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09 19:52
수정 : 2016.12.09 21:02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괴물>
좌천을 앞둔 형사 고자이 다케오(사토 고이치)는 과거 악연으로 얽혔던 도지마 아키라(가나메 준)의 국회의원 선거 출마 소식을 듣게 된다. 전 방위대신이자 정계 실세의 아들인 도지마는 이미 공식 출마 전부터 ‘정계의 프린스’로 불리고 있었다. ‘아버지 같은 정치가가 되어 이 아름다운 나라를 지키고 싶다’는 그의 출마 선언과 ‘안심하고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내세운 공약은 수많은 지지자를 불러 모은다. 그러나 도지마의 번듯한 이미지 뒤에는 추하고 흉악한 범죄와 이를 부친의 권력으로 은폐한 과거가 있었다. 15년 전 그의 범죄를 밝혀내지 못한 채 후회의 세월을 살아왔던 고자이는 그의 출마만은 막기로 결심한다. 때마침 고자이 앞에 15년 전 도지마 사건의 또다른 피해자 후지이데라 리사(다베 미카코)가 나타나고, 둘은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비밀스러운 계획을 세운다.
2013년 일본 요미우리티브이 개국 55주년 특집 드라마로 제작된 <괴물>은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비극과 그로 인한 깊은 후유증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자이는 거대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법률 시스템의 무력함에 회의를 느끼며 직장에서 겉돌다 좌천까지 당하고, 후지이데라는 과거 자신의 침묵이 더 큰 비극을 불러왔다는 죄책감과 도지마에 대한 원한으로 15년간 고통스럽게 살아왔다. 그리고 <괴물>은 시청자들이 둘의 사연에 이입하며 도지마를 혐오하게 될 즈음, 슬그머니 질문 하나를 던진다. 만약 법으로도 처벌하기 어려운 사악한 범죄자를 빠르게 응징할 수 있는 초법적 길이 있다면 그를 선택할 것인가? ‘아이들에게 밝은 미래와 희망이 있는 나라’를 외치면서 그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은 도지마의 뻔뻔한 미소와 피해자의 억울한 눈물이 대조를 이룰 때마다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괴물>은 악마 같은 인물에 대한 증오가 절정에 달한 순간 뜻밖의 반전을 마련한다. 고자이의 뜨거운 복수심은 완전범죄로 사적 복수를 자유롭게 행하는 마사키 료(무카이 오사무)의 등장으로 혼란에 빠진다. 마사키에게는 과거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한 금융사기 사건에서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가족의 상처가 있다. 그 사건 이후 소시오패스가 된 마사키는 말하자면 무력한 시스템과 초법적 응징의 욕망이 결합해 탄생한 ‘괴물’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뒤 많은 여운을 남긴 결말에서 그 ‘괴물’의 미소 띤 얼굴을 결국 우리에게로 향하게 한다. 갑갑한 현실은 소위 ‘사이다’ 같은 서사의 유행을 불러왔지만 거대한 권력에 의해 은폐된 진실일수록 그 실체가 드러나는 데 오랜 시간과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잊지 말아야 할 진리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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