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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7.12 14:02 수정 : 2017.07.12 21:22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그걸 드라마로 만들어 전하는 전달자 혹은 통역사이고 싶다”는 임상춘 작가는 그래서 “작가로서 나는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름도 나이도 추측할 수 없는 필명을 쓰고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임 작가가 12일 서울 여의도 찻집에서 미니 첫 데뷔작 <쌈, 마이웨이> 대본을 살펴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11일 종영 <쌈, 마이웨이>로 첫 미니 데뷔
현실적인 장면과 대사들로 공감백배
시청자 마음 보듬는 내공까지
“모두 주변에 완벽한 지지자가 있기를 바랐다”
방송가 “무서운 작가 등장” 엄지척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그걸 드라마로 만들어 전하는 전달자 혹은 통역사이고 싶다”는 임상춘 작가는 그래서 “작가로서 나는 드러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름도 나이도 추측할 수 없는 필명을 쓰고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임 작가가 12일 서울 여의도 찻집에서 미니 첫 데뷔작 <쌈, 마이웨이> 대본을 살펴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제 미니 한 편 해놓고 인터뷰를 한다는 게 부끄러워요.” 그 ‘미니 한 편’으로 방송가가 들썩이고 있다. 입봉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구성과 ‘쫄깃한’ 대사는 물론이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내공까지 발휘했다. 이건준 책임피디는 “무서운 작가가 나타났다”고 엄지손가락을 번쩍 든다. 바로, 11일 끝난 드라마 <쌈, 마이웨이>(한국방송2) 임상춘 작가다.

여러 차례 설득 끝에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의 한 찻집에서 작가와 마주했다. 이름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아저씨’일 것이라는 누리꾼들의 추측을 깨고 ‘맑고 따뜻한 소녀’ 같은 30대 초반 여성이 나타났다. 그는 종영 소감을 “시원하지만 우울하다”로 정리했다. “주인공 네명이 모두 너무 착해요. 그 착한 사람들이 없어지는 느낌이에요.” 시청률 5.4%(닐슨코리아)로 시작해 13%로 끝나며 화제몰이를 했지만, 정작 그는 부족한 것만 보인다. “특히 분량이 넘쳐 가족이나 남일, 경구, 혜란 등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좀더 풍요롭게 담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함께 자리한 이건준 책임피디는 “드라마 반응도 좋고 재미있는 장면을 잘라내는 게 아까워서 2회 연장을 제안했는데, 작가와 연출이 모두 깔끔하게 끝내고 싶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임 작가는 “소소한 이야기여서 처음에는 이걸 좋아할까 걱정했다”고 한다. <쌈, 마이웨이>의 비범함은 그 소소함에서 나온다. 판타지를 덜고 ‘짠내’ 나는 현실을 덤덤하게 담으며 시청자를 위로했다. 특히 면접에서 스펙으로 무시당하는 등 부모의 경제력이 곧 본인의 능력이 되는 현실에서 ‘흙수저’들을 보듬는 장면이 좋았다는 반응이 많다. “흙수저라는 말이 정말 슬픈 건, 그 말을 내 자식이 들었을 때 부모의 마음 때문이다. 그런 속을 드라마에서 풀어주고 싶었다”며 작가는 울컥했다.

그는 “시청자들도 드라마 속 네명의 친구처럼 주변에 든든한 지지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획했다”고 했다. 드라마는 지금 이대로 우리가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를 응원하는 듯이 계속 얘기한다. 주만과 헤어진 설희는 보통 드라마였다면 뽀글 파마를 풀고 예뻐진 뒤 백마 탄 왕자를 만났다. 누리꾼들도 그런 요구가 많았다. 작가는 “설희는 그 자체로 예쁘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설희가 “내 꿈은 엄마”라며 자기 계발 하라는 친구 애라한테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 계발 해야 해? 왜 엄마는 꿈으로 안 쳐줘”라고 말하는 장면도 그는 “희생만큼 큰 사랑은 없다. 세상 모든 엄마에게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는지 얘기하고 지지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주만이 재벌 딸을 만나지 않은 것도 “돈보다 무서운 게 정이라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서 고민은 없었을까. “리얼하기만 하고 어두워서 불편한 것은 피했어요. 리얼하지만 그 세계 안에서 이 네 친구는 패배감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신나게 사는 애들이에요. 항상 밝아요. 걔들이 너무 착한 게 판타지라면 판타지겠죠.”

설희와 주만의 이별 과정 등 마치 내 마음속에 들어온 것 같은 대사들도 화제를 모았다. 애라가 “누구보다 빡세게 살았는데 개뿔도 모르는 이력서 나부랭이가 꼭 내 모든 것을 아는 체하는 것 같아서”라며 눈물 흘리는 장면 등이 공감을 자아냈다. “대사를 쓸 때 누구나 느끼는 감정들을 담으려고 해요.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 주변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대사로 써야지’라는 생각으로 관찰하려고 하지 않고, 최대한 그 마음이 되려고 노력해요. 어렸을 때부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어요. 내 이야기처럼 분노하고 그랬죠.” 그러면서도 “드라마를 쓰면서 남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게 철칙”이라고 했다.

실제 만나본 임 작가는 드라마처럼 사람 자체가 따뜻했다. 그는 “사람은 알고 보면 모두 따뜻하다. 누구나 착한 마음이 있다고 믿는다”며 “드라마에서 그걸 계속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내 드라마에서 비극은 없을 겁니다. 사는 것도 텁텁한데, 드라마에서라도 항상 행복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쌈, 마이웨이> 마지막회를 앞두고 동만과 애라가 헤어질 거라는 추측이 나왔을 때는 직접 결말을 말해주고 싶었을 정도였다며 웃었다.

그는 직장을 다니다가 20대 후반부터 드라마 작가를 꿈꿨다. “사람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휴대폰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웃는 걸 봤어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드라마를 쓰자고 생각했어요.” 작가교육원 같은 곳도 다니지 않고 대뜸 응모한 <문화방송> 공모전에서 두 편이 최종심사까지 올랐다. 그때 그의 대본을 유심히 본 피디가 추석 특집극을 제안했고, 2014년 <드라마 페스티벌-내 인생의 혹>(문화방송)으로 데뷔했다. 2014년 웹드라마 <도도하라>, 2016년 4부작 <백희가 돌아왔다>(한국방송2)를 썼다. 공모 당시 대본 쓰는 방식도 몰랐다는데, 오히려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움이 그의 색깔로 나타난 듯하다.

그는 “성별도 나이도 없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필명도 다소 낯선 ‘임상춘’으로 지었다고 한다. “저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드라마로 만들어 제공하는 전달자나 통역사이고 싶어요. 작가로서 나는 지우고 싶어요. 다음에는 다른 이름으로 써볼까도 생각해요.” 인터뷰를 안 하려는 것도, 사진에 얼굴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친한 친구와 가족 외에는 그가 임상춘이라는 걸 아는 사람도 없단다. “아빠가 자랑하고 싶어 하시는데 못 하게 해요.(웃음)”

장편 신고식을 무사히 치른 그는 이제 다음 작품을 준비한다. “아직 어떤 이야기를 쓸지 결정하진 않았지만, 촌스럽고 투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거예요. 저는 착한 사람들의 소소한 갈등이 좋거든요.” 이건준 책임피디는 “임상춘 작가의 장점은 황당하지 않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다”며 “그는 드라마마다 가족이야기도 중요하게 다룬다. 미니와 주말드라마 모두 가능한 몇 안 되는 작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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