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9.03 14:51
수정 : 2017.09.0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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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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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남지은 기자의 방송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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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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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궂긴기사가 가장 어렵습니다. 안 그래도 힘든 사람한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되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호상이라면 모를까, 사고사라면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매번 딜레마에 빠집니다. 좋은 기사를 쓰려면, 그 사람의 발자취를 잘 담아주려면 많이 알아야 합니다. 가족, 지인들에게 추억 등을 물어야 하지만, 아픈 사람 더 아프게 해서 나오는 기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 텔레비전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리얼스토리 눈>(문화방송)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8월24일 방송에서 배우 송선미 남편의 사망 사건을 다루면서 빈소에서 몰래 촬영을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 망연자실해 있는 송씨의 모습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냈습니다. 제작현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소형 카메라로 촬영했다고 합니다. 빈소에 온 손님들을 붙들고 심정을 묻는 식의 취재방식도 사라져 가는 마당에, 빈소에 몰래 들어가 슬퍼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담다니요. 취재 윤리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남의 불행을 시청률에 이용하는 행위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속 보이는 티브이 인사이드>(한국방송2)는 고 최진실의 딸과 어머니의 갈등이 불거진 뒤 이와 관련한 촬영분을 그대로 방송하려다가 반대 여론에 부딪혀 보류하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일기 전 두 사람을 촬영해 둔 것인데요, 마침 논란이 일자 이를 홍보에 활용하면서 예고편까지 내보냈습니다. <리얼스토리 눈>은 사고사를 당한 이의 상갓집에서 몰래 촬영을 하다가 유족들한테 발각되어 촬영분을 폐기한 일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다지만, 취재에도 윤리라는 게 있습니다. 더군다나 남의 아픔을 단순한 흥밋거리로 이용하는 건 첫 번째로 삼가야 할 일입니다. 송선미 남편의 유족들은 제작진에 편집, 삭제를 요청했습니다. 제작진은 해당 부분을 다시보기에서 삭제했습니다. 그러나 진심 어린 사과는 아직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불거지자 “외주제작사에서 그랬다”거나 “(본사) 시피(책임피디)가 최종 판단을 한 것”이라며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 바쁩니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누가 촬영을 지시했는지 잘잘못을 가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본사 제작진도 외주제작사도 송선미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고인이 된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취재 윤리를 지킬 것을 다짐하는 게 먼저입니다. <리얼스토리 눈>의 반복된 사태를 보면서,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같은 언론인으로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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