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09 19:50
수정 : 2016.12.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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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가 티브이엔 <도깨비>에서 맡은 배역 ‘김신’은 900년의 세월을 넘게 살아오며 세상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고 변화하는 모습을 죄다 지켜본 도깨비다. 형벌 같던 제 오랜 영생을 멈추게 해줄 ‘도깨비 신부’ 은탁(김고은)을 만나 흔들린다. <도깨비>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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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드라마 ’도깨비’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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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가 티브이엔 <도깨비>에서 맡은 배역 ‘김신’은 900년의 세월을 넘게 살아오며 세상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고 변화하는 모습을 죄다 지켜본 도깨비다. 형벌 같던 제 오랜 영생을 멈추게 해줄 ‘도깨비 신부’ 은탁(김고은)을 만나 흔들린다. <도깨비>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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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를 한번 다뤄보면 어때요?” 지난여름 <부산행>과 <밀정> 사이, 한 방송작가가 내게 물었다. 공유가 점점 눈에 밟히고 자기 주변 사람들도 점점 공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방송에서 한 차례 다뤄보면 어떻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죠.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제안을 거절했다. 물론 그때에도 이미 공유는 정성 들여 다루기 좋은 배우였다. 데뷔 15년차 배우고, 쌓아온 필모그래피도 그만하면 충분히 듬직했다. 그래도 조금은 더 기다리고 싶었다. 곧 <밀정>이 개봉되고 연말에는 김은숙 작가와 함께 하는 드라마 <도깨비>가 방영된다는 걸 뻔히 아는데, 그의 매력이 더 많이 드러난 이후에 다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파이크를 때려 넣기 좋은 높이까지 공이 떠오르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배구선수의 마음이었달까.
공유도 그와 비슷한 마음으로 필모그래피를 채웠을 것이다. 입대 전 문화방송 <커피프린스 1호점>(2007)으로 드라마를 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경험을 선사한 이래, 공유라는 이름은 믿고 봐도 좋을 신뢰의 대상이 됐으니까. 그러나 그의 필모그래피는 조금은 예상을 깨는 방향으로 채워졌다. 전역 후 남성성을 과시할 수 있는 역할들을 찾는 남자 배우들의 흔한 컴백 패턴과는 달리 그는 “캐릭터가 돋보이는 것보다는 영화가 좋은 게 중요”하다며 로맨스 영화 <김종욱 찾기>(2010)로 돌아왔고, 군 복무 시절 지휘관에게 선물받은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2009)를 읽고는 “우리가 싸워야 하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극중 인물의 말 한마디를 뇌리에서 지우지 못해 직접 영화화를 제안해 출연했다. ‘어라, 이 배우 의식있는 배우였네’라는 식의 흔한 꼬리표 달기가 이어질 무렵 한국방송 <빅>(2012)에 출연해 다시 한번 로맨틱 코미디를 선보이며 어른의 몸에 깃든 아이를 연기했다. 순한 눈망울의 달콤한 남자에 다시 익숙해질 무렵, 다시 방향을 급선회해 원신연 감독의 극한 액션 <용의자>(2013)에 출연해 절박한 심정으로 누명을 벗으려 달리는 인간병기를 연기했다.
‘커피프린스 1호점’으로 부상
전역 후 액션물·사회파 영화 등
종잡기 힘든 선택…3년 공백도
“생각할 기회 주는 작품 골라”
‘도가니’ 인호, ‘용의자’ 동철 등
저항하고 정면돌파하는 역할
혼란한 시대 감정이입할 주인공
900살 ‘도깨비’ 역도 설득력 얻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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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물과 액션물, 사회파 영화가 고루 섞여 있는 배우 공유의 필모그래피. 그 자체로는 이상할 게 없지만 그 흐름은 도통 종잡을 수 없었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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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맡은 역할의 최대공약수는?
로맨스물과 액션물, 사회파 영화가 고루 섞여 있는 필모그래피. 그 자체로는 이상할 게 없지만 그 흐름은 도통 종잡을 수 없었다. 노 젓기 좋게 물이 들어올 때 뭍으로 나와 먼 산을 관망하다가, 이제 산을 오르려는 건가 싶으면 다시 물로 나아가는 흐름. 해서 공유는 종종 ‘연기파’, ‘모델 출신’, ‘멜로 전문’ 등의 범주화를 통해 설명이 가능한 동시대 남자 배우들과는 달리 외따로 떨어진 존재처럼 보였다. “이제 시나리오를 보면 흥행할 영화인지 아닌지 감이 온다. 하지만 흥행을 이유로 작품을 선택하지는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무엇이 됐든 관객들에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영화가 좋다.” 영화 <부산행>이 개봉한 이후 <오마이스타>와 한 인터뷰에서 공유는 자신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을 이렇게 설명했다. 직접 작품의 제작에 나서지 않는 이상 배우란 선택을 기다리는 직업이다. 이쯤 해서 이러이러한 작품을 하면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제작되기를 진득하게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한창때의 젊은 남자 배우에겐 쉬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래서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종종 빈칸이 보인다. <도가니> 이후 2년의 공백을 두고 영화 현장에 돌아온 <용의자>가 개봉됐을 때 그는 “1년에 2편은 촬영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가 한 해에 세 작품을 들고 극장가로 돌아오기까지는 3년이란 공백이 더 필요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 신중을 기해 작품을 더디 고르는 배우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가 분한 인물들을 체로 쳐서 최대공약수가 뭔지 확인해보면 알 수 있을지 모른다. <커피프린스 1호점>의 한결은 남자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은찬(윤은혜)을 보며 두근거리는 자신의 마음에 당혹스러워했고, <도가니>의 교사 인호는 물리적·성적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청각장애 아동들의 참혹한 실태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했던 가족을 잃고 형형한 눈빛으로 분노하던 <용의자>의 지동철, 예기치 않게 찾아온 격정 앞에서 흔들리는 <남과 여>의 기홍, 출구가 없는 열차 안에서 밀려오는 좀비떼를 상대로 딸을 지켜야 하는 <부산행>의 석우, 제 조직원 중 누가 밀정인지 찾아내기 위해 한명 한명 따로 지령을 내리며 모두를 의심해야 했던 <밀정>의 김우진까지, 공유가 맡은 인물은 화면 위에서 자주 흔들리거나 회의했다. 그는 예기치 않은 사건이나 현상 앞에서 그간 알고 있던 안온했던 세계가 부서지는 격변 속에 던져진 인물로 자주 분했고, 그때마다 그의 큰 눈망울은 대사보다 더 깊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연기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공유가 맡은 인물은 아주 높은 확률로 그 혼돈 속으로 뛰어들어 돌파해내는 쪽을 택한다. <도가니>의 인호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원장과 교사들의 비행을 세상에 폭로하는 쪽을 택하고, <용의자>의 지동철은 부서지고 깨져가며 힘있는 자들에게 저항하고 누명을 벗으려 발버둥친다. 말 그대로 좀비들이 우글거리는 열차 칸을 헤치고 지나가 용석(김의성)의 멱살을 잡고 “왜 그랬냐”고 따져 물었던 <부산행>의 석우나, 이정출(송강호)에 대한 불신과 같은 의열단 내 밀정의 존재에 대한 의심 속에서도 한번 시작한 작전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밀정>의 김우진도 그랬다. 어쩌면 공유는 세상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조차, 불안과 회의를 이기고 그 상황을 정면돌파하고자 노력하는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제 감정 하나만 믿고는 은찬을 붙잡고 “너 좋아해.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젠 상관 안 해. 정리하는 것도 힘들어서 못해먹겠으니까, 가보자 갈 데까지…. 한번 가보자”라고 말했던 <커피프린스 1호점>의 한결일 때부터.
“무리를 해서라도…”
올 한 해 그를 찾은 감독과 작가들이 많았던 것, 그가 선택한 작품이 유독 많았던 이유도 이제 설명이 가능하다.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웠던 시절, 권력의 언어는 종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웠고 익숙했던 세계는 죄다 무너져 내리는 시대에 공유의 얼굴을 필요로 하는 작품들이 많은 건 어찌 보면 필연이었을 테니까. 강철처럼 단단해서 좀처럼 흔들릴 줄 모르는 투사가 아니라 나처럼 흔들리고 괴롭고 회의하기에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주인공, 그러나 그럼에도 결국 이 혼란을 정면으로 뚫고 지나가려는 동시대인을 그리기에 공유만한 얼굴이 또 있으랴. 그가 티브이엔 <도깨비>에서 맡은 배역 ‘김신’은 심지어 900년의 세월을 넘게 살아오며 세상이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고 변화하는 모습을 죄다 지켜본 도깨비다.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 여기던 차, 김신은 형벌 같던 제 오랜 영생을 멈추게 해줄 ‘도깨비 신부’ 은탁(김고은)을 만나 흔들린다. 900여년의 고독과 허무가 일순에 흔들린다는 일견 황당하고 허무맹랑한 설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공유의 얼굴을 만나 설득력을 얻었다.
“<밀정> 끝나면 쓰러지지 않을까.” 올해 초 이윤기 감독의 <남과 여> 개봉 당시 홍보차 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공유는 한 해에만 주연작 세 편을 극장에 올리는 배우의 피로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피로를 토로하는 말 뒤에 곧바로 따라붙은 건 의욕이었다. “그래도 나이는 멈춰주지 않으니 나중에 할 수 없는 역은 무리를 해서라도 하게 된다.” 핀란드의 숲에서 서울발 부산행 케이티엑스 열차로, 상하이 프랑스 조차지에서 다시 성북동의 도깨비 집으로. 덕분에 우린 공화국이 가장 혼란스러운 격변의 시절, 흔들리면서도 이 난세를 회피하지 않고 끝끝내 돌파하는 이의 초상을 벗 삼아 한 해를 건널 수 있었다. 역시, 그에 대해 다루는 걸 겨울까지 미룬 건 잘한 일 같다.
▶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연재 4년차인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 명 한 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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