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10.13 20:03
수정 : 2017.10.14 18:44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미국 드라마
<굿 닥터>
국내 장르드라마에 대한 최상의 호평은 ‘미드 같다’는 찬사다. 2013년 한국방송에서 방영한 메디컬드라마 <굿 닥터>도 같은 찬사를 받았다. 자폐증이 있는 천재 외과의사의 성장을 그려낸 이 작품은 독특한 캐릭터, 그리고 진부한 러브라인에 의존하기보다는 의료계의 현실과 인물 간의 다양한 역학관계를 반영한 흥미로운 스토리로 기존의 국내 메디컬드라마와는 차별화된 매력을 선보였다.
<굿 닥터>의 미국 리메이크 소식이 들렸을 때 ‘기대 반 우려 반’이었던 것도 그래서다. 메디컬드라마의 본고장에서 ‘미드 같다’는 호평은 각색의 난이도를 낮추는 강점인 반면 그만큼 평범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므로.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 방송사 에이비시(ABC)에서 리메이크한 <굿 닥터>의 매력이 뜻밖에도 ‘한드(한국 드라마) 같은’ 지점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가령 한국 드라마의 상투성에 대한 비평인 동시에 애정 어린 헌사이기도 한 미국 웹시리즈 <드라마 월드>에서 한드의 핵심적 강점으로 지목했던 “드라마 속에선 인생이 즐겁단 말이야. 누구라도 예뻐질 수 있고, 누구라도 진정한 사랑에 빠질 수 있어”라는 따뜻한 감성과 낙관주의가 미국판 <굿 닥터>에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국내판의 도입부를 거의 그대로 따라간 첫 회에서 연출이 가장 힘을 준 하이라이트 대목이 특히 그렇다. 장애가 있는 숀 머피(프레디 하이모어 분)의 병원 채용 여부를 가름하는 결정적 장면이다.
채용을 망설이는 임원들이 머피에게 의사가 되려는 이유를 묻는다. 기본적이고 상투적인 이 질문에 머피는 특유의 화법으로 진심을 담아 답한다. ‘아이스크림 향기가 섞여 있던 비 오는 날’ 토끼가 천국으로 갔던 기억, ‘음식 타는 것 같은 냄새가 나던 비 내리는 날’ 동생이 추락사고로 죽어가던 기억, 그들을 구할 수 없어서 슬펐던 머피의 진심이 그전까지 냉기가 감돌던 회의실을 따뜻하게 적시고 반대하던 임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소위 ‘오글거릴 수 있는’ 장면이지만 그 뻔한 ‘생명을 구한다’는 메디컬드라마의 기본정신을 되살리는 머피의 순수함에 무방비로 동화되고 싶어진다. <굿 닥터>는 바로 그 진심에 설득당한 임원들의 시선으로 볼 때 제일 재미있는 드라마다.
이는 <굿 닥터>의 총괄 프로듀서인 한국계 배우 대니얼 김이 일찌감치 강조한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 8월 ‘국제방송영상 견본시’ 행사 참석차 내한한 그는 <굿 닥터> 리메이크 방영을 앞두고 “전체적으로 어둡고 냉소적인 미국 드라마에 비해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는 한국 드라마의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굿 닥터>의 또 다른 제작자인 데이비드 쇼어의 대표작이자 전설적인 메디컬드라마 <하우스>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미국판 <굿 닥터>는 파일럿 방영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최근 풀시즌 제작이 확정됐다. 이 독특한 ‘한드 같은 미드’의 행보가 흥미롭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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