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2.23 19:14
수정 : 2018.02.2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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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엔에이치케이 비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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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우리 집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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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엔에이치케이 비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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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살 전업주부 다카기 미나코(미즈카와 아사미)는 고민이 많다. 당장 내년이면 사택을 나가야 해서 이사 갈 집을 구하는 게 제일 걱정거리다. 아직 어린 딸과 아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엄마 손을 필요로 하고, 학부모회 일도 챙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나코를 한 번도 걱정시킨 적 없는 남편 다카기 다쓰오(고이즈미 고타로)가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그마저도 이상해졌다. 며칠 전 퇴근길에 유에프오(UFO)를 목격했다는 그는 이제 우주인과 교신까지 하게 됐다고 말한다.
일본 엔에이치케이 비에스(NHK BS)에서 방영 중인 1분기 드라마 <우리 집 문제>는 평범한 가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고민을 다룬 4부작 옴니버스물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소한 듯한 고민거리지만 크게 확대해보면 그 안에 가족제도의 문제와 더 나가 사회 전체의 부조리가 반영되어 있는 전형적인 가족극이다. 소설 <공중그네>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동명 단편집을 각색한 이 드라마는 재치 넘치는 묘사 안에 현대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버무려 양가적 감정이 들게 하는 작가 특유의 스타일을 잘 살리고 있다.
첫 회인 ‘남편과 유에프오로 고민하는 아내’는 특히 그렇다. 전업주부의 현실적 고민에서 출발한 드라마는 남편의 초현실적 증상과 만나며 극 내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순간을 여러 번 만들어낸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우주인과의 교신 상황을 설명하는 다쓰오의 태도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면서도 도입부부터 이미 의도적으로 증상의 기원을 암시했기에 슬픔이 동시에 일어난다. 미나코가 남편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동안 ‘우리 집 문제’는 과잉노동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 전체의 병폐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가족드라마로서도 섬세한 이야기가 돋보인다. 드라마의 중심은 가부장이 짊어진 짐에 쏠려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전업주부의 그늘 역시 촘촘하게 깔려 있다. 첫 장면부터 이사 갈 집을 고민하고 아이들의 잠자리를 챙기는 미나코의 일상으로 시작하는 드라마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그녀의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쉼 없이 보여주며 그녀야말로 교신이 필요한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줄 이가 전무한 곳에서 고독에 빠져 있는 남편의 고민과 걱정을 공유할 인간관계가 협소한 전업주부의 고독은 같은 무게로 겹쳐진다.
그래서 훈훈한 웃음과 감동적인 가족애로 마무리되는 동화 같은 결말은 또 다른 여운을 남긴다. 미나코는 정말 유에프오를 본 것일까? 4부작 안에 각각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담아내지만 아내 역은 모두 미즈카와 아사미 한 배우가 연기한다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대부분의 이야기 안에서 ‘아내의 문제’는 뚜렷하게 가시화되지 않은 채 드라마를 떠받치며 계속 이어진다. 기혼여성의 삶이 그와 비슷하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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