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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06 14:38 수정 : 2017.01.10 15:32

유니버설뮤직 제공

[토요판] 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유니버설뮤직 제공
짐작들 하셨겠지만, 이번 화 칼럼의 주인공은 조지 마이클 그리고 왬(Wham)이다. 지난 회 크리스마스 캐럴 특집 칼럼에서 별 생각없이 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놨는데, 칼럼이 실린 다음날 조지 마이클의 부고를 들었다. 그리고 쏟아지는 지인들의 카톡들.

-조지 마이클 오빠가 죽었대! 엉엉.

-뉴스 봤어? 우리 술이라도 한 잔 하면서 보내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렇다. 그는 이제 40대에 접어든 우리 아재, 언니(아줌마라는 말은 예의상 참아본다)들에게 눈물 없이는, 한 잔의 술 없이는 떠나보내기 힘든 존재인 것이다.

198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나에게는 마이클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우상이 있었다.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오늘 칼럼의 주인공 조지 마이클. 한 명은 이름, 한 명은 성이었지만 영어를 잘 모르던 아이에게 마이클은 그냥 다 마이클이었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푹 빠져 살았던 조지 마이클은 친구 앤드류 리즐리와 함께 듀오 왬을 결성한다. 1983년에 첫 음반 <판타스틱>을 발표하고 이듬해 그 유명한 싱글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고’(Wake me up before you gogo)를 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왬은 그 뒤로도 탄탄대로를 달렸다. 히트곡을 계속 발표하면서 1985년에는 중국 만리장성을 방문하고 북경 인민체육관에서 공연을 열기도 했다. 이 공연은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열린 최초의 팝 공연이었다. 3집 음반에서도 지난 회에 소개한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비롯해 여러 곡을 히트시켰는데, 결국 1986년에 해체를 선언하고 조지 마이클은 솔로로 독립한다. 듀오 시절에도 조지 마이클에게 무게중심이 확연히 쏠려있었기에 예상 못한 바는 아니었다.

참 부지런하게도 그는 이듬해 바로 솔로 데뷔 음반을 발표한다. 그 즈음이 조지 마이클의 창작력이 폭발하던 시기로 짐작된다. 그 짧은 시간에 정말 대단한 음반을 만들어냈다. 왬 시절에도 노래는 워낙 좋았고, 반응도 뜨거웠지만 조지 마이클 솔로 1집 <페이스>(Faith)와 비견될만한 음반은 왬은 물론이고 팝 역사를 통털어 봐도 그리 많지 않다. 1987년에 발매된 이 음반은 그래미 ‘올해의 앨범’ 수상과 더불어 백인 가수가 발표한 아르앤비(R&B) 음반 중 최초로 빌보드 아르앤비(R&B) 음반 차트 1위를 차지한 기록을 갖고 있다. 수록곡 중 무려 4곡이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고 2500만 장이라는 믿어지지 않는 판매고를 자랑하는 음반이기도 하다. 왬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하이틴 팝 듀오였으나 활동기간을 전부 합쳐도 조지 마이클의 데뷔 음반 1장이 거둔 성과에 못 미친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솔로로 활동한 시절이 비교할 수 없이 길고 음악적인 면에서도 충실하지만 추억을 소환하는 힘은 단연코 왬이 강하다. 대체 그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추억은 아쉬워야 제 맛이기 때문일까?

어딘가 미완의 느낌이 있던 왬 시절의 노래들에 비해 솔로로 발표한 노래들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수준이었다. 즐기기보다는 감상해야 할 것만 같은. 노래들을 한번 따라 불러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거리감이 느껴지는 걸까?

1980년대의 추억을 견인하는 매개체들은 쉽고 단순한 감탄사를 이름으로 한 경우가 많다는 점도 같은 맥락일 수 있겠다. 이렇게 써보면 어떨까?

“그 시절 우리들은 듀오 왬(Wham)과 아하(A-Ha)의 노래들을 요요(Yo-yo)나 마이마이(My my)같은 카세트 플레이어로 듣곤 했다.”

지금 10대, 20대 세대들이 이 문장을 보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왬이나 아하의 노래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좋은 음악이 세대의 벽을 가뿐히 뛰어넘으니까. 내가 비틀즈와 레드제플린에 열광했듯이 말이다. 조지 마이클은 분명히 지금 세대, 앞으로의 세대에도 축복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2016년 크리스마스 이후에 태어난 아이가 나중에 그의 음악을 듣고 이렇게 감탄할지도 모르지.

‘아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렇게 멋진 음악이 있었단 말이야?’

덧붙이자면, 조지 마이클과 함께 왬으로 활동했던 앤드류 리즐리는 음악을 안 한 지 오래되었다. 1990년에 발표한 솔로 음반이 별 반응을 얻지 못한 뒤로, 역시 1980년대의 팝 아이콘인 바나나라마(Bananarama)의 멤버 카렌 우드워드와 결혼해 식당을 차렸다는 소식이 내가 아는 마지막 근황이다. 이후의 소식을 아는 분이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마이클 잭슨도 조지 마이클도 죽었다. 나의 1980년대는 이제 완전히 추억으로 박제된 기분이다. 오늘은 오롯이 두 마이클의 음악만 들으면서 남은 하루를 보내야겠다. 그래도 하루가 모자란다.

이재익 에스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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