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06 19:40
수정 : 2017.01.07 14:06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도쿄여자도감>
올해 대중문화계에서 주목해야 할 이슈 중 하나는 국내에 진출한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들의 경쟁 구도다. ‘유튜브 레드’가 지난달 6일,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가 14일부터 국내 서비스를 시작했고, 넷플릭스는 이번주로 국내 진출 1주년을 맞았다. 아직은 콘텐츠 부족으로 ‘껍데기 상륙’이라는 평도 많지만, 경쟁이 본격화할수록 서비스 질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건 이들 중 누가 승자일까가 아니라 이 경쟁 자체가 국내 콘텐츠 시장에 미칠 영향이다. 수준 높은 자체제작 능력을 증명한 기업들의 분전이, 특정 흥행 공식으로의 쏠림 현상이 극심한 콘텐츠업계에 다양성 확보와 완성도 상승을 이끌어내길 기대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경쟁체제가 가동된 일본 드라마계만 봐도 그렇다. 넷플릭스의 <굿모닝콜>, <불꽃>, 훌루의 <대상>, 아마존 프라임의 <우주의 일>, <후쿠야당 딸들> 등 다양한 자체제작 시리즈들은 시청률에 관계없이 일정한 완성도와 세련된 스타일로 일본 드라마 생태계를 한층 활성화하고 있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아마존 프라임의 <도쿄여자도감>도 눈에 띄는 작품 중 하나다. 도쿄에 사는 독신 여성들의 사랑과 생활을 리얼하게 그린 이 작품은 얼핏 흔한 칙릿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통적인 여성 성장 서사 위에 얹어진 웹드라마 특유의 날렵한 리듬이, 도쿄라는 거대한 상품 카탈로그 같은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예민한 여성의식을 잘 포착하고 있어 꽤 흥미롭다.
시골에서 자란 사야토 아야(마즈카와 아사미)는 도쿄를 동경한다. 딱히 거창한 꿈이 있어서는 아니다. 무엇이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는 교사 앞에서 ‘예쁘고 멋진 모습으로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하는 아야의 모습은 매우 미숙해 보인다. 스스로 “주체성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대도시 동경은 단순한 허영과도 거리가 멀다. 도쿄에서 대학을 나오고도 결혼 뒤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와 전업주부가 된 엄마의 삶이 보여주듯, 여성에게 전통적인 성역할을 요구하는 시골을 벗어나고픈 욕망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고향 대학을 나와 고향 기업에 취직해서 착한 남자와 결혼해 따뜻한 가정을 갖는” 삶은 싫다는 말은 아야가 전형적인 페미니스트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주체성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성격은 도쿄 상경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스펙’의 화려한 삶을 선망하면서도 직위, 거주지역, 패션 등에 따라 사람을 구분 짓는 도쿄계급구도를 간파하는 아야의 시선에는 현실과의 비판적 거리가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도쿄여자도감>은 넷플릭스가 일본에서 최초로 선보였던 오리지널 드라마 <아틀리에>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전형적 칙릿의 틀을 따라가면서도 무뚝뚝하게 일 이야기만 하는 색다른 여성주의 성장기를 그려낸 <아틀리에>처럼 이 작품 역시 여성서사를 한층 다채롭게 하는 데 일조한다. 드라마 생태계는 그렇게 진화해가는 것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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