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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0.14 16:29 수정 : 2017.10.14 17:40

아역배우 출신 서신애는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슴 선이 노출되는 ‘파격’ 드레스를 입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아직 아역 시절 얼굴이 남아 있는데 벌써부터 노출하는 건 보기 안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이티비시(JTBC) 방송 화면 갈무리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분열의 시선'에 갇힌 여자 연예인

아이돌 전소미, 음주 논란으로 진땀
미성년 스타로서 도덕 지키라는 것
그러면서 여자 아이돌의 야한 사진
대거 소비돼 대중 시선의 ‘아이러니’

아역배우 출신 서신애, 성년 맞아
‘파격’ 노출 드레스 입었다가 지적받아
성적 대상화는 하면서 ‘조신하라’ 훈계
여자 연예인에게만 적용된 이상한 기준

아역배우 출신 서신애는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슴 선이 노출되는 ‘파격’ 드레스를 입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아직 아역 시절 얼굴이 남아 있는데 벌써부터 노출하는 건 보기 안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이티비시(JTBC) 방송 화면 갈무리

오랜만에 맞이한 기나긴 연휴가 막바지를 향해 가던 지난 7일, 가수 전소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몇 장의 사진을 올린다. 아이돌그룹 ‘아이오아이’ 시절 함께 활동했던 최유정, 김소혜와 함께 파자마 파티를 하던 중에 찍은 사진이다. 이들이 여전히 돈독한 우정을 유지한다는 사실에 팬들 또한 즐거워했다. 그러나 누군가 사진 한 귀퉁이에 걸린 물체가 아무리 봐도 와인과 정종 병 같다는 의견을 내면서 즐거운 사진은 졸지에 논란의 불씨가 됐다. 2001년생 전소미와 1999년생 김소혜, 최유정 모두 미성년자이니 술을 마시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최유정의 소속사 쪽에서 “문제가 된 술병은 어른들이 마시던 것으로, 세 사람이 술을 마셨다는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 해명이 ‘웃고 있는 세 사람의 볼이 빨간 것이 아무리 봐도 술을 마신 거다’라는 심증을 품은 이들을 모두 만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음주는 곤란해도 야한 옷은 괜찮다?”

미성년자의 음주행위에 대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으나, 공공연하게 술병 사진을 소셜 네트워크에 올리는 게 부적절한 실수였다는 의견에는 일견 일리가 있다. 한국은 청소년기본법을 통해 청소년을 “건전한 성장에 유해한 물질·물건·장소·행위 등 각종 청소년 유해 환경을 규제하거나 청소년의 접촉 또는 접근을 제한”하는 것을 통해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규정한 나라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향정신성 약물을 일찍부터 해서 좋을 이유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 기준으로 가만히 따지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미성년자이기에 술을 마시는 것에 제약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고, 그렇기에 술을 마신 게 아닐까 하는 의혹 또한 심각한 논란의 땔감이 되는데, 몸에 딱 붙는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미성년자의 사진을 소비하는 건 괜찮단 말인가? 술과 담배로부터는 보호받아 마땅한데, 성적 대상화에는 무방비 상태로 있어도 되는 마법의 연령대라도 있는 걸까?

불행하고 씁쓸한 얘기지만, 한국어 기반의 인터넷 검색 엔진에서 여자 아이돌 가수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연관 검색어로 ‘움짤’(움직이는 이미지 파일), ‘19’(19금 성격을 지니는 야릇한 자세), ‘몸매’, ‘후방주의’(공공연한 장소에서 보기 민망할 수 있는 이미지이니 등 뒤에 누가 보는지 주의하라는 경고) 따위가 따라붙는다. 딱 달라붙는 무대의상을 입은 가수들이 상기된 얼굴로 안무를 소화하는 모습 중 가장 자극적인 이미지를 포착한 사진들이 온 인터넷에 깔려 있다. 그중 팬들이 따라다니며 찍은 사진도 많으나, 적잖은 사진들이 언론사의 워터마크(식별무늬)를 달고 있기도 하다. 술병이 찍힌 사진을 보고서는 짐짓 점잖게 ‘수많은 팬들에게 영향력이 미치는 미성년자 연예인이 이와 같은 논란을 겪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충고하던 그 언론사들의 워터마크를. 미성년자 신분으로 술을 마신 게 아니냐고 준엄하게 물어오며 개탄하던 이들이, 다른 한쪽에서는 바로 그 연예인들의 이름 뒤에 ‘19’를 붙여 검색을 하거나 사진을 올려 트래픽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예를 들어볼까? 지난 12일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배우 서신애가 가슴 부분이 깊게 파인 흰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하자, 인터넷은 온통 그의 드레스 사진을 전하는 뉴스로 가득 찼다. 개중에는 “성인 배우가 원하는 옷을 입은 게 무슨 잘못이 있는 걸까”(김대령 인턴기자, ‘서신애의 파격 노출, 문제 삼을 이유 없다'. <스포츠서울> 2017년 10월13일)라는 옹호 의견도 있었으나, 더 많은 언론은 아직 아역 시절의 얼굴이 남아 있는 서신애가 다소간의 노출이 있는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게 보기가 안 좋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어떤 언론은 진지한 어투로 파격적인 옷을 입는다고 성인 배우로 거듭나는 게 아니라 작품 속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줘야 성인 배우로 거듭나는 것이라 충고하기도 했고, 매년 영화제 개막식의 최대 이슈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여배우의 노출이란 사실을 비판하는 언론도 있었다. 딱히 틀린 것 없으신 이 귀한 말씀들은, 스크롤을 조금만 내리는 순간 바로 무색해진다. 한껏 진지하게 충고를 해주고는 아랫줄에 연관 기사로 ‘[포토뉴스]’나 ‘[○○화보]’ 따위의 머리말을 달고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는 링크를 제공하고 있으면 어쩌자는 얘기인가. “난 네가 나이답게 행동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래도 네 사진이 잘 팔리니까 트래픽 장사는 할 거야”가 진의인 걸까?

물론 듣기에 따라서는 이런 지적이 부당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연예계는 언제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연예인의 육신을 전시하는 것을 주요 동력이자 제 기반으로 삼아왔던 업계이니 말이다. 어느 수준까지가 적절한 상품화이고 어느 수준부터는 부적절한 성적 대상화인지 명확한 기준 같은 게 있었던 시기는 없고, 그 적정선이 어디인지는 시대 변화에 따라 치열한 논쟁 끝에 달라졌다. 그러니 ‘화보를 좀 올렸다고 이렇게까지 비난받을 일인가’라고 반문하고 싶은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욕망하고 대상화에 동참하면서 동시에 ‘너희는 몸가짐을 단정하게 해야 할 것이며, 우리는 너희를 유해한 것들로부터 보호할 것’이라는 훈계까지 같이 하는 건 불가능하다. 미성년자를 술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면, 그들의 몸매가 도드라진 화보가 널리 유통되고 소비되는 것 또한 막거나 최소한 어느 선이 적정선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맞다.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외모를 지닌 이가 파격 노출을 선보이는 게 불편하다고 말하려면, 일단 그 사진을 전시하고 공유하는 일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요 며칠 새 사진 몇 장을 빌미로 젊은 여자 연예인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평가하거나 기사를 전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이 두 가지 분열된 태도를 모두 가져가고 싶어한다.

배우 서신애가 지난 12일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파격 노출 드레스를 선보였다. 사진 연합뉴스

그룹 아이오아이 출신 김소혜, 전소미, 최유정(왼쪽부터) 파자마 파티 사진. 전소미 인스타그램

‘성상품화’와 ‘도덕적 권위’의 줄다리기

욕망하는 동시에 훈계하는 이 분열적인 태도는 오랫동안 한국 여자 연예인들을 옭아매던 굴레다. 이 문장은 이렇게도 고쳐 쓸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여자들을 옭아매던 굴레”라고. 한국 사회는 젊은 여자들이 술이나 담배를 즐기고 자신이 입고 싶은 대로 옷을 입을 때마다 ‘앞으로 엄마가 될 몸’이라거나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선이 있는 법’이라고 손가락질하면서, 동시에 여자의 육체를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풍조에 대해서는 몹시 당연한 일인 것처럼 굴어왔다. 이는 기실 “너는 내 마음에 안 드는 일을 해서 내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되고, 내가 원할 때엔 언제든 널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나 다름없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은연중에 당연한 듯 퍼져 있기에, 여성이 각종 성범죄의 대상이 될 때면 범죄자를 비난하기에 앞서 피해자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늦은 시간 어두운 곳을 혼자 다닌 건 아닌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그리 많은 것이다. “젊은 여자는 정복과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한데, 사람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감히 네 좋을 대로 옷을 입고 혼자 밤길을 걸어서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니냐”는 논리, 익숙하지 않은가.

판화가 에셔(에스허르)가 남긴 작품들 중에는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도형이 많다. 오르막인 동시에 내리막인 계단이나, 평지인 동시에 내리막길인 성벽 같은 그림들은 보는 이의 뇌리를 지끈거리게 만든다. 내겐 요 며칠 전소미와 최유정, 김소혜, 그리고 서신애가 겪고 있는 해프닝이 그렇게 보인다. 장사를 하고 싶으면 삼류 타블로이드로 남아 대상이 누구든 열심히 성 상품화를 하고 트래픽을 챙겨가는 대신 비난을 받으면 되는 일이고, 미성년자를 보호하고 지나친 성 상품화와 성적 대상화를 막아 도덕적 권위를 세우고 싶다면 그렇게 주장을 하면 되는 일이다. 아무리 그럴싸해 보여도, 그 어떤 계단도 오르막인 동시에 내리막일 수 없듯이. 응당 받아야 할 존중 대신 욕망과 훈계라는 분열 속에 갇힌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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