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6.07 08:57
수정 : 2017.06.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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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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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라디오스타’ ‘무한도전’…
시대를 담은 예능 프로 장수 비결
‘식상’ 넘어 참신하게 발빠른 대처
‘시청층 이해’ 콘셉트 확실히
‘위기도 기회’ 뚝심있게 밀어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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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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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선데이-1박2일>, <1대100>(이상 한국방송2), <라디오스타>(문화방송)의 공통점은 뭘까. 올해 10돌을 맞은 장수 예능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짧은 시간에 간편하게 즐기는 문화콘텐츠인 ‘스낵컬처’가 유행하는 요즘 시대에 한 프로그램이 10년간 유지됐다는 것은 엄청난 성과다. 방송사들은 2~3년 전부터 한번 내보내보고 반응이 좋으면 정규편성하는 맛보기(파일럿) 프로그램을 우후죽순 쏟아내며 장수의 씨를 뿌리고 있다. 1999년 시작해 18돌이 된 <개그콘서트>와 2001년 시작한 <해피투게더>, 2006년 시작한 <무한도전>까지 더해, 오래가는 예능프로그램의 비결을 엿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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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에 맞춰 변신하라 <해피투게더>를 연출한 적 있는 <한국방송> 예능국의 한 피디는 “입사 뒤 6개월 정도 <해피투게더>에서 일하다 3년 만에 다시 왔더니 세트는 물론, 사진이나 영상자료를 활용하는 편집 방식 등 세밀한 부분까지 바뀌어 있더라”고 했다. 자막 글씨체 등 시청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기호에 맞추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왔더라는 것이다. 피디들이 말하는 장수 프로의 첫 번째 기준은 바로 이것이다. “그 시대 시청자하고 가장 호흡이 맞았던 프로 중에서 1~2년마다 바뀌는 유행을 잘 따라가는 프로가 장수한다. 어느 순간 식상해졌다고 느껴지면 발빠르게 대처해야 살아남는다”(한국방송 예능국 간부급 피디).
<해피투게더>는 2001년 시작한 이후 2005년 4월까지 ‘쟁반노래방’으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시청률이 떨어졌다. 그러자 인터넷 등에서 친구 찾기 열풍이 불던 그해 5월부터는 연예인 친구 찾기 콘셉트(<해피투게더 프렌즈>)로 또 한 번 화제몰이를 했다. 2007년부터는 우스꽝스러운 분장으로 연예인들이 ‘망가지는’ 모습을 과감하게 보여준 ‘사우나 토크’, 쿡방의 인기에 밑돌을 놓은 ‘야간 매점’ 등을 시도하다 지금의 거실 콘셉트로 변신해왔다. 이 피디는 또 “시청자들이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요즘에는 영상자료 같은 것들을 활용해 상상을 돕는 등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노력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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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선데이-1박2일>.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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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적을 명확히 하라 나영석 피디는 <1박2일>을 연출한 2011년 당시 “경치만 보여준다”는 비판을 두고 <한겨레>에 이렇게 말했다. “일요일 오후 5~6시에 텔레비전을 켠 시청자들은 그냥 별생각 없이 편하게 웃고 싶어한다. 이 시간에 창의적인 피디가 되겠다고 해서는 시청자를 잡을 수 없다.” 그 시간대 주요 시청자가 원하는 핵심을 잘 짚어내 ‘맞춤 제작’을 하는 것이 변함없는 인기의 비결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1박2일>은 주요 시청층 가운데 하나인 장년층으로부터 ‘저기 한번 가보고 싶다’는 호응을 이끌어냈고, 촬영지가 인기 여행지로 떠오르기도 했다.
<무한도전>처럼 젊은 시청자들이 많은 프로그램은 매번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기본이다.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이 ‘짤’ 등으로 재생산을 많이 하는 <라디오스타>는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비(B)급 정서의 토크쇼 형식을 유지해오고 있다. <라디오스타>는 2007년 <황금어장>의 한 꼭지로 시작했는데, 당시 더 인기가 많았던 ‘무릎팍 도사’에 밀려 방송시간이 5분에 그치기도 했다. 하지만 ‘굴욕’을 콘셉트로 삼아 매회 폐지를 걱정하며 “다음주에 만나요, 제발”이라고 끝인사를 하는 등 비급 정서를 장점으로 활용했다. 12~19년 된 지상파 3사 음악프로그램은 시청률이 1~2%대로 저조하고 광고도 안 팔리지만, 세계의 중심이 된 케이팝을 활용해 수익을 내겠다는 목적이 명확하다. 케이블 방송사의 한 예능 피디는 “명확한 조사로 타깃층과 콘셉트를 확실히 잡고 목적을 이뤄낸 프로가 오랫동안 유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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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투게더>.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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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진과 진행자의 뚝심 <라디오 스타>도 <무한도전>도 초반에는 고전했다. 그럼에도 즉각 폐지되지 않은 건, 제작진과 진행자가 경영진에게 뚝심을 보여준 덕이 크다. <에스비에스> 예능 피디는 “그 프로가 방송사의 어떤 위치에 있느냐, 맡고 있는 진행자가 누구냐에 따라 (경영진도) 기다려주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제작진의 의지도 중요하다. <신비한 티브이 서프라이즈>(문화방송)는 1~2년 주기로 폐지가 논의됐지만, 제작진이 스튜디오 진행자를 없애는 식으로 제작비를 감축하며 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
<해피투게더>도 폐지가 거론됐지만 진행자인 유재석이 “나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해 위기를 넘긴 것으로 알려진다. 케이블 예능 피디는 “유재석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하는데 누가 안 기다려주겠냐. 강호동, 신동엽 등 톱 진행자들의 의지도 장수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러 명이 프로를 진행하는 요즘에는 진행자들끼리나, 진행자와 피디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프로가 불화 없이 오래가더라”고도 했다. <라디오스타>도 진행자 네 명이 친하지만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며 사적인 감정이 프로에 투영되는 걸 막는다고 한다.
윤석진 대중문화평론가는 “10년간 시청자와 함께해오는 장수프로그램은 그 시대를 오롯이 담고 있다”며 “시청자들한테는 참신하고 실험적인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나와 호흡하는 동반자 같은 느낌을 주는 프로그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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