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구혜선에서 장희진으로 배우가 교체된 주말드라마 <당신은 너무합니다>(문화방송)의 주인공 ‘정해당’은 모창 가수다. 극중 톱스타 유지나를 흉내낸 ‘유쥐나’로 밤업소에서 노래한다. 유지나의 목소리는 물론, 표정, 걸음걸이, 포즈까지 똑같이 따라하려고 노력하는 모창 가수의 뒷이야기가 흥미롭다. 실제 모창 가수의 삶은 어떨까. 모창 가수계 레전드로 꼽히는 주용필(조용필) 이일노, 방쉬리(방실이) 신해숙, 현숙이(현숙) 권종숙을 21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나오는데 누가 봐도 ‘그들’이다. 특히 현숙이 권종숙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각할 정도로 닮았다. 방쉬리 신해숙은 “지역 행사 가면 진짜 방실이인 줄 알고 고장 특산품을 선물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일노는 1987년부터, 신해숙은 2005년, 권종숙은 2007년부터 ‘모창’의 세계에 들어섰다. 모두 가수가 꿈이었다. 그들이 ‘방쉬리’ ‘현숙이’ ‘주용필’이 된 사연은 이렇다. “1989년 방송 3사 주부가요제에서 상을 받은 뒤 부산 지역 가수로 활동했어요. 부산 공연에서 사회자 이택림씨가 ‘방실이’라고 소개한 게 지금의 방쉬리가 됐어요. 그때는 뚱뚱하면 다 방실이라고 했어요. 하하.”(방쉬리 신해숙) “가수를 꿈꿨지만 무대 설 기회가 없었어요. 누군가 ‘조용필의 시대’인데 그 사람 노래를 잘하면 많은 무대에 설 수 있을 것이라는 말에 모창을 결심했습니다.”(주용필 이일노)
‘주용필’ 이일노, ‘방쉬리’ 신해숙, ‘현숙이’ 권종숙이 21일 서울 한겨레 신문사 스튜디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모창 가수는 그 시대 인기가 많은 가수나, 자신과 닮은 가수를 선택한다. ‘반짝 스타’를 따라했다가는 모창 가수도 ‘반짝’이 된다. 가장 선호하는 건 조용필, 이미자, 나훈아. ‘잘 따라하기’는 노력의 산물이다. 주용필 이일노는 “외모와 목소리 포인트를 잡아내면서 나만의 개성을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음색 내기가 첫번째다. 같은 노래를 만번 이상 듣고, 평소 습관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공부한다. 주용필 이일노는 “1년 동안 독학했다. 조용필의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듣고 한 소절씩 분석하면서 따라했다. 녹음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들려주고 그렇게 1년이 지나니까 음키가 올라가고 목소리 색깔도 변했다”고 말했다. 발라드가 주특기였던 방쉬리 신해숙도 음색 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방실이는 중저음에 비음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음색을 따라하려고 시간만 나면 노래를 불렀어요. 특히 방실이는 음량이 풍부해서 모든 호흡을 복식으로 해야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도 했죠.” 이일노는 “드라마처럼 온통 방을 조용필 사진으로 도배했다. 어디에 누워 있든 앉아 있든 내 시선과 마주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현숙이 권종숙은 “현숙의 효녀 이미지에 누가 되지 않게 평소 생활도 조심한다”고 말하는 등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소한 습관 하나도 ‘그’가 돼야 한다. 방쉬리 신해숙은 “방실이가 살이 빠져서 나도 7㎏을 뺐다”고 말했다. 나를 던져 노력하는 그들을 힘빠지게 하는 건 모창 가수를 ‘짝퉁’ 취급하는 현실이다. 실제로 <당신은 너무합니다>처럼 업소 등에서 노래를 부르면 “가짜는 가라”며 물수건이나 과일을 던지는 손님도 있었다. “수치스럽죠.”(현숙이 권종숙) “인격 테러를 당하는 것 같아요.”(방쉬리 신해숙) 일반 가수들도 그들과 한 무대에 서는 걸 꺼려하기도 한단다. 주용필 이일노는 “외국은 모창 가수를 존중해줘요. 모창 가수들만 나오는 오래된 프로그램도 있죠. 진짜, 가짜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잘 따라하는지를 바라봐주고 박수 쳐줘요. 모창 가수라는 직업을 저급화하는 인식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숙이’ 권종숙.
‘주용필’ 이일노.
‘방쉬리’ 신해숙.
한때 ‘모창의 세계’도 찬란했다. 1992년 모창가수협회가 처음 생긴 이후 90년대는 전성기였다. 주용필 이일노는 “심지어 북한도 금강산엔 조용필보다 내가 먼저 가서 공연하고, 중국·일본 등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졌다”고 했다. 차로 이동할 시간이 없어 비행기로 광주 찍고 다시 서울로, 다시 제주도로 가는 일정이 반복됐단다. 그 인기는 2008년께까지 계속됐다. 80년대 야간업소, 2000년대 행사, 요즘은 지역 축제 등으로 주무대가 옮아갔다. 방쉬리 신해숙은 “행사가 매달 20개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한번 무대에 설 때마다 30만~50만원씩 받는 출연료 수입도 쏠쏠했다. 그랬던 모창 가수의 인기는 이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내리막을 걷게 됐다.
대개 3~6월과 9~12월은 성수기인데 그나마도 올해는 일을 못했다. 이번 봄에는 구제역이 덮쳤고, 5월에는 대통령 선거도 예약돼 있다. “선거철이 가장 일이 없어요.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 자체를 꺼리니까 취소가 늘어요. 매달 4개 정도는 하는데 올해는 특히 힘들어요.”(현숙이 권종숙) 일이 없을 땐 “일용직도 하고, 작년에는 배추밭에서 일도 하는”(주용필 이일노) 등 아르바이트를 한다. 방쉬리 신해숙은 만약을 대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 중이다. “4월에 시험 쳐요.”
그러나 찬란한 모창 세계를 이끌었던 이들은 모창의 세계를 업그레이드시키려고 스스로 노력한다. 현숙이 권종숙은 중국어와 장구를 배운다. “장구를 배워 품바 각설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래와 다른 즐거움을 주고, 중국어를 배워 다문화 공연도 많이 하는 등 ‘현숙이’ 자체를 업그레이드해 우리 스스로 더 색다른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모창협회 회장으로 30년간 이 세계를 지탱했던 이일노는 한발 더 나아가 ‘성노’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음반도 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때 100명이 넘던 모창협회 회원도 현재는 10명으로 줄었다. 지금은 스타가 된 박명수, 김학도, 여성 그룹 코코의 윤현숙 등도 한때 모창협회 소속이었다. 노력한 시간에 견줘 어려운 현실을 이어온 데는 이 일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도 작용했다. 이들은 “모창 가수로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스타가 되지 못해도 전설로 남아라’는 말을 새기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내 삶이 묻혀진 데 대한 아쉬움은 있다. 현숙이 권종숙은 “가끔은 내 삶을 살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내 모습은 하나도 없어요. 무대 밖에서도 그들의 모습을 똑같이 따라서 살아가야 해요. 가끔은 머리도 다르게 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할 수도 없고. 나란 모습은 없구나 느낄 때는 서글프죠”라고 했다. 주용필 이일노는 “30년을 남의 인생을 산다는 것이, 그 마음이 어떻겠어요. 내 인생의 절반을 쏟아넣었는데 결과에 대해 인정받지 못하는 요즘이 아쉽다”며 “누군가의 노래를 모창 가수들이 대한민국 구석구석에 전달해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가치있을까를 한번쯤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을 힘나게 하는 건 무엇보다 “내가 따라하는 가수가 나를 인정해줄 때”다. 방쉬리 신해숙은 방실이와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이고, 현숙은 현숙이 권종숙한테 무대 의상을 선물하기도 했단다. 주용필 이일노는 조용필을 만났을까. “30년 됐는데 한번도 못 만나봤다는 것이 또 서글프네요. 하하.”
모창 세계도 자유경쟁 시대다. 또 다른 방실이, 조용필, 현숙이 나오면 그 사람한테 밀릴 수 있다. “무대는 냉정한 곳이기 때문에 더 잘하는 사람, 더 똑같은 사람을 선호한다”(방쉬리 신해숙)는데, 10~30년간 모창의 세계를 지켜온 이들을 따라올 자가 있을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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