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04 17:51
수정 : 2017.08.04 21:19
[황진미의 티브이톡톡]
<왕은 사랑한다>(문화방송)는 고려 충렬왕 때의 궁중 로맨스를 담은 사극으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다. 드라마의 만듦새는 좋은 편이다. 일단 임시완과 윤아의 ‘케미’가 좋고, 인물들 간의 갈등이 탄탄하다. 극 초반에 세자(임시완)-왕린(홍종현)-은산(윤아)의 삼각 로맨스가 흥미를 이끌었다면, 중반 이후부터 정치적 갈등이 고조될 전망이다.
무신정권의 반대를 뚫고 원나라와 강화조약을 맺은 고려 왕실은 원 황실과 정략결혼을 추진했다. 쿠빌라이 칸의 딸을 새 왕비로 맞은 충렬왕은 아들을 얻는다. 그러나 고려 중신들과 백성들이 혼혈세자를 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충렬왕 역시 자신보다 강한 쿠빌라이 칸을 외조부로 둔 세자를 경계했다. “오랑캐의 피가 섞인 잡놈.” 충렬왕이 세자에게 열등감을 투사한다. 세자는 친구 왕린과 궐 밖에서 노닐다가 선머슴 같은 여인 은산을 알게 되었다. 은산은 대부호의 딸이지만, 7년 전 살인사건 이후 신분을 감춘 채 살아간다. 한편 왕린의 형 왕전(윤종훈)은 세자를 몰아내고 왕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충렬왕과 세자의 갈등을 부추긴다. 왕전은 대부호의 사위가 되기 위해 정략결혼을 추진하다 은산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극 초반의 삼각 로맨스는 이성애와 동성애가 함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세자의 친구가 되어주되, 진짜로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당부를 들은 왕린이 “마음을 중간에 멈추는 것이 힘들다”고 읊조릴 때나, 은산이 두 사람에게 “너희는 친구냐, 아니면 더 은밀한 사이냐”라고 묻는 장면들은 동성애적 기류를 암시했다. 그러나 남장여자였던 은산의 여성성이 점차 부각되고, 은산을 향한 세자의 연정이 적극적으로 표출되면서 셋은 이성애 삼각관계로 기운다.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연적이자, 친구이면서 권력 차가 존재하는 두 남자 사이에 갈등의 씨앗이 뿌려진다. 원작에서는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지만, 드라마에서도 같은 결말을 지닐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극 초반의 재미 중 하나는 은산이 보여주는 주체적인 여성상이었다. 의문의 살인사건에서 살아남은 소녀가 어머니가 고통스럽게 돌아가셨는지 묻고 아니라는 대답에 안도하는 모습이나 아씨인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은 하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모습은 오롯한 개인의 주체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후 신분을 감춘 채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나 세자와 왕린의 관심을 의연하게 밀어내는 모습도 진취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성은 점차 탈색된다. 특히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다며 작전 개념 없이 움직여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은 유구한 민폐 캐릭터의 답습처럼 보인다. 의욕만 앞서는 은산의 모습은 항상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세자와 비교되어 더욱 실망스럽다. 음모에 빠진 은산을 구하기 위해 세자와 왕린이 앞다투어 “내 여자”임을 밝히는 대목이나, 그런 두 남자 사이에 끼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은산에게 주체성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여기에 왕전에게 신분을 들키고 청혼을 받는 은산이라니, 극 초반에 보여주었던 주체성은 어디로 간 걸까. 더 많은 정보를 지닌 남성 캐릭터들에게 사랑받고 청혼받으며 이리저리 휘둘리는 여성 캐릭터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부디 은산의 성장이 그려지길 바란다.
<왕은 사랑한다>에서 가장 주목해야 될 인물은 후일 충선왕이 되는 세자다. 그는 침략국이었던 원의 피가 섞인 자신을 고려인들이 왕으로 받아들일지 고민한다. 충렬왕과 왕전은 고려의 혈통임을 내세워 혼혈 세자를 배척하지만, 세자의 애민 정신이 그들에 비해 결코 적지 않다. 드라마는 매사냥에 빠져 민생을 돌보지 않는 충렬왕을 어린 세자가 말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실제 역사에서 충렬왕과의 권력다툼에서 승리해 24살에 왕위에 오른 충선왕은 백성 착취 금지 등 30개의 개혁조치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8개월 만에 강제 폐위되어 원나라에 압송된다.
복위한 충렬왕은 개혁을 되돌리고 왕전을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한편 원나라에 가 있던 충선왕은 원의 중앙정계에 진출하여 승승장구한다. 충렬왕의 사망으로 십년 만에 고려왕으로 복귀한 충선왕은 다시 개혁을 추진하였다. 곧 원나라로 돌아가 원격으로 고려를 통치했지만, 친원파 등 귀족의 횡포를 막고 세금을 낮추는 등 개혁정책을 계속 펴나갔다.
5년 뒤 충선왕은 고려 왕위를 물려주고 연경에 머물며 만권당을 지어 당대 유학자들과 교류하였다. 만권당은 고려에 성리학을 보급하는 데 밑거름이 된다. 개혁정치를 펴다가 느낀 한계를 퇴임 뒤 미래 세력을 위한 인프라 구축으로 돌파해보려 한 것은 아닐까. 말년에는 티베트 지역까지 유배를 갔다 왔으니, 충선왕은 좁은 고려의 테두리를 벗어나 세계인이자 경계인으로 살았던 인물임에 틀림없다. 오랫동안 민족을 절대적인 가치로 그려왔던 국내 사극에서 혼혈 왕자 충선왕이 던지는 충격은 신선하다. 민족과 국가의 경계에 묶이지 않는 충선왕의 호방한 행보를 드라마가 앞으로 어떻게 그릴지 기대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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