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3.15 16:00
수정 : 2017.03.15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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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온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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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후 12년 만에 재연
러시아 희곡 원작 밑바닥 인생 그려
배우들 연기, 촘촘한 연출 모두 좋아
내면 잘 전달하려 200석 소규모로
겉치레 화려한 대형 공연에 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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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온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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푯값 6만원이 안 아깝다. 공연이 끝나면 돈을 좀 더 내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스타만 앞세우고 만듦새 아쉬운 몇몇 대극장 뮤지컬 관계자들이 와서 보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 9일 대학로 학전블루에서 개막한 중소형 창작뮤지컬 <밑바닥에서>다.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이지만, 완성도는 ‘빛나는 주류’다. 아픈 동생 막스를 돌보며 술집을 운영하는 타냐, 백작 대신 감옥에 갔다가 출소한 페페르, 알코올 중독자인 전직 배우, 사기꾼 싸친과 조프, 종업원 나타샤, 몸 파는 여자 나스짜의 이야기가 술집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200석 규모의 좁은 무대에 110분간 총 10명이 등장하는데, 인물군상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어우러지며 지루하지 않게 흘러간다. 2005년 초연 당시 여인숙에서 술집으로 배경이 바뀌었고, 대사 등이 좀 더 현실적으로 수정됐다.
연기, 연출 등 흠잡을 데가 없다. 10명 모두 넘버(노래)는 물론 연기도 잘한다. 발성이 좋아 가사도 대사도 또박또박 잘 들린다. 그중에서도 싸친 역의 김대종은 감초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한다. 미세한 표정 변화에 생활 연기 등이 시대극 드라마나 영화 속 묵직한 조연이 연상된다. ‘저 꼬마는 어디서 데려왔을까’ 싶을 정도로 초연 당시 딸에서 아들로 바뀐 아픈 막스를 소화해내는 아역 배우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콜록콜록 기침은 적절한 때 어쩜 저리도 잘 나오는지, 진짜 아픈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울기도 잘 운다. 1902년 러시아 극작가 막심 고리키의 희곡 <밤 주막>은 가난을 중심으로 썼지만, 뮤지컬은 인간 내면의 밑바닥에 중점을 맞췄다. 초연 때보다 12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에서 더 몰입하게 만든다. 모두 밑바닥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꿈꾸지만 열심히 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 가슴을 때린다.
겉치레만 화려한 몇몇 대형 뮤지컬들에 좋은 본보기도 되겠다. 이 작품이 대학로 소극장을 택한 것은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내면을 더 잘 표현하려고 배우들의 생생한 표정, 숨 쉬는 모습까지 관객에게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다. 제작진, 배우들 모두 대극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왕용범 연출가는 <프랑켄슈타인> <삼총사> 등을 연출했고, 최우혁은 <프랑켄슈타인> 주인공이었다. 작곡가, 음악감독 등도 대극장 뮤지컬팀들이다. 무조건 큰 무대에 올려 관객 주머니 쓸어가려는 일부 대극장 뮤지컬을 생각하면, <밑바닥에서>의 선택이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왕 연출은 작품을 올리려고 수년간 그 나라에 가고, 그 시대와 관련된 책을 읽는 등 공부했다고 한다. 그런 노력 덕에 2005년 초연 당시 ‘11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대극장의 웅장한 공연들을 제치고 음악상을 받았다.
지난해 연말 대극장의 화려한 뮤지컬을 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올 뻔한 일이 두번 있었다. 한편은 배우들의 유명세로 열심히 홍보했지만 연기부터, 대본, 연출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고, 또 한편은 잘 만든 작품에 조연급 배우의 쥐어짜는 노래 실력이 재를 뿌렸다. 돈과 시간을 아깝게 만드는, 성의 없는 작품은 관객 모독이나 다름없다. <밑바닥에서>는 그런 작품에 한 방을 먹인다. 5월21일까지. (02)1544-1555.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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