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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06 14:37 수정 : 2017.08.06 19:18

[100℃] 공포연극 전성시대

드라마 공포물 찬밥 신세와 달리
대학로 소극장 365일 서늘한 기운
두 여자·서툰살인·흉터·괴담 등
현재 공연중인 연극만 20편 넘어

귀신보다 분위기·내용으로 공포감
암전 상태에서 으스스한 소리 나오다
뒤에서 누가 ‘탁’ 만지면 기절초풍
일본으로 ‘공포연극’ 진출 구상중

연극 <두 여자>. 공연예술집단 노는이 제공
2017년 여름은 공포 마니아들한테 공포다. 대중매체가 ‘공포인’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제작하는 공포드라마는 한 편도 없다. 국내산 공포 영화는 <장산범>뿐이다. 대체 왜! “시청자들 수준이 높아져서 웬만큼 무섭게 만들지 않고서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더 잘 만들려면 제작비가 많이 드는데, 돈 들여 만들어도 해외 판매가 안 되니 적자를 보는 등 여러 이유로 공포물은 외면받고 있다.”(지상파 출신의 한 프리랜서 피디) 특히 귀신 나오는 드라마는 중국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다. 드라마 수익의 상당 부분을 ‘차이나 머니’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중국이 싫어하는 공포물은 한국 제작자들한테는 기피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공포를 느끼고 싶은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실망하지 말고, 올해 여름은 대학로로 발길을 돌려보자.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대학로는 365일 공포로 오싹하다. 학교, 병원, 집, 산장 등 다양한 장소를 배경으로 스릴러, 호러 등 갖가지 공포가 존재한다. 포털 검색을 기준으로 공연 중인 ‘공포 연극’만 대략 20편이 넘는다. 매년 두세 편씩 새로운 작품이 등장하는 등 드라마·영화와 달리 대학로 소극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공포 연극은 갈수록 활성화되고 있다.

■ 2009년 <두 여자>로 시작한 공포 연극

지난달 29일 찾은 공포 연극 <두 여자>가 열리는 대학로 라이프씨어터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30도가 웃도는 더위에도 일찌감치 도착해 줄서서 기다렸다. “앞자리에서 극한의 공포를 느끼고 싶어요.”(관객 김아무개씨) 평범한 가정이 배경인 <두 여자>는 엄마한테 정신병원에 갇혀 있던 쌍둥이 언니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스릴러 연극으로, 2009년 시작해 매년 예매순위 상위권에 오르는 등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대학로 공포 연극은 바로 이 <두 여자>의 성공으로 시작됐다. <두 여자>를 제작한 공연예술집단 노는이 윤다영 프로듀서는 “<두 여자>가 성공한 2009년 이후 대학로 공포 연극이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흉터> <서툰 살인> <괴담> 등 매년 새로운 연극이 쏟아졌고 인기를 얻었다. 6일 현재 인터파크에서 집계한 연극 예매 주간 순위 50위권에 공포 연극이 6편 올라 있다.

윤다영 프로듀서는 “이전에도 호러 연극은 있었지만 관객층이 한정되고 별로 무섭지 않다 보니 잘되지 않았다”고 했다. 대학로 공포 연극은 무턱대고 귀신이 등장하지 않고 ‘내용+무서움’이 함께 전개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두 여자>를 비롯해 공포 연극 대부분이 스릴러를 접목했다. <흉터>는 세 남녀가 등산하던 중 한 여자가 죽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두 남자의 이야기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이 세밀하다. <흉터>와 <괴담> 등을 제작한 팀플레이 예술기획 조성종 프로듀서는 “연극이다 보니 스토리가 있는 게 잘된다. 이야기에 몰입하던 중에 공포 장치가 불쑥 등장하는 등 내용으로 관객들을 몰입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대본 작업에 보통 연극의 갑절의 시간이 든다. “대본을 쓰면서 어떤 공포 장치를 넣을까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연극 <괴담>. 팀플레이 예술기획 제공

연극 <서툰 살인>. 공연예술집단 노는이 제공
■ 불이 꺼지면, 당신 앞에 귀신이 있다

공포 연극은 대개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작은 무대여서 공포를 조성할 수 있는 장치의 제약이 있다. 그래서 공포 연극들은 주로 암전과 음향, 터치를 활용해 공포감을 조성한다. 암전 상태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공포감이 극대화된다. 무턱대고 불 끈다고 다가 아니다. 성공한 공포 연극들은 암전과 음향 등에서도 치밀한 전략을 세운다. 서상우 공연예술집단 노는이 대표는 “암전이 너무 잦으면 관객들이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한다. 적당한 시간을 두고 암전하는 등 빈도에도 신경쓴다”고 했다. <서툰 살인>과 <두 여자>는 사운드로 놀라게 하려고 스피커를 앞뒤 두대씩, 네대까지 활용한다. 보통 연극은 앞에 두대다. 서상우 대표는 “공포 연극은 등 뒤에서 뭔가가 오는 걸 두려워하는 심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두 여자>에서 죽은 언니인 명희를 부르는 장면 등에서 관객 뒤에 있는 스피커를 활용하는 식이다. 음향 질감도 일반 연극보다 크고 거칠다. 시작 부분에서는 강하게 내질렀다가 중간에서는 음향을 줄이고 마지막 반전 부분에서 다시 키우는 등 소리의 높낮이로 관객의 심장을 쥐고 흔든다.

최근에는 ‘터치’로 공포를 극대화한다. 조성종 프로듀서는 “연극이 영화, 드라마와 다른 점은 직접적인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견줘 최근에는 암전 상태에서 관객을 만지거나 관객 앞에 서 있다가 불이 켜지면 놀라게 하는 식으로 ‘터치’를 하는 게 달라졌다”고 말했다. <두 여자>에서는 영상 기법을 활용해 귀신이 집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효과를 주고, <서툰 살인>에서는 와이어를 사용하는 등 관객들을 더 서늘하게 만들려는 극단의 노력은 계속된다. 이런 노력들로 과거에는 밤 10시 이후 심야 시간에 선보이며 환경에 기대기도 했지만, 이제는 낮 1시 등 다양한 시간에 공연한다.

연극 <흉터>. 팀플레이 예술기획 제공
■ 완성도·전문성 공들여 한철장사 탈피해야

공포 연극은 소극장 무대가 활성화된 한국에서 도드라진 특징이다. 미국 등 대극장 중심인 곳에서는 관객을 만지는 등 직접적인 공포 연극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한때 한국 대기업에서 큰 공연장을 빌려 공포 연극을 시도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조성종 프로듀서는 “공포 연극은 관객 터치 등에서 소극장에 최적화된 장르”라고 했다. 그래서 제작자들은 공포 연극을 대학로의 대표 장르로 발전시키고 싶어한다. 공포 연극은 흑자인 경우가 많고, 여름 특수상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처럼 사시사철 잘되는 등 시장이 형성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꾸준히 관객이 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이 등장하면서 ‘여름 이벤트’에서 대학로 연극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공포 연극은 작업 자체가 힘들다. 우선 기존 연극보다 높은 제작비 조달이 어렵다. 많아야 100석 정도의 작은 공연장이기 때문에 피피엘(PPL·간접광고) 등은 엄두를 낼 수 없다. 조성종 프로듀서는 “포스터 사진 자체가 무서워서 포스터를 붙이는 것조차 거부하는 곳이 많아 홍보의 어려움도 있다”고 했다. 공포 연극을 전문으로 하는 극단이나 전문 연출, 작가 등 인프라도 잘 형성되어 있지 않다. 연극과 뮤지컬은 보고 또 보는 ‘회전문 관객’이 수익의 일정 부분을 책임져주지만, 공포 연극은 회전문 관객도 기대하기 어렵다. 공포 연극을 좋아하는 한 관객은 “한번 보면 이미 어디서 뭐가 나올지 알기 때문에 같은 작품을 두번 보게 되지는 않는다”며 “가장 무서운 작품이 무엇인지 찾아서 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나 노는이, 팀플레이 예술기획, 초콜릿 팩토리, 컬처마인 등 몇몇 극단을 중심으로 대학로 공포 연극을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노는이는 한국처럼 소극장은 많지만 의외로 공포 연극이 활성화되지 않은 일본 진출을 구상하고 있다. 서상우 대표는 “<서툰 살인>을 일본 무대에 올리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노는이는 공포 연극 전문 극단으로의 방향 전환도 고려 중이다. 서 대표는 “제작자들이 공포 연극은 여름 특수를 노리는 한철 장사라는 생각을 버리고,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려는 고민을 끊임없이 해서 하나의 장르로 다지고, 시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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