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1.26 20:41 수정 : 2018.01.26 20:44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마더>

사진 엔티브이

지난 24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수목드라마 <마더>는 국내 케이블방송 <티비엔>의 상반기 최고 기대작이다. 배우 이보영이 주연을 맡은 데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비밀은 없다>, <아가씨> 등의 각본가로 유명한 정서경 작가의 티브이 드라마 진출작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일본드라마 최고의 문제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동명원작의 리메이크작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2000년 일본 <엔티브이>에서 방영된 <마더>는 자신의 제자를 납치해 딸로 삼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아동학대의 상처와 사적 구제의 윤리적 딜레마를 섬세하게 풀어낸 수작이다. 흥행성과 작품성을 보장하는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흡인력 있는 극본, 투톱 주연을 맡은 마츠유키 야스코와 아시다 마나, 이 두 배우의 놀라운 연기가 빛을 발한다.

조류 연구가 스즈하라 나오(마츠유키 야스코)는 대학원 연구실이 폐쇄되자 무로란의 한 초등학교에 단기 강사직을 얻는다. 임시로 담임을 맡은 반에는 또래보다 작은 체구에 독특한 말투를 사용하는 7살 미치키 레나(아시다 마나)가 있다. 연구 대상인 새 외에는 세상에 도통 관심이 없던 나오는 처음 만난 날부터 친근하게 다가오는 레나에게 계속 신경이 쓰이고, 곧 아이가 심각한 학대 상황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 추운 겨울밤 레나의 엄마와 동거남은 레나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길가에 유기하고, 동사 직전의 아이를 발견한 나오는 레나를 유괴해 함께 멀리 도주하기로 결심한다.

<마더>는 아동학대, 납치, 존속살해 등의 소재를 사용하지만 이를 결코 자극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치밀한 취재와 진지한 주제의식 위에 탄생한 극본은 작은 에피소드와 암시만으로도 학대받는 아동 특유의 신체적, 심리적 증상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낸다. 학교, 경찰, 아동상담소 등 사회가 학대아동을 대하는 태도 역시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가령 제일 먼저 학대 정황을 눈치 챈 한 교사는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레나를 구원하려 하지만 아동의 관점보다는 전형적인 ‘보호자’로서의 시선의 한계 때문에 묘한 거리감을 준다. 보호받을 수 있는 낯선 어른보다 차라리 학대하는 친근한 부모와의 삶을 원하는 아이의 태도는 제도적 구제가 메우지 못하는 심리적 공백을 드러내 보인다.

<마더>는 바로 그 심리적 내상에 주목한다. 나오와 레나를 둘러싼 세계는 폭력과 위협으로 가득하지만,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모두 그들의 내면에서 일어난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 내면을 따라가다가 나오와 레나를 연결하는 강력한 끈이 상투적 모성이 아닌 상처 입은 여성들의 이해와 유대감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의 모든 폭력은 젠더적 의미를 띠며, 서로를 치유하고 구원하는 것은 모두 여성의 몫이다. 여성들의 주요 대화신은 평균 십분 이상의 긴 호흡으로 연출되고 이를 통해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한 장면에서 문득 “여기 여자만 있네”라고 환기하는 레나의 대사에서 드러나듯, <마더>는 경이로울 정도로 여성들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진 드라마다. 여성을 향한 잔혹한 폭력과 진부한 모성을 소재로 하면서도 여성들에게 흥미로울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