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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8.24 17:52 수정 : 2017.08.24 21:05

한국인 최초로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23일 저녁 서울 신사동 풍월당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밴 클라이번’ 우승 뒤 첫 쇼케이스
‘뒤풀이’ 하듯 편안하고 유쾌한 모습

10대 때부터 국제대회 8차례 우승
‘정년’ 1년 앞두고 정상에 우뚝 서

국외투어·국내공연 등 일정 빼곡
연말 독주회는 매진으로 추가공연

한국인 최초로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23일 저녁 서울 신사동 풍월당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노래를 아주 잘하고 싶어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은 23일, 서울 신사동 풍월당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아니스트로서 곡의 멜로디를 풍부한 색채로 유려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뜻이다. “‘가곡의 왕’인 슈베르트의 음악이나 오페라처럼 성악이 포함된, 선율이 잘 드러나는 곡을 찾아 들어요. 가요도 종종 듣는데, 그중에서도 발라드만 좋아하죠.”

이번 쇼케이스는 지난 6월 밴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팬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선우예권은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경연 당시 연주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중 ‘사랑의 듀엣’, 라벨의 ‘라 발스’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인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 2·3번을 들려줬다. 100명 남짓 수용 가능한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운 관객들과 마치 콩쿠르 ‘뒤풀이’를 하듯 편안하고 유쾌한 모습이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는 1958년 제1회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해 미국의 영웅이 된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의 이름을 따서 만든 국제대회다. 1962년 이후 4년마다 개최되는 이 콩쿠르는 ‘북미의 쇼팽 콩쿠르’라 불릴 만큼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역대 한국인 수상자로는 2009년 손열음이 2위에 오른 바 있다. 55년 만의 첫 한국인 우승자인 선우예권은 이 콩쿠르의 우승으로 상금 5만달러와 함께 미국 투어 연주, 음반 발매 등 3년간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한국인 최초로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23일 저녁 서울 신사동 풍월당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 뒤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이 콩쿠르는 본선 진출을 하게 되면 미국에 2주간 머무르며 모두 6차례의 연주회를 치러야 한다. 선우예권은 이틀에 한 번씩 곡을 바꿔가며 독주 3회, 협연 2회, 실내악 연주 1회를 여는 동안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연주 직전 발표된 곡을 스스로 익혀 연주하는 미션도 있는데, 선우예권은 마르크앙드레 아믈랭의 ‘무장한 남자에 의한 토카타’라는 기교를 요하는 난곡을 받아들었을 때 당혹스러웠다고 기억했다. “작은 크기의 태블릿피시로 콩쿠르 쪽에서 보내온 악보를 확인했는데, 음표가 너무 많아서 눈이 빠지는 줄 알았어요.(웃음) 불협화음이 많아서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작곡가 본인이 훌륭한 피아니스트라 그런지 몇 번 연습하다 보니 금방 손에 익더라고요. 연주를 준비하고 있는 제게 지휘자 레너드 슬라트킨이 다가와 마사지를 해준 일도 있는데, 덕분에 큰 격려를 얻었어요. 무대 뒤에서 엄마처럼, 매니저처럼 연주자를 챙겨주는 ‘스테이지 맘’도 많은 도움이 됐죠.”

사실 선우예권은 이미 10대 때부터 수십 번 콩쿠르에 도전해왔다. 그중 윌리엄 카펠 콩쿠르(미국), 센다이 콩쿠르(일본), 방돔 프라이즈(스위스), 인터내셔널 저먼 어워드(독일)를 포함해 여덟 차례나 우승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부 명성과 규모가 큰 대회이다. 더구나 입상도 아닌 우승은, 기교와 예술성을 까다롭게 평가하는 각국의 심사위원을 만족시켰다는 점에서 그의 능력을 실감케 한다. 한국 나이로 올해 스물아홉인 선우예권은 보통 연령 제한을 30살에 두는 콩쿠르의 마지막 도전을 위해 평소의 대여섯 배의 노력을 들여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밝혔다. 결국 그의 콩쿠르 도전기는 어떠한 미련도 남기지 않고 커다란 결실을 맺은 채 끝이 났다. 앞으로는 해외 유수의 단체들이 그를 협연자, 독주자로 초청할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23일 저녁 서울 신사동 풍월당에서 열린 쇼케이스에서 격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콩쿠르의 연주 실황은 18일, 도이체 그라모폰 산하의 데카 레이블에서 음반으로 발매됐다. 폴란드 두슈니키 쇼팽 피아노 페스티벌, 미국 애스펀 페스티벌, 독일 하이델베르크 스프링 페스티벌 등 계획된 국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선우예권은 12월15일과 20일에 고국에서 독주회를 연다. 예정돼 있던 600석 규모의 아이비케이 챔버홀에서의 리사이틀이 빠른 속도로 매진되어 2500석 규모의 콘서트홀에서 추가 공연을 연다. 10월12일에는 문태국·조진주와 트리오 연주를 하며, 10월20일에는 대전시향, 11월16일에는 코리안심포니(지휘 최수열)와 협연한다.

김호경 객원기자 writerho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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