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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9.15 16:52 수정 : 2017.09.15 19:50

[황진미의 TV 톡톡]

<백종원의 푸드트럭>(에스비에스)은 장사에 고전을 겪는 푸드트럭 상인들에게 종합적인 컨설팅을 제공하여 개선되는 과정을 담은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이다. 7월21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강남역’ 편과 ‘수원’ 편이 방송되었다. 프로그램은 <백종원의 3대 천왕>이 개편되면서 나온 기획으로, 첫 회에 기획 과정이 담겨 있다. 프로듀서는 식문화에 도움이 되고, 백종원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는 기획으로 개편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그동안 백종원을 내세운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맛집 순례를 하는 ‘먹방’이나 요리를 가르쳐주는 ‘쿡방’에 그쳤을 뿐, 진정한 그의 콘텐츠인 장사 노하우와 창업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없었다는 것이다.

맞다. 백종원의 본업은 요리사가 아닌 외식사업가다. 그의 집밥 요리법은 가장 맛있는 요리법이 아니라 외식사업을 통해 터득한 간편 요리법을 집밥 만들기에 활용한 것이다. 1인가구나 기러기 아빠 등 요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전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집밥의 개념을 ‘엄마가 해준 밥’에서 ‘내가 해먹는 밥’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백종원이 집밥의 개념을 바꾼 것도 가치있는 일이지만, 외식사업의 노하우를 소규모 창업자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더 가치있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잘되는 맛집을 홍보해주는 ‘먹방’이나 일류 요리사들의 재주를 시연하는 ‘쿡방’의 공익성이 얼마나 되랴. 그보다는 폐업 위기에 몰린 영세업자들에게 해법을 알려주고, 창의적인 메뉴로 길거리 음식의 다양성과 질을 높이는 것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창업 컨설턴트 기획을 처음 접한 백종원은 몹시 부담스러워했다. ‘점포가 아닌 푸드트럭’이란 말에 약간 솔깃해하더니, 막상 ‘파리 날리는’ 상인들을 보자 조언을 쏟아냈다. 0.1초 만에 행인의 시선을 끄는 법을 비롯하여 메뉴의 적합성, 원가 절감과 조리시간 단축, 재고 관리, 상권과 타깃층 분석, 응대와 퍼포먼스 등 실전 경영학이 쏟아진다. 메뉴를 단순화하고, 조리법을 간소화하며, 친절 응대를 익힌 상인들이 50일 만에 ‘완판’을 달성하는 모습은 감격적이다. 화제성을 높이기 위해 투입한 연예인 출연자들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32억원의 빚을 진 이훈의 절박함이나 손놀림을 숙달해가는 차오루의 성실함에 시청자들이 공명하면서 우려는 잦아들었다. ‘수원’ 편 4회에서 출연자들의 태도 논란이 일었지만, 시청률은 오히려 올랐다. 시청자들이 사업 성패에 몰입해가는 증거였다.

일취월장하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감동과 교훈을 안긴다. 가망 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노력을 통해 성공하는 모습은 리얼리티쇼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서사다. 백종원의 혹독한 지적들은 외식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다른 직업인들도 귀담아들을 내용을 포함한다. 그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었는지 뜨끔함을 느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푸드트럭이 성공하면 청년 일자리와 영세 상인들의 생계가 마련될 뿐 아니라, 조악한 수준의 길거리 음식이 독특한 요리로 격상되어 식문화가 풍성해진다. 대박이 나면 상권이 활성화되고, 지역명물로서 관광상품이 되기도 한다. 새로운 수요와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다.

푸드트럭이 합법화된 것은 2014년이다. 지난 정권의 규제개혁과 청년창업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후 약 2500대의 푸드트럭이 생겼지만, 실제 영업 중인 것은 282대다. 영업장소 제한과 복잡한 허가 절차가 문제였다. 몇몇 지자체가 푸드트럭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강남역 푸드트럭 존도 지난해 말 서초구청의 지원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첫 회에서 보았듯이, 추후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6개월 뒤 서초구청이 제작진과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요컨대 지자체 공무원들이 못한 전문 컨설팅을 백종원과 제작진이 대신한 셈이다. 하기야 관료조직에 입체적인 컨설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백종원의 능력과 명성이 상인들에게 신뢰를 주었고, 미디어의 대중 동원력이 큰 힘을 발휘하였다. 어쩌면 지난 정부가 남긴 껍데기뿐인 행정으로 흐지부지 끝날 수도 있었던 푸드트럭 사업을 지자체와 민간 전문가와 미디어가 힘을 합쳐 성공시킨 드문 사례다. 한곳의 성공이 또 다른 지역의 시도를 부른다는 점에서 <백종원의 푸드트럭>이 이룬 성과는 상당하다.

지금 전국에서 전문 컨설팅을 수행할 ‘더 많은 백종원’이 필요하다. 또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존 상권과 마찰을 빚지 않고 푸드트럭을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최근 1인가구가 늘면서 부엌이 없는 집들이 생겨나고 있다. 집에서 밥을 거의 해먹지 않거나, 반조리 상태의 식품을 간편조리 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앞으로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저녁을 야시장에서 사먹거나 포장해서 집에서 먹는 문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런 식문화를 상상한다면, 푸드트럭의 메뉴와 영업 장소를 지금과 다르게 사고하는 것도 가능하다. 주택가 입구의 푸드트럭에서 촙스테이크와 잡채를 사서 집에 들어가는 것도 떠올려봄 직한 그림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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