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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6.09 17:49 수정 : 2017.06.09 20:52

[토요판] 황진미의 TV톡톡

5월30일에 방송된 <피디수첩> ‘소수자 인권, 나중은 없다’ 편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최신 이슈들이 폭넓게 다루어졌다.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에게 항의하는 성소수자를 비추며 시작된 프로그램은 군 동성애자 색출 수사가 마녀사냥식 기획에 의한 것이었으며, 수사 과정 중 인권침해가 극심했음을 고발했다. 수사를 지시한 장준규 총장이 독실한 개신교도이며, 2년 전 여군 성폭행 사건 때 피해자 책임을 언급했다는 사실도 덤으로 알려줬다. 또한 군 형법 92조 6항의 문제점과 불필요성을 짚으면서, 이를 삭제하는 개정법안의 발의를 알려주었다. 군 동성애가 허용될 경우 전력 약화를 우려한다지만, 세계 최강의 미국 육군장관과 주한미군 부사령관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낸다.

프로그램은 군 입대를 앞둔 게이 청년과 가족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드래그 퀸(여장) 공연을 하는 청년과 체코인 파트너를 통해 동성애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외국의 현실을 환기하고, 트랜스젠더와 뉴트로이스(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으로 여기는 이들) 등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 자녀와 쇼핑하며 남성복을 골라주는 어머니의 모습은 여느 부모 자식관계와 다르지 않다. 성소수자 부모들이 모임을 갖고, 퀴어 퍼레이드에 나와서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어린 성소수자들을 안아주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위안을 주었다.

프로그램은 대형교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에이즈 창궐의 주범이라며 설교하는 모습을 비춘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프로그램은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에이즈는 지속적인 관리를 요하는 만성질환일 뿐이며, 전염 유무는 이성애·동성애 여부가 아니라 콘돔 사용 유무에 달려 있음을 짚어주었다. 프로그램은 성소수자들이 차별과 비난, 혐오폭력과 자살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2007년부터 시도되었던 입법이 무산된 것은 정치인들이 사회적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가 성소수자들의 항의에 맞닥뜨린 상황을 보여주며, 성소수자들의 절박한 요구가 “나중에”라는 말에 묻혔던 순간을 환기시켰다. 프로그램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비정규직이나 5·18 유족의 눈물을 닦아주었듯이 성소수자들의 인권보호에도 적극 나서야 함을 촉구했다.

<피디수첩>이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한 방송이었던 반면에, 성소수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프로그램이 있었다. 6월7일에 방송된 <영재 발굴단>에는 영어에 특별한 재능을 보이는 5살 어린이가 출연했다. 책과 영화로 혼자 영어를 익혔다는 어린이는 놀랍게도 이중 언어를 구사하였다. 아이의 언어능력을 보여주던 프로그램은 방송시간 절반을 할애하여, 아이와 부모의 갈등을 보여주었다. 엄마는 아이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성을 보인다고 걱정했다. 아이는 정확한 언어로 여자 옷 입기를 거부했다. 생후 28개월부터 여자 옷을 거부했으며, 자신을 남자로 소개해달라고 말했다는 아이는 남자가 되는 약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아이의 행동을 교정해야 될지,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야 될지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사회자와 패널들은 일반적인 여자아이와 다른 아이의 행동에 의아해하며, 부모로서 속상하겠다는 말을 반복하였다.

그런데 인간의 성이 남녀 두 개의 성으로 나뉘며, 남자는 남자답게, 여자는 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성별 이분법 체계에서 벗어나 아이를 보면, 아이의 성은 반드시 여성으로 고정될 필요가 없다. 아이는 생물학적인 성과 무관하게 자신을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있으며, 유치원의 따돌림을 감수하면서도 남자 원복을 고집함으로써 자신이 사회적으로 남성임을 주장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성별 이분법 체계가 확고한 사회이다. 아이는 사복을 입고 해변에 나갔을 때는 낯선 소년들과는 물론이고 낯선 외국인과도 잘 어울린다. 그러나 남녀 원복이 뚜렷이 구분되는 유치원에서는 혼자 놀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성별 이분법에 따라 아이들을 구분 짓는 유치원의 성별질서가 아닐까.

심리상담을 한 의사는 아이에게 엄마와 결혼하고 싶고, 아픈 엄마를 지켜주고 싶어서 남성이 되려는 심리가 있음을 말해준다. 사회자와 패널들은 아이의 효심에 감동했다며 눈물을 쏟아낸다. 그러나 제작진이 아이를 진정으로 이해했는지는 의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담 의사가 부모에게 아이와 신체접촉을 늘리고 옷 입기로 실랑이를 벌이지 말 것을 당부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엄마를 지켜주기 위해 반드시 남성이 될 필요가 없음을 아이에게 일깨워주고, 아이가 ‘강한 남성’이라는 정형화된 남성성을 내면화하는 것은 아닌지 살피는 일이 아닐까. 성소수자의 존재를 말소하고 성별 이분법의 체계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5살 영재 어린이의 행복도 보장될 수 없다는 현실 자각이 안타깝게 밀려온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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