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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11.11 09:39 수정 : 2017.11.11 17:50

제이티비시(JTBC) 예능 <전체관람가>. 감독 10명에게 저예산으로 단편영화를 만들게 하고, 제작과정의 뒷모습을 담아 한 주에 한 편씩 영화를 방영한다. 제이티비시 화면 갈무리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전체관람가>의 빛과 그림자

제이티비시(JTBC) 예능 <전체관람가>. 감독 10명에게 저예산으로 단편영화를 만들게 하고, 제작과정의 뒷모습을 담아 한 주에 한 편씩 영화를 방영한다. 제이티비시 화면 갈무리

요즘 내 마음을 가장 복잡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은 제이티비시(JTBC) 예능 <전체관람가>다. 감독 10명에게 단편영화를 만들게 하고, 영화 제작 과정의 뒷모습과 함께 감독들의 코멘터리까지 함께 담아 한 주에 한 편씩 영화를 방영하는 포맷은 익숙하면서도 “왜 아무도 저런 걸 생각하지 않았지?” 싶을 정도로 기발하다.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창작자가 겪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문화방송(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나 엠넷(Mnet) <노래의 탄생>을 연상케 하고, 발품을 팔아 극장을 찾지 않는 이상 접하기 쉽지 않은 단편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한국방송(KBS) <독립영화관>이나 그 전신인 교육방송(EBS) <단편영화극장>을 떠올리게 한다. 기존에 있던 두 가지 포맷을 슬며시 하나로 합친 모양새인 <전체관람가>는 영화와 예능 양쪽 모두의 기준에서 신선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끊임없이 래퍼들이 나와서 스왜그를 뽐내는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아이돌 지망생들이 등장해 심사위원들에게 조언을 가장한 폭언을 당하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던 예능판에서, 경쟁을 유도하는 대신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긋이 관조하는 <전체관람가>의 첫인상은 참신하게 다가온다.

새로운 영역을 여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

<전체관람가>에 참여하는 감독들 중 상당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던 이들이다. 영화 <미쓰 홍당무>로 그해 신인감독상을 3개나 휩쓸고 난 뒤에도 다음 작품인 <비밀은 없다>를 만들기까지 8년이 걸렸던 이경미 감독이나, 한국을 대표하는 비주얼리스트로 손꼽히지만 영화 <엠(M)> 이후 몇년째 신작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는 이명세 감독, 영화 <남자사용설명서>로 특유의 비(B)급 감성을 인정받았으나 영화 <상의원> 이후 소퍼모어 징크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 이원석 감독 등, 자기 색깔이 분명한데도 시장성을 이유로 다음 작품을 제작하는 게 쉽지 않은 감독들인 셈이다. 첫 두 화 만에 신스틸러로 등극하며 영화 <대립군>의 아픔을 달랬던 정윤철 감독의 신작이나, 그간 성애물 쪽으로만 이미지가 굳어져 있던 탓에 공간감이 돋보이는 공포영화 <신데렐라>를 만들고도 제대로 언급된 적 없던 봉만대 감독의 가족드라마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전체관람가>가 감독과 관객에게 제공하는 순기능이다. 프로그램의 인지도를 확 끌어올린 이원석 감독의 단편 <랄라랜드>의 황당무계한 유쾌함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투자 대비 손실을 줄이기 위해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흘러온 오늘날의 한국 영화산업 내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진 감독들의 개성과 야망을 안방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퍽 반가운 일이다.

게다가 단편영화만의 재미와 매력을 널리 알리고 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매년 성장을 거듭해온 미장센단편영화제나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등 유수의 단편영화제들이 존재함에도, 한국은 여전히 단편영화는 ‘시네필들이 영화제에 가서 보는 영화’ 혹은 ‘마케팅을 위해 의류회사나 자동차회사들이 만들어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하는 영화’라는 인식이 강한 나라다. 스스로 시네필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아닌 이상에야 “너 그 단편 봤어?”라고 물어보는 일이 어디 흔한가. 그 흔치 않은 일을 만들어냈다는 건 그만큼 <전체관람가>가 새로운 영역을 여는 데 성공했다는 증거다. 물론 한국방송 <독립영화관>이나 서울독립영화제, 각종 단편영화제에 몰리는 관심이 이만큼 크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방송이라는 좀 더 대중적인 플랫폼과 예능 특유의 대중적인 화법이 아니었다면 이런 결과를 얻어내기란 어려웠으리라. 그러니 <전체관람가>는 어쩌면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에 관심이 많지 않았던 이들에게, 극장용 상업 장편영화를 넘어선 더 넓은 영화의 영토를 탐험케 만드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수익을 독립영화 진흥을 위해 기부한다는 기획 의도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이경미 등 개성파 감독들의 단편,
‘스크린’ 아닌 ‘안방’에서 관객맞이
상업영화에 길들여졌던 대중 시선
다양성 넓히는 계기로 평가받는 중

그러나 작품당 3000만원의 저예산
영화는 감독 한명의 것이 아니기에
제작 위해 투입된 스태프들의 헌신
‘열정페이’로 둔갑할까 우려도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전체관람가>가 좋은 점으로만 가득한 프로그램이라면 마음이 복잡해질 일 따위는 없었으리라. 프로그램을 보며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12분짜리 단편을 만드는 데 제이티비시가 책정하고 투자하는 예산의 상한선이 3000만원이라는 점이다. 처음 프레젠테이션 당시 제작비가 3000만원이라는 이야기에 감독들은 웅성이며 우려를 표했고, 특히나 봉만대 감독과 이명세 감독은 “사정을 하면서 영화를 진행해야 하는 액수”, “프리 프로덕션과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문소리는 “찍고 싶은 이야기를 3000만원으로 찍으시라는 게 아니라 3000만원이라는 예산에 이야기를 맞춰야 하는 프로젝트”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세상 어느 영화감독이 방송을 통해 자신의 신작을 전국에 선보이는 기회를 잡았는데 예산 때문에 제 작품세계를 어설프게 보여주고 마는 쪽으로 타협하겠는가 말이다. 세번째 영화까지 뚜껑을 열어본 지금 시점에서 가만히 헤아려보면, 3000만원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때깔의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방송 직후에는 12분이라는 제한에 맞추느라 미처 넣지 못한 장면들을 넣어 재편집한 ‘감독판’이 온라인에 공개된다. 사실상 15~20분에 달하는 영화를 3000만원으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달려 있는 문제다

물론 <전체관람가>에는 전도연, 안성기, 이영애 등의 유명배우들이 독립영화를 돕는다는 취지에 공감해 노개런티로 출연을 약속해줬고, 현장에서 쓰이는 카메라와 렌즈 또한 협찬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걸 고려하더라도 3000만원은 결코 풍족한 예산이 아니다. 14년 전인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섯 명의 감독을 섭외해 만든 옴니버스 단편 <여섯 개의 시선>의 총 순제작비가 3억원, 편당 제작비 5000만원이었다. 2년 뒤인 2005년 다섯 명의 감독을 섭외해 만든 후속작 <다섯 개의 시선> 또한 편당 제작비는 7500만원이었다. 영화산업 표준근로계약서가 업계에 도입되기 전이었다 해도,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물가인상률과 최저임금 인상폭을 고려하면 2017년에 단편영화 순제작비 3000만원은 분명 적은 액수다. 마냥 찬사만 보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를 보며 웃고 울다가도, 누군가는 받아야 할 돈을 제대로 못 받고 있거나 일해야 하는 시간보다 더 과중한 노동을 짊어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찜찜함이 밀려오는 것이다. 의도가 좋다는 이유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이유로, 한국 영화계가 그토록 근절하려 노력해온 열정페이와 착취의 구조가 다시금 슬며시 정당화되는 건 아닌가?

이해가 영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흥미로운 드라마는 주인공이 넘어야 할 장애물을 필요로 한다.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예능으로 만들려면, 그 제작과정이 꼭 순탄치만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견 넉넉한 예산에 배급망을 대신해줄 방송사, 취지에 공감해 출연해주는 특급 배우들까지 다 갖춘다면 그 과정이 뭐 그리 어려울 것이며 뭐가 그리 재미있겠는가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송이 그렇듯 영화 또한 감독 한 명의 예술이 아니다. 한 편의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생하는가. 프로듀서와 시나리오 작가, 콘티 작가, 조감독, 스크립터, 연출부, 조명, 녹음, 촬영, 진행팀, 디지털 후반작업, 컴퓨터그래픽팀, 보조출연자 등 수많은 이들이 제 시간과 재능과 노력을 기울여야 비로소 세상에 나오는 게 영화 아닌가. 아무리 프로그램의 의도가 좋아도 제작과정이 그 의도를 해친다면 마냥 박수만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감독에게는 극복해야 할 난관이요 예능에서는 흥미로운 그림으로 보일 만한 요소들이, 영화를 생업으로 삼는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달려 있는 문제다.

제이티비시(JTBC) 예능 <전체관람가>. 감독 10명은 앞으로 약 15~20분 분량의 영화를 3000만원의 예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제이티비시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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