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12.22 17:46
수정 : 2016.12.23 14:24
KBS2, 3년만에 웹툰 원작으로 한
시트콤 ‘마음의 소리’ 인기몰이
뒤이어 ‘정남이형’도 방송 준비중
SBS ‘초인가족’ 내년초 선보여
모바일시대 ‘스낵컬쳐’ 유행인데다
중국시장 등 수익모델 다양해져
‘가족’ 뻔한 소재 뛰어넘는게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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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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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금요일 밤 11시10분은 배꼽 잡는 시간이다. <한국방송2>(KBS2)가 9일부터 선보인 뒤 입소문을 타고 있는 시트콤 <마음의 소리> 때문이다. 조석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조석과 가족이 펼치는 역동적인 일상을 그린다. 반항심에 장롱 안에 숨어 있다가 집 나간 것처럼 돼버린 묘한 상황에서 일이 점점 커지는 식의 이야기에 병맛 개그를 심었다. 시청률은 3~5%지만, 공감과 재미를 모두 잡았다는 호평이 나온다.
<한국방송>이 <일말의 순정>(2013년) 이후 3년 만에 시트콤을 내놓은 데 이어, 한동안 뜸했던 시트콤들이 속속 안방극장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한국방송2>는 <마음의 소리>뿐 아니라 특집 시트콤 <정남이형>도 준비중이다. 네덜란드 청년이 한국 여자에게 반해 무작정 한국에 온 뒤 한국과 한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김지훈, 오하영, 이현재 등이 출연한다. <에스비에스>(SBS)도 2012년 <도롱뇽 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시트콤 <초인가족>을 내년 초 방영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는 한 가족의 생활기라는 정도만 알려져 있다.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최문석 피디가 연출하고, 박혁권, 오윤아, 박선영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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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주인공들.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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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오박사네 사람들>로 시작된 시트콤은 흥망성쇠의 역사를 보냈다. <세친구>를 시작으로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안녕 프란체스카>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찬란한 시절을 지냈지만 ‘하이킥 시리즈’ 종영 이후 쇠퇴기를 걸었다. 시트콤이 대부분 일일드라마처럼 매일 방송해 제작진의 부담이 큰데다, 김병욱 피디, 노도철 피디 등 특정 몇몇 연출자의 능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 피디는 “방송사 내부 인력 중에서 시트콤에 특화된 작가나 피디가 별로 없어서 특정인의 역량에 기댔고,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시트콤의 인기가 널뛰기했다”고 말했다. 방송사들이 어려워지면서 제작비 대비 수익률이 낮은 시트콤은 점차 안방극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시트콤식의 코믹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는, 시트콤의 변별력이 사라진 것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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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오박사네 사람들>부터 2000년대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화제의 시트콤들. 각 방송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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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시트콤에 최근 생기가 도는 데는 달라진 방송 환경이 영향을 미쳤다.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웹툰, 웹드라마 등 짧게 보고 소비하는 이른바 ‘스낵컬처’가 인기를 끄는 등 시청 패턴이 달라졌다. 15~30분 남짓의 시트콤은 웹 환경에 안성맞춤이다. <마음의 소리> 김호상 책임피디(시피)는 “<마음의 소리> 제작에는 달라진 시청자 패턴도 영향을 끼쳤다. 티브이 시트콤이 아닌 웹드라마로 접근했고, 웹으로 선공개하고 티브이로 방송하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마음의 소리>는 11월 웹드라마로 10편을 먼저 내보냈고, 지상파용 신작 10편을 추가로 제작해 한 회에 15분짜리 에피소드 4편을 묶어 방영한다. 2014년 드라마 <간서치열전> 등 ‘웹 선공개 티브이 후편성’은 있었지만, 새로운 아이템을 추가로 제작해 내보내는 것은 처음이다. 김 시피는 “포털 공개 6일 만에 재생수 1000만뷰를 넘어섰다. 웹에서 반응이 좋아 티브이에서도 좋은 시간대에 편성됐다”고 했다.
김선영 대중평론가는 “일상의 코믹함을 담은 웹툰이 많아진 것도 시트콤에 자극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른바 ‘일상툰’을 기반으로 아이디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마음의 소리>도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2006년부터 10년간 연재중인 인기 웹툰이 원작이다. 웹드라마로 먼저 소개하면서 주로 사전 제작을 해 제작 여건의 어려움도 덜었다. <마음의 소리> 하병훈 피디는 “웃음 코드를 위해 현장에서 대본 수정을 많이 한다. 일단 찍어보고 재미없으면 배우들과 의논해서 만들어냈다”고 했다.
티브이 광고 외에는 수익모델이 없었던 시트콤이 플랫폼의 다양화로 돌파구를 찾은 것도 장밋빛 전망을 낳는 요인이다. <마음의 소리>는 중국에 판매되어 웹으로 동시 전송됐고, 1억뷰가 넘어섰다. 넷플릭스에도 판매가 됐다. 김 시피는 “인터넷의 인기를 기반으로 티브이 광고도 1, 2회 완판됐다.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정남이형>도 외부 협찬으로 한국 홍보성을 가미해 제작했고, 이를 <케이비에스월드> 채널로 전세계 100여개 나라에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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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리> 이광수.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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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이 또 한번의 도약을 이루려면, 다양한 소재 발굴이 관건으로 보인다. <오박사네 사람들>부터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성공한 시트콤은 대부분 가족의 일상 이야기다. 권위 있어 보이지만 빈틈 많은 아버지는 <오박사네 사람들>부터 <마음의 소리>까지 이어진다. 사실상 집안의 절대 권력자 엄마, 철부지 아들, 청순한 외모의 여주인공 등 기본 캐릭터는 비슷하다.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어 바지와 팬티로 뒤를 닦고 하반신 반라 상태로 거리를 질주하는 식의 이야기가 디테일만 달리했을 뿐 익숙한 공식처럼 재현되곤 했다. 어떻게 새로운 소재를 가미해 변주해낼지가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웹드라마 기반의 시트콤들이 ‘병맛 개그’ 등 무의미한 웃음 유발에만 무게를 두면서, ‘하이킥 시리즈’ 등에서 보여준 풍자성이 사라진 데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윤석진 교수는 “에피소드 두개를 교차시키는 식의 공식화된 틀에서 벗어나 시트콤 특유의 경쾌함을 되살리는 것과 더불어, 궁극적으로 재기발랄한 풍자성이라는 문제의식도 장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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