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8.25 18:24
수정 : 2017.08.25 20:08
[토요판] 아재음악 열전
예술의 분야에서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렵다. 미켈란젤로와 피카소 둘 중에 누가 더 위대한 화가일까? 사람마다 답이 다를 것이다. ‘모차르트 대 베토벤’은? ‘김소월 대 윤동주’는 어떤가? 대중음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를 꼽으라면 나만 해도 대여섯 명의 후보 중에 한 명 고르기가 어렵다. 최고의 여자가수도 그렇고, 최고의 래퍼, 최고의 듀엣 등등도 이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팝 역사상 가장 성공한 아카펠라 그룹이 누군지. 오늘 칼럼의 주인공 ‘보이즈 투 멘’이다.
이탈리아어인 아카펠라는, 요즘은 반주 없이 노래를 부르는 경우를 통칭해서 쓰는 표현이지만 원래 뜻은 ‘교회풍으로’라고 한다. 중세 유럽에서 악기 반주 없이 부르는 합창곡을 아카펠라라고 부르다가 그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흑인들이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시절에 아카펠라가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당연하다. 20세기가 되어 흑인들이 팝 음악의 전면에 나서게 되면서 아카펠라 형식이 흑인 특유의 경이로운 성량과 감미로운 음성에 잘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특히 느릿한 템포를 많이 쓰는 리듬 앤 블루스 장르에서 흑인들의 화음은 빛을 발했는데 그 정점에 보이즈 투 멘이 있었다.
이들의 시작은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예술고등학교 친구 사이인 친구들이 만든 아마추어팀에서 출발해, 미국 흑인음악의 명문가인 모타운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1991년 4월에 대망의 1집 정규 음반을 발표했다. 사실 보이즈 투 멘이 무반주로 녹음한 곡은 몇 곡 안 된다. 그런데도 아카펠라 이야기만 나오면 ‘킹스 싱어스’나 ‘펜타토닉스’ 같은 아카펠라 전문 그룹보다 보이즈 투 멘의 이름이 먼저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데뷔 음반의 수록곡이었던 ‘과거와 이별하기란 정말 힘들어’(It’s So Hard to Say Goodbye to Yesterday·이츠 소 하드 투 세이 굿바이 투 예스터데이) 때문이다. 1975년에 발표된 원곡을 보이즈 투 멘이 다시 부른 지도 25년이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이 노래만큼 멋진 아카펠라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중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집 징크스도 이들에겐 없었다. 데뷔 음반을 발매한 이듬해인 1992년, 영화 <부메랑>의 주제곡인 ‘엔드 오브 더 로드’로 빌보드차트에서 무려 13주 동안 1위를 기록했는데, 1956년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세운 11주 연속 1위 기록을 갈아치우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 얼마 안 있어서 휘트니 휴스턴의 그 유명한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가 14주 동안 1위를 차지함으로써 금방 기록을 빼앗겼는데, 보이즈 투 멘은 199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음반에서 ‘아일 메이크 러브 투 유’라는 노래로 14주 동안 1위를 함으로써 공동 1위 기록을 되찾는다. 그리고 1년 후인 1995년에 휘트니 휴스턴의 라이벌이었던 머라이어 캐리와 함께 부른 노래 ‘원 스위트 데이’로 16주 동안 1위를 차지하면서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기록을 세운다.
정리하자면, 빌보드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16주) 1위 자리를 차지했던 노래를 보이즈 투 멘이 불렀고, 두 번째로 오래(14주) 1위를 한 노래도 보이즈 투 멘의 노래, 세 번째로 오래(13주) 1위에 머문 노래도 보이즈 투 멘의 노래라는 것. 다른 몇 곡의 1위곡까지 합치면, 보이즈 투 멘이 부른 노래가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기간이 1년이 넘는다. 그야말로 기록의 화신. 팝 음악계의 우사인 볼트라고 할까? 이것이 실화?!
적어도 90년대 10년 동안 보이즈 투 멘은 오직 목소리만으로 세계를 정복했다. 정말 대단했다. 90년대에 전국적으로 확산된 카페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노래, 나이트클럽에서 잠시 열기를 식히는 소위 ‘블루스 타임’마다 흘러나오던 노래, 노래 좀 하는 교회 오빠들이 너나없이 시도하던 노래도 모두 보이즈 투 멘의 노래였다. 펑퍼짐한 옷에 야구 모자를 매칭한 패션도 참 많이들 따라했었는데.
그러나 영광의 시간은 길지 못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그들의 인기는 급전직하했다. 결정적으로 4명의 멤버 중에서 가장 낮은 목소리로 베이스와 내레이션을 담당했던 마이클 매케리가 건강상의 문제로 그룹에서 빠지면서 3인 체제가 되어버렸다. 아직도 3명의 멤버로 간간이 활동은 이어가고 있으나 당연히 예전 같지 않다. 그러니 힘 빠진 요즘 노래 말고, 좋았던 그 시절의 노래를 들어보자. 적폐청산이 얼마나 힘든지를 미리 예고한 노래! 팝 음악계의 우사인 볼트 보이즈 투 멘이 부릅니다. ‘과거와 이별하기란 정말 힘들어.’
이재익 에스비에스 라디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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