었다. 속상하고 한숨 나오는 일상일수록 ‘잔잔하기만 한,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공간이 주는 위안은 크다. 비록 내일이면 비슷한 일상이 반복되겠지만. ‘꿈음’ 청취자들의 바람도 “오래 했으면 좋겠다”는 허윤희씨의 바람과 다르지 않을 듯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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