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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7 16:51 수정 : 2017.03.29 11:56

관객이 보기 편하게 자막을 세팅하는 ‘자막 오퍼레이터’가 주목받는다.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 ‘자막 오퍼레이터’ 김미희씨.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뮤지컬 ‘자막 오퍼레이터’ 김미희씨
번역된 자막 무대 옆 화면에 띄워
폰트, 글씨체, 배열까지
관객 보기 편한 최상의 조건 고심

단순 작업 같지만 아무나 못해
외국어 기본, 작품 이해도 높아야
배우마다 호흡, 특성 등 파악
새 작품 들어갈 때마다 1주일 연습

관객이 보기 편하게 자막을 세팅하는 ‘자막 오퍼레이터’가 주목받는다.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 ‘자막 오퍼레이터’ 김미희씨.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드림걸즈>부터 <캣츠>까지 뮤지컬 내한 공연이 늘수록 바빠지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자막 오퍼레이터’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원어로 부르는 노래나 대사를 번역한 ‘한국어 자막’을 무대 옆 화면에 제때 노출시키는 일을 한다. ‘엔터’키만 누르면 되는 단순 작업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외국어도 잘해야 하고, 매일 생방송하는 뮤지컬 특성상 돌발상황에 대비해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하는 등 전문적인 능력이 요구된다.

지난 16일 <지킬 앤 하이드 월드 투어>가 열리는 블루스퀘어 공연장에서 만난 김미희씨는 대표적인 자막 오퍼레이터다. 3년 전 <맘마미아>를 시작으로 <시카고> <원스> 등을 담당했다. 대개는 공연마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구하는 자리인데, 김씨는 제작진 통역을 하다 이 일을 접한 뒤 매력을 느껴 전문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자막 오퍼레이터는 ‘자막 번역가’와는 구분된다. 자막 번역가가 번역해 놓은 자막을 ‘자막 오퍼레이터’는 무대 옆 화면에 보기 좋게 담는 일을 한다. 관객들이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게 핵심. 김미희씨는 “폰트나 글씨체도 다 계산해서 선택한다”고 말했다. “한 화면에 세줄이 가장 적당해요. 한줄은 10자를 넘지 않아야 합니다.” 강조해야 할 부분에서는 한 화면에 한 단어만 내보내기도 한다. 지킬이 “네버” “네버” “네버!”라며 복잡한 마음을 소리치는 대사에서는 “안돼” “안돼” “안돼!”라고 세번에 걸쳐 한 단어씩 내보냈다. “관객은 자막을 보면서 배우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내용에 따라 강조점 등을 파악해야 합니다.”

글씨체도 신중하게 선택한다. 김미희씨는 “<지킬 앤 하이드>는 어두운 이야기라서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총 6가지 폰트를 쓰는데, 고딕체를 기본으로, 지킬이 말하는 장면에서는 바탕체를, 하이드가 말하는 장면에서는 ‘이순신체’를 사용한다. “하이드일 때 좀더 분위기가 무겁게 전환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맘마미아>를 할 때는 재미있는 장면이 많아서 독도체를 사용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다양한 글씨체를 검색해서 다운받아 놓고 활용합니다.”

처음에는 배우가 입만 열면 엔터키를 누르는 등 실수도 했다. 그러나 배우별로 실제 대사를 하는 시점이 다르다. “같은 역할이라도 어떤 배우는 대사를 치기 전 숨을 한 번 쉬거나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거나 배우마다 특징이 있어요. 그걸 미리 파악해 놓으면 배우와 자막이 엇갈릴 확률이 줄어듭니다.” 촬영한 리허설 영상을 보면서 혼자 무대에 맞춰 자막 전환 버튼을 누르는 연습을 일주일에 열번 넘게 한다. 그렇게 해도 뮤지컬은 ‘라이브’. 그는 “배우가 대사를 빼먹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면 페이지를 뛰어넘고 해당 자막이 나갈 수 있게 작품을 간파하고 있어야 한다. 난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배우가 가장 싫다”며 웃었다.

‘자막 오퍼레이터’는 늘 1층 객석 뒤편 부스 한켠에 자리잡고 있다. 3시간 동안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파워포인트로 제작된 <지킬 앤 하이드> 자막은 총 1750페이지. 1750번 엔터키를 눌러야 한다. ‘대타’도 팀도 없어 모든 공연을 혼자 소화해야 해 체력 관리도 중요한다. “손가락만 멀쩡하면 아파도 나와야 해요.” 화장실도 참아야 해 공연 전에는 물도 잘 마시지 못한다. “처음엔 깜빡 졸다가 자막이 안 넘어간 적도 있어요.” 1.2 이상의 시력으로 멀리 무대 위 배우의 입을 주시한다. 공연이 끝나면 몸이 천근만근이지만 그는 “점차 이 직업이 중요해지는 걸 느낀다”며 “내가 만든 자막 화면으로 관객들이 작품을 더 잘 이해하고 즐겁게 돌아가면 그 자체로 피로가 가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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