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
인기 얻어 지상파 진출까지
한국방송에서 19일 첫방
송은이, 김숙 입담 더해져 재미
‘일확천금’ 대신 ‘성실함’ 강조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 누리집
편의점 계산대 앞, 카드를 내미려는 순간 어디선가 환청이 들리는 것만 같다. “스튜핏!!”(Stupid) 인터넷 쇼핑몰을 둘러보며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옷을 결제하려는 순간 또다시 들린다. “슈퍼 스튜핏!!”(Super Stupid) 매일 아침 습관처럼 마시던 프랜차이즈 커피 앞에서도 주춤하게 되고, 급한 마음에 잡아타던 택시 앞에선 어쩐지 작아지는 것만 같다.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을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이라면 이런 후유증을 호소한다. 소비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김생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경험이다. 그러면서 무언가를 사기 전 ‘스튜핏’과 ’그레잇’(Great) 사이에서 나의 소비를 자체검열하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자칭 타칭 ‘통장 요정’인 개그맨 김생민과 송은이, 김숙이 함께 진행하는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 인기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팟캐스트 ‘김생민의 영수증’은 소비 내역이 담긴 한 달 치 영수증을 청취자들이 보내오면 김생민이 그들의 소비를 직접 분석하고 조언을 해주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애초 또 다른 팟캐스트인 ‘송은이&김숙 비밀보장’에 초대 손님으로 등장해 경제 상담을 했지만, 인기를 끌면서 지난 6월19일부터 따로 독립해 2달 만에 10편 정도를 제작했다. 개설 2달 만에 구독자가 1만6312명에 이르고, 좋아요만 5000개에 육박할 만큼 인기가 폭발적이다. 첫 회 이후 줄곧 팟캐스트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김생민의 영수증’ 팟캐스트 순위. 6월 19일 첫방송을 내보낸 뒤 급상승해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팟빵’ 갈무리
■ ‘김생민 어록’만들고 ‘간증’ 후기 올라와
폭발적인 인기가 이어지면서 팟캐스트를 듣는 이들에게 특이한 생활 패턴도 생겼다. 주로 사용하는 카드에 김생민의 얼굴 사진을 붙이거나 ‘스튜핏’이란 글자를 붙인다. 소비하기 전 한 번 더 생각하자는 취지다. 단 0.1%라도 금리를 더 주는 적금을 알아보기도 한다. 이쯤 되면 완전히 ‘생며든’ 삶이다. ‘생며들었다’는 ‘김생민에게 스며들었다’는 뜻의 신조어다. ‘생민하다’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샴푸값이 많이 드는 긴 머리는 자르고, 외식하는 대신 집에서 밥을 먹으며, 한 달에 166만원씩 6개월 적금을 들어 1000만원을 만드는 식으로 김생민처럼 절약하고 저축하는 삶을 산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생민+동사’ 형식의 조어다.
‘김생민의 영수증’ 청취자가 후기로 보낸 카드 모습. ‘쓰지마 Stupid’이란 문장이 붙어있다. ‘비보티비’ 인스타그램 갈무리
‘김생민의 영수증’ 누리집의 후기방(이름이 무려 ‘워렌버핏방’이다)에는 매일 ‘간증’하듯 후기가 올라온다. “화장품을 샀다가 오빠의 ‘스튜핏’ 환청이 들려서 취소했다”, “김생민의 영수증으로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생민이형 덕분에 충동 적금을 질렀다”는 식이다.
김생민의 ‘어록’도 생겼다.
(음악 애플리케이션 이용권 결제를 고민하는 청취자에게) “무료 음악을 듣는 것도 생각해야한다. 절실함이 있을 땐 1분 미리 듣기면 충분하다.”
“돈이 있는 걸 어떻게 쓸까 질문하지 마세요! 다음달로 넘기는 거죠! 그럼 돈이 더 많아지는 거죠.”
“곽티슈(각티슈)는 회사 직급이 임원 이상일때 쓰는 겁니다.”
“커피를 마시기 전에 ‘커피란 나에게 무엇인가’를 생각해봐라”
“돈은 안 쓰는 것이다.”
“가능하면 혼자 다니세요.”
“저축은 공기와 같아야 한다. 이것을 할까말까가 아니라 꼭 해야 한다.”
‘비보티비’ 인스타그램 갈무리
■ 팟캐스트 인기에 <한국방송> 편성
이렇게 팟캐스트가 신드롬처럼 인기를 끌면서 ‘김생민의 영수증’이 지상파로 진출하는 일도 생겼다. <한국방송>(KBS)은 19일부터 매주 토요일 밤 ‘김생민의 영수증’을 방송하기로 했다. 15분짜리로 6주 동안 ‘시즌제’ 형식으로 방송한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으면 추가 시즌을 편성할 수도 있다.
김생민은 연예정보 프로그램이나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맛깔나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장수 리포터’로 자리매김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딴 지상파 TV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1992년 KBS 특채 개그맨으로 데뷔한 뒤 처음이다.
평소 ‘방송 울렁증’이 있다고 말하는 김생민은 카메라가 없는 팟캐스트에서 비로소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드러내왔다. ‘믿고 듣는’ 송은이와 김숙의 입담에 김생민의 감칠맛이 더해져 시너지를 발휘한다. 그래서일까. 청취자들은 김생민의 ‘지상파 진출’을 자못 걱정했다가 송은이, 김숙이 함께 한다는 소식에 안심하기도 했다.
■ ‘대박’ 대신 ‘성실함’에 청취자 호응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김생민은 오래 전부터 연예계 대표 재테크 고수로 꼽힌 인물이다. 그의 재테크 핵심은 절약과 저축이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출연료를 모아 10억원을 벌었다는 기사로 화제가 됐다. 2008년에는 ‘만만한 재테크’란 책도 펴냈다. 지역 케이블 방송사에서 ‘김생민의 재테크 수다’라는 프로그램을, 경제방송에서 ‘김생민의 비즈정보쇼’를 진행한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처럼 열풍이 불진 않았다. 왜 ‘김생민식 절약법’이 새삼스레 인기를 끄는 것일까. 심지어 현재를 즐기라는 뜻의 ‘욜로’(YOLO)나 소소한 소비로 스트레스를 푸는 ‘탕진잼’이란 소비 트렌드와 완전히 역행하는 데도 말이다.
김생민은 인기 이유로 “꼼수가 없는 경제조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 [인터뷰] 연예계 재테크 고수 김생민의 직설 "OO 우습게 보다간 폭풍후회") 다른 재테크 방송 프로그램처럼 상품을 권유하거나 ‘대박’날 수 있다는 식의 비현실적인 조언을 하지 않는다. 대신 “공격적인 투자보다는 안전한 적금을 추천하고, 또 적금을 이어나갈 ‘절박함’을 돋운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비보티비’ 인스타그램 갈무리
타고난 ‘금수저’와 ‘갓(god)물주’(신과 건물주의 합성어)들의 세상에서 잊혔던 ‘성실’의 가치를 보여준다는 점도 있다. ‘김생민의 영수증’을 빠짐없이 들었다는 직장인 조슬기씨는 “다들 ‘로또 당첨’만을 꿈꾸는 세상에서 적은 돈이라도 오랜 시간 동안 꾸준하게 모은다면 가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점이 좋다”며 “김생민처럼 그렇게까지 절약은 못하더라도 들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다”고 했다. 김생민은 실제로 “1992년부터 자동이체 적금을 단 한 달도 빼 먹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 (▶관련기사 : “대본 없이 영수증만 공부하고 녹화, 이런 방송 살다살다 처음”) 그가 팟캐스트에서 수차례 강조하는 것도 바로 ‘꾸준함’이다.
무조건 구두쇠처럼 아끼는 것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비용, 도서 구입 등 자기계발을 위한 소비엔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점도 특징이다. 김생민은 절약은 하되 삶의 최우선 순위를 돈이 아닌 ‘정신’에 두라고 말한다. 한 청취자는 “다들 월급이 저보다 많다는 것에 스스로가 낮아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생민 오라버니께서 ‘돈 버는 것은 상대적이니 무소의 뿔처럼 내 갈 길을 가라‘고 한 말이 현실적인 위로가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강점은 ‘재미’다. 팟캐스트를 들은 뒤 올라오는 여러 후기글에는 오로지 한 글자가 찍혀있을 뿐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팟캐스트 시작 한 달 만에 팬카페도 생겼다. ‘김생민의 영수증’을 2∼3회 이상 반복해서 들으며 ‘오늘은 어떤 충동적금을 들까’ 고민하는 이들이다. 폭발적인 인기에 장난섞인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다들 김생민씨처럼 소비하다간 우리나라 내수 경제가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 모르겠어요.”
[김생민의 영수증 1회 - 대기업 맞벌이지만 왜이리 돈이없나 영수증] 바로가기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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