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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09 07:55 수정 : 2016.12.09 22:00

이세영 <에스엔엘> 방송 전 아이돌 추행
김윤석 무비토크서 성희롱 공약
“여배우 무릎담요 내리게 하겠다”
시청자·팬들 “사과하라” 항의 나서

<라디오스타> <진짜 사나이> 등 TV 예능
성희롱·추행 발언 수년간 수십건 넘어
“엉덩이가 화나있다” “가슴 찔러봐”
출연진 막말 내뱉고도 인식 못해
제작진 편집은커녕 되레 보태
“성희롱·성추행 무감각한 연예계 바뀌어야”

개그우먼 이세영이 성추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다. 지난달 26일 <에스엔엘 코리아 시즌8>(티브이엔)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다. 생방송 전 출연진과 초대손님의 인사 자리에서 아이돌 그룹 비원에이포의 중요 부위를 만진 것이다. 이 영상은 <에스엔엘 코리아>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왔고 팬들의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이세영은 자진 하차했고, 출연자들이 사과하며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팬들이 국민신문고에 수사를 요청하며 경찰 조사까지 이어졌다.

지난 1일 김윤석은 영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네이버 브이앱 무비토크 자리에서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공감’ ‘좋아요’를 뜻하는 하트가 20만개를 넘자, 진행자 박경림의 “하트 20만 넘었으니 뭐 할까요?”라는 질문에 여배우들이 다리를 가리려고 무릎에 올려놓은 담요를 가리키며 “담요 내리기”라고 답한 것이다. 당황한 박경림이 장난처럼 넘기려고 했지만, 몇차례 더 이야기하며 발언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 행동했다. 김윤석은 논란이 커지자 5일 시사회 자리에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최근 문제 행동과 발언이 잇따르면서, 성추행·성희롱에 무감각한 연예계 분위기가 다시 한번 논란이 되고 있다. 작가 671명이 성폭력 방지 서약을 하는 등 ‘문단 내 성폭력 근절 운동’이 이는 요즘, 연예계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세영의 돌발행동이 논란 된 <에스엔엘 코리아>
김윤석 발언 논란 된 네이버 무비토크.

“재미”라는 명분으로 묵인돼온 성희롱
물의를 빚은 이들은 모두 잘해보려고 한 것이 본의 아닌 결과를 초래했다고 말한다. <에스엔엘 코리아> 쪽은 “이세영이 생방송 무대에 오르기 전 사전 미팅에서 게스트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했던 행동이었다”며 “평소 착하고 예의 바른 연예인인데 파이팅하려는 마음이 지나쳐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윤석도 “경솔함과 미련함이 불편한 자리를 초래했다”고 했다. 김윤석의 발언은 “변요한의 양말을 벗어서 입에 물겠다”는 공약에서 시작해 ‘무릎담요’로 이어졌다. 영화 흥행을 위해 화제성을 노리려던 의도가 지나쳐 성희롱 발언까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미와 화제성을 노리고 성희롱인지조차 모르고 하는 행동과 발언의 위험성을 얘기한다. 그간 수많은 예능프로그램과 연예인들이 비슷한 의도로 비슷한 발언을 해왔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던 것이 지금의 사태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2010년 이후부터 최근까지 주요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의 성희롱·성추행에 가까운 발언으로 논란이 된 것만 수십건에 이른다. 평소 막말 논란이 끊이지 않는 <라디오 스타>(문화방송)에서는 김구라가 “올해는 결혼이 아닌 임신이 목표”라는 배우 황영희한테 “정자은행 같은 곳이라도 가는 게 어떠냐”고 말하는가 하면, ‘바스트 포인트’(젖꼭지) 찌르기가 개인기라는 가수 리지한테는 “남자들도 찍을 수 있냐”며 자신과 김진수의 젖꼭지를 찌르게 했다. 지난해 9월 <일밤-진짜 사나이>(문화방송)에서는 개그우먼 김현숙과 여자 출연자들이 모여 소대장이 섹시하다며 “엉덩이가 화나 있다” “엉덩이밖에 안 보인다”고 성희롱성 발언을 하는 내용이 그대로 방송됐다. 지난해 <로맨스가 필요해>(티브이엔)에서는 배우 라미란이 가수 에릭 남한테 기습 키스를 했고, 지난 2월 <나를 찾아줘>(에스비에스)에서는 이국주가 가수 조정치의 엉덩이를 여러 차례 만진 뒤 “만져 보니 처지긴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라디오 스타>
문제 인지 못하는 제작진이 더 문제
리얼 버라이어티, 관찰예능이 늘고, 가십을 얘기하는 토크프로그램이 많아지면서 생긴 부작용의 한 단면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한 예능프로그램 피디는 “10년 전만 해도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방송에서 반말을 못했는데 요즘은 반말은 물론, 막말도 서슴없이 하는 분위기가 되면서 사석에서나 하던 이야기를 거침없이 내뱉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튀는 언행을 개성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연예인들의 돌발 행동을 부추긴다. 한 개그맨은 “예능에 나가면 무조건 웃겨서 화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튀는 발언과 과감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김윤석의 발언을 제외하면 제작진이 편집 등으로 모두 거를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무감각이 가장 큰 문제라고 꼬집는다. 이국주는 논란이 되자 다른 방송에 출연해 “(엉덩이를 만진 건) 대본에 있는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이세영의 성추행 장면도 디지털 마케팅팀에서 촬영해 올린 것이다. <에스엔엘 코리아> 쪽은 “생방송 전이라 피디나 작가 등은 정신이 없어서 그런 장면이 촬영되어 올려졌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영상 담당자가 성추행으로 문제가 될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내부 분위기를 대변한다. <진짜 사나이> 제작진도 당시 여자 출연자들의 엉덩이 발언에 ‘승천할 것 같은 힙업 엉덩이’라는 자막을 넣고 컴퓨터 그래픽을 넣는 등 부적절한 편집으로 한술 더 떴다. 논란이 될 때마다 해당 출연자, 피디 교체 등으로 유야무야 넘어간 것도 문제를 키웠다.

이승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에스엔엘 코리아> 사태를 두고 “다른 출연자들이나 제작진이 말리거나 문제제기 하긴커녕 웃으면서 지켜보고 급기야는 프로그램 에스엔에스에 ‘웃자고’ 올렸다는 것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이 죄다 성폭력과 신체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렇다면 그 일터는 굉장히 위험한 일터인데, 그런 일터에서 유쾌하고 건전한 웃음이 나오기 어렵다”며 “출연자 단계는 물론, 작가진, 연출진 단계에서도 걸러지지 않는다면 시즌을 접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윤석 사과해 해시태그, 시청자, 팬들이 나서
시청자와 팬들이 스스로 문제제기에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는 희망적인 변화가 읽힌다. 김윤석 발언 이후 인터넷에서는 ‘#김윤석 사과해’라는 해시태그가 달렸고, <에스엔엘 코리아> 사태 또한 팬들의 문제제기로 알려졌다. 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제는 불편한 것에 목소리를 내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그동안 무감각하게 벌어졌던 방송가의 성추행·성희롱 행위들도 잦아들지 않을까 기대도 나온다. 한 방송사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방송들을 보면 여자들뿐 아니라 남자들의 옷을 벗기고 만지는 장면도 많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게 정말 잘못된 행동이라는 게 각인될 것이고 제작진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트렌드를 앞서가고 공공의 콘텐츠를 만드는 방송가와 연예계에 인권감수성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는 대안도 제기된다. <티브이엔> 쪽은 <한겨레>에 “<에스엔엘 코리아> 제작진과 유관 담당자들은 내부 프로세스에 의해 인사평가를 받게 될 예정이며, 심의와 규정에 관한 교육을 철저히 이수하도록 조치했다”며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다양한 시각의 프로세스 및 교육을 고도화하고 있으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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