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7.21 20:36
수정 : 2017.07.21 20:48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단다 린 노동기준감독관>
한 여성이 음식점 광고 앞에서 발을 멈춘다. 젊고 용모 단정한 여직원을 구한다는 구인광고다.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본 여성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고 주인은 대뜸 나이부터 묻는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단호한 경고였다. “저 광고는 남녀고용기회균등법 위반입니다. 노동국에서 정식으로 행정지도 나오기 전에 수정하세요.” 구직자로 보였던 여성의 이름은 단다 린(다케우치 유코), 이제 막 서도쿄 노동기준감독서로 발령받은 감독관이었다.
2013년 일본 <엔티브이>에서 방영된 <단다 린 노동기준감독관>은 노동법을 어기는 악덕기업에 맞서 싸우는 열혈 주인공의 활약을 그린 사회파 드라마다. 강인한 여성 주인공이 노동시장의 병폐를 고발하는 이야기를 코믹한 터치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2007년 같은 방송사의 흥행작 <파견의 품격>도 연상된다. <파견의 품격>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시선으로 노동시장 양극화의 모순을 보여줬다면, <단다 린 노동기준감독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로감독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층 본격적인 노동문제를 다룬다. 장시간 노동, 임금체불, 하청, 산업재해 등 일본의 고질적인 노동현안들이 상세하게 묘사된다.
특히 주목할 것은 ‘파워하라’ 문제다. 권력(power)과 괴롭힘(harassment)을 합한 이 일본식 조어는 직장 내 권력형 폭력을 뜻하는 말이다. 그동안의 노동문제와 대책이 주로 물리적 차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에 ‘파워하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최근 들어서야 그 심각성이 알려지고 있다. 2015년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광고회사 덴쓰 신입사원의 자살 사건 역시 초과근무와 ‘파워하라’가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이 사건 뒤 긴급조사에 들어간 후생노동성은 ‘파워하라’의 정신적 상처로 인한 산업재해가 계속 증가세이며, 지난해에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단다 린 노동기준감독관>이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이슈가 본격화되기에 앞서 전통적인 병폐에 ‘파워하라’가 결합된 21세기형 노동문제를 그려냈다는 점이다. 일상화된 과잉노동과 상사의 인격 모독까지 감내해야 했던 영업사원이 자살을 시도한 첫번째 이야기는 덴쓰 사건의 징후적 에피소드로도 보인다. 사장의 성희롱을 고발하고 그 대가로 초과근무를 강요당한 도시락체인점 점장의 에피소드 역시 현대 직장인들이 감당해야 하는 복합적인 노동의 고통을 그려냈다.
보다 보면 국내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파견의 품격>이 6년 뒤 <직장의 신>으로 리메이크된 것처럼 이곳의 노동환경은 늘 뒤처져 있다. 올해 초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국내의 근로감독 건수가 일본의 10%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10배에 달하는 임금체불액 처리에 업무가 집중되어 다른 일을 할 여유가 없어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 정부 임기 안에 근로감독관이 두 배로 증원된다는 소식이다. 최근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던 집배노동자의 분신자살 사건이나 시내버스 운전 노동자의 과로사 등 노동환경의 악화가 임계점에 달한 현실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바랄 뿐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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