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6.23 17:17
수정 : 2017.06.23 20:50
[황진미의 TV 톡톡]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교육방송>의 애견교육 프로그램으로, 2년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티브이 동물농장>(에스비에스) 등 동물 관련 프로그램이 쭉 있어왔지만,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반려견의 문제행동을 해결하는 데 특화된 프로그램이다. 매회 문제행동을 보이는 반려견의 집을 찾아가 해법을 알려주고, 말미에 다시 방문하여 개선을 확인한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매회 소개되는 반려견들의 증례가 쌓이면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참고서처럼 활용된다.
사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개 훈련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다. 반려견의 입장에서 사고하게 함으로써, 소통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령 초인종만 울리면 흥분해서 짖어대는 개에게 레몬즙을 뿌리거나 신문지를 말아서 꾸짖는 등의 팁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사람에게 초인종 소리에 한 템포 늦게 반응하라고 알려준다. 사람이 몇 번 현관을 오가는 동안, 어느새 개는 조용해져 있다. 전문가는 개의 입장에서 초인종 소리와 사람의 다급한 움직임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말해준다. 흔히 사람들은 개의 행동을 넘겨짚지만 오해인 경우가 많다. 전문가는 흔한 오해를 바로잡으며, 개들의 욕구와 마음을 알려준다. 그러곤 간단한 동작과 간식 주기로 개와 소통하는 법을 알려준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는 제목처럼, 개의 나쁜 행동이 아니라, 사람의 나쁜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의 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강형욱 훈련사이다. 유려한 태도와 신중한 어투는 흡사 그가 교포이거나 유학생활을 오래한 사람처럼 보이게 한다. 예컨대 동물복지의 천국에서 날아와 국내 실정은 잘 모르는 유복한 국외파 지식인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이다. 그는 열악한 국내의 애견문화를 밑바닥부터 몸으로 익히고,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나름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다.
그는 <개밥 주는 남자 2>(채널에이)에도 고정패널로 나와 전문가 조언을 들려주고, <마이 리틀 텔레비전>(문화방송), <현장토크쇼 택시>(티브이엔), <라디오스타>(문화방송)에도 출연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알기 원한다면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시비에스)에 출연했던 2015년도 동영상을 찾아보기 바란다. 그는 개 사육장을 운영하였던 아버지에게 분노와 반항심을 품었던 유년기를 들려준다. 더럽고 좁은 철창에 갇혀 출산을 반복하는 어미 개들의 새끼를 팔아 이윤을 남기는 사육장의 실태를 말하다, 그가 울컥한다. 그는 아버지의 사육장과 봉사활동을 다녔던 유기견 보호소의 열악한 환경을 보며 많은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이제 그는 개를 이윤추구를 위한 상품으로 취급하는 생산과 유통 전반이 문제임을 깨닫고, 동물을 사고파는 행위가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청소년기 때부터 훈련장 조수로 일한 경험을 들려준다. 사람들은 신중한 생각 없이 개를 입양한 뒤, 개가 말썽을 부리면 배변 등 기본훈련만 시켜달라며 훈련장에 개를 맡긴다. 훈련사들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개를 훈련시켜 보호자에게 돌려보낸다. 강형욱도 그곳에서 서열을 인식시켜 개가 사람에게 복종하게 만드는 일명 ‘알파독’ 훈련법을 익혔다. 하지만 강압적인 훈련에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마침 단기연수차 갔던 노르웨이에서 투리드 루카스 선생을 만나,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다. 개의 몸짓이나 소리를 통해 개가 느끼는 스트레스를 알아내고, 강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장기간에 걸쳐 사람과 소통해나가는 일명 ‘카밍 시그널’ 훈련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강형욱은 처음 투리드 루카스 선생을 만났을 때, 개의 입장에서 사고하게 만드는 문답을 통해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만나는 경험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사람의 처분에 따를 수밖에 없는 작은 강아지, 마냥 사람과 함께 있고 싶고 혼자 있으면 한없이 기다리는 강아지,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고 실수해서 야단맞을까봐 두려워하는 강아지라는 절대적인 약자에게 내면의 어린 자아를 포개놓은 것이다. 이러한 역지사지를 통해, 종속적인 존재나 사물처럼 개를 대하는 게 아니라, 대등한 친구이자 존엄한 생명체로 개를 대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의 경험담과 가르침에는 묘한 자아성찰의 울림이 있다. 아울러 정신분석학적인 치유와 타자의 윤리가 녹아 있다.
강형욱은 묻는다. 당신은 개를 왜 키우나요?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개가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만, 개 자체에 그런 효능이 있는 게 아니라고. 그건 개처럼 아무 권리도 없고 나와 다르게 생긴 존재를 돌보고 존중하는 부모의 태도를 보며 아이들이 자라기 때문이라고. 그는 때로 어려움 속에서 개와 소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에게 “개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고마워하고 있다”는 말을 들려준다. 마치 무녀의 위로처럼 따뜻한 그의 말에, 사람들은 조금 더 마음을 열고 개에게 소통의 손을 내민다. 개 훈련이 아니다. 개를 통한 자아와 관계의 거듭남이다. 개 훈련을 빙자한 심리학적이고 윤리학적이고 교육학적인 가르침이다. 개가 행복한 세상이라면 사람도 반드시 행복할 것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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