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21 17:33
수정 : 2017.07.21 21:21
[토요판] 황진미의 티브이톡톡
<아이돌 학교>(엠넷)는 ‘걸그룹 전문 교육기관’을 표방하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예선에서 추려진 41명의 참가자들을 11주간 합숙훈련 시켜, 9명을 걸그룹으로 데뷔시킨다는 기획이다. 방송 전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춤과 노래는 필요 없다. 마음과 얼굴, 끼가 예쁘면 된다”는 입학 조건부터 ‘예쁘니까’란 제목의 주제곡까지, 소녀들을 볼거리로 소비하려는 의도가 읽혔기 때문이다. <프로듀스 101>의 아류작이라거나 일본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아이 엠 스타>가 연상된다는 쓴소리도 있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우려했던 것보다 더 나쁘다. <프로듀스 101>은 쇼 비즈니스의 논리로 절박한 지망생들의 열정을 착취하는 측면이 있었지만, 걸그룹 데뷔라는 본연의 취지에 충실한 프로그램이었다. 이에 비해 <아이돌 학교>는 훨씬 부실하고 변태적이다. <아이 엠 스타>에 비해서도 턱없이 열악하다. 내무반을 본뜬 합숙소에, 군기 잡는 조교와 아침 구보라니! 영락없는 ‘핑크빛 군대’다.
<아이돌 학교>의 참가자들은 소속사는 없지만 나름 경력 있는 지망생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백지상태의 몸’으로 취급된다. <프로듀스 101>의 첫 회에서 참가자들은 연습해온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개성과 실력을 뽐냈다. 하지만 <아이돌 학교>의 참가자들은 20분 전에 받은 노래를 일렬횡대로 서서 부른다. 춤도 주어진 안무를 잘 따라 추는지 평가받는다. 2회에 잠깐 즉흥댄스를 선보였지만, 곧 ‘칼군무’ 훈련에 돌입했다. 제작진은 춤과 노래를 시켜본 뒤 바로 등수를 발표한다. 처음에 참가자들은 ‘춤과 노래는 필요 없다더니, 춤과 노래 실력으로 줄 세우기를 하는구나’ 하며 술렁였다. 그러나 금방 경쟁에 몰입했다. 마지막에 체력테스트를 시행하자, 참가자들은 이거라도 이겨야 한다는 절박함에 내몰렸다. 벌세우기에 가까운 동작을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 등수가 매겨졌다. 2회에서는 ‘인성’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입학식부터 강조했던 그 ‘인성’이 과연 뭘까. 트레이너는 ‘칼군무’에 필요한 팀워크를 가르치기 위해, ‘눈에 튀는’ 10명을 추려낸 다음 이들을 배제하면 어떻겠냐고 다른 참가자들에게 묻는다. 팀워크가 나쁜 참가자들을 겁주는 동시에, 나머지 참가자들의 인성을 시험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평가와 교육이 효과적일까. 여기서 평가되고 길러지는 것은 예술성이나 인성이 아니다. 춤과 노래를 빨리 익히는 능력, 강한 체력과 스트레스를 견디는 정신력, ‘튀지 않게’ 행동하는 처세술 등이다. <아이돌 학교>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획일적인 평가와 심리적 압박으로 과잉경쟁을 유도한다. 어쩌면 이것은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에선 시험만 보는’ 한국의 망한 공교육의 축약본 같다.
더 기막힌 것은 그토록 살벌한 평가도 참고자료일 뿐이고, 최종평가는 시청자 투표에 달렸다는 점이다. 제작진은 이런 식의 룰이 정당한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생방송 투표에 절대성을 부여하여, 시청자들을 본방사수에 동원하겠다는 욕망을 드러낼 뿐이다. 매 회 마지막에 참가자들을 교실에 모아놓고, 시청자 투표 등수를 실시간으로 발표한다. 오로지 타자에게 운명이 맡겨져 있는 참가자들이 표정 관리에 애쓰는 얼굴이 생중계된다.
<아이돌 학교>에서 벌어지는 경쟁과 평가는 공정함과 무관하다. 오히려 공정치 못함을 감추기 위한 시치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리얼리티 예능의 형식을 통해 제공되는 가학적 볼거리다. 소녀들이 ‘세일러복’과 ‘부루마’ 차림으로 군무를 추고, 허벅지 사이에 종이를 끼운 채 바들바들 떤다. 그러면서도 예쁘게 보이려고 안쓰럽게 웃는다. 현장의 긴장이 얼마나 높았던지 첫 회부터 포기자가 나왔다. 나빠진 모양새를 전화위복하려는 듯, 2회에 제작진은 2주마다 8명씩 퇴교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서바이벌 형식이 아니어서 <프로듀스 101>과 다르다던 제작진의 설명이 무색해졌다. 2회 들어 참가자들은 자꾸만 운다.
애초에 <아이돌 학교>는 뭔가를 가르치겠다는 의도보다 예능의 의도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프로듀스 101>에 비해 트레이너의 면면이 전문성보다 예능성에 기운다. 바다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장진영은 <언니들의 슬램덩크 2>를, 솔비는 <오빠생각>을, 김희철은 <아는 형님>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뮤지션도 아닌 이순재가 교장을 맡은 이유가 뭘까. 점잖은 교장 선생님의 외관과 ‘야동-순재’의 이미지를 동시에 갖기 때문은 아닐까.
<아이돌 학교>는 <프로듀스 101>이나 <아이 엠 스타>에 비견될 텍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교복 입은 여자 아이돌 골려먹는 <아는 형님>이나 여자 연예인들을 병영에 몰아넣고 눈물 콧물 흘리는 것을 구경하는 <진짜 사나이-여군 특집>에 비견될 만하다. 영화 중에서 꼽는다면, <여고괴담 세번째 이야기-여우계단>이나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 주제와 분위기 면에서 비슷하다. 과잉억압 상태에 놓인 소녀들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착취하고 관음하려는 변태적인 욕망의 구조가 한편의 공포영화처럼 느껴진다. 기획사 ‘갑질’ 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픈 심정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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