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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14 17:41 수정 : 2017.03.14 18:47

<피고인> 엄기준부터 <보이스> 김재욱
절제된 표정, 눈빛으로 내면 표현
손가락질받던 예전과 달리 인기

가정폭력, 열등감 등 악역에도 사연
묻지마 범죄 등 사회 현실 담겨있어
시청자는 본인 성찰하며 공감 보내

문제! 요즘 사랑받는 드라마에는 ○○이 있다. 뭘까? 정답은 ‘악역’이다. 시청률 25%(최근 방송 기준, 닐슨코리아 집계)를 넘은 <피고인>(에스비에스)에는 엄기준, 17%를 넘은 <김과장>(한국방송2)에는 이준호가 있고, 12일 케이블로는 높은 수치인 5.6%로 종영한 <보이스>(오시엔)에는 김재욱이 있었다. 미스터리 시리즈로 관심받았던 <미씽나인>(문화방송)도 악역 최태준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드라마에서 ‘살벌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착한 남자’ 주인공 이상으로 사랑받는다.

권선징악의 이야기가 인기를 끄는 한국 드라마에서 악역은 늘 존재했다. 그러나 과거에는 지탄의 대상이었다. 1987년 <사모곡>에서 처음으로 악역을 했던 정보석은 2010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사모곡> 때는 길을 지나가면 할머니들이 돌멩이를 들고 쫓아왔다”고 했다. 1971년 장희빈을 연기한 윤여정은 1993년 <문화방송> 창사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 “동네목욕탕에서 ‘나쁜 년’이라는 욕과 함께 뜨거운 물세례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이스> 김재욱. 오시엔 제공
그랬던 악역이 ‘최애캐’(최고로 애정하는 캐릭터)가 된 건 요즘 드라마들이 악역에도 ‘히스토리’를 만들어주면서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수년 전부터 악인이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들을 만들어주고 그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드라마 속 악역이 밀도 있게 재창조되고 있다”며 “그러면서 시청자들이 ‘왜 저렇게 됐을까’, ‘나도 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등 성찰의 시선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피고인>의 차민호(엄기준)는 형에 대한 열등감, 아버지의 차별 등이 그를 엇나가게 만들었다. <보이스> 모태구(김재욱)도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상처를 안고 있다. <김과장> 서율(이준호)도 “강자한테도 강하고, 약자한테도 강한” 누구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하고 싶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는 점이 이전 악역들과는 다르다.

<피고인> 엄기준. 에스비에스 제공
악역이 다양한 매력 또한 갖춘 입체적 캐릭터로 묘사된 것도 호감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시종일관 ‘선한 주인공’보다는 악랄한 모습에, 인간적인 면모, 때론 코믹한 모습까지 한 드라마에서 다채로운 모습을 끄집어낸다. <김과장>의 서율은 목적을 위해 악행을 서슴지 않지만, 윤하경(남상미) 앞에서만큼은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가 하면, 자신한테 당한 김성룡(남궁민)한테 “정보 고자! 고 투 더 자!”라며 랩을 하는 듯한 동작을 선보이는 등 중간중간 코믹한 설정을 더해 ‘귀여운 악역’으로 사랑받는다. 다채로운 캐릭터는 배우들의 연기 의욕도 부추긴다. 꽃미남 역할을 주로 했던 김재욱은 <보이스>에서 악역 연기로 재평가받았다. 왕 역할을 많이 했던 최수종도 “사이코패스 등 악역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드라마가 비추는 악역이 시대에 따른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담고 있어 공감을 준다는 분석도 있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한동안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 있는 악역에 주목했지만, 묻지마 범죄가 난무하고, 강남역 살인사건 등 살인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진 최근 들어서는 이유 없는 ‘사이코패스’가 악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이스> 모태구는 심복마저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사이코패스이고, <미씽나인> 최태호(최태준)도 살인마 본능을 갖고 있다. 윤석진 교수는 “‘어떻게 인간이 저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라고 얘기하는 상황들을 현실에서 너무 많이 접해왔다. 악역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재벌 2세, 3세가 악역으로 주로 나오는 것도 돈을 쥔 사람이 법마저 좌지우지하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재현한다.

<김과장> 이준호. 제이와이피엔터 제공.
악역을 연기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었다. 과거에는 야비하게 보이려고 액션을 크게 했다면, 최근에는 절제된 표정 연기로 내면의 악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김과장> 제작사 로고스필름 쪽은 “이준호가 서율이 되려고 표정부터 눈빛, 제스처에 특히 신경 쓴다”고 말했다. 요즘은 또 누가 봐도 악역처럼 보이는 험상궂은 외모 대신 섬세한 얼굴이 선호된다. 이준호, 김재욱, 엄기준 모두 날렵한 외모가 닮았다. 한 지상파 드라마 피디는 “입꼬리를 올리거나, 눈을 치켜뜨는 등 미세하고 절제된 행동으로 순간의 야비함을 보여주려면 섬세한 얼굴이 제격”이라고 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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