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20 20:37
수정 : 2018.04.2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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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비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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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더 크로싱>
미국 오리건주의 작고 조용한 해변 마을에 시신 하나가 떠내려온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마을 보안관 주드 엘리스(스티브 잔 분)는 바다로부터 연이어 수백 구의 시신이 떠밀려 오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된다. 마치 종말과도 같은 현장에서 엘리스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낸다.
생존자 47명, 사망자 400여명의 대재난 현장이었다. 급기야 국토안보수사국(HSI)이 나선다. 수사 책임자 에마 렌(샌드린 홀트 분)은 현장에 그 어떤 조난 흔적도 없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긴다. 생존자들의 말은 더 기이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미래의 미국에서 종족 대학살을 피해 도망쳐 온 난민들이라 주장한다.
미국 에이비시(ABC) 채널의 신작 <더 크로싱>(원제 ‘The Crossing’)은 ‘낯선 이들의 방문’이라는 에스에프(SF) 장르의 고전적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타자들은 180년 뒤의 미국에서 건너온 이들이며 그 미래는 신인류 ‘에이펙스’가 지배하는 공포의 시대였다. 시간여행, 진화한 인류의 출현, 종족 대전쟁 등은 에스에프에서 이미 오랫동안 반복 등장해온 소재들이다. <더 크로싱>의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설정들을 지금 이 시대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해도 자연스러운 이야기로 풀어나간다는 데 있다. 국제뉴스 속 난민 대란의 한 풍경을 재연한 듯한 도입부부터 시작해 곳곳에 정치적 은유가 가득하다.
생존자 인터뷰 장면이 대표적 사례다. 드라마는 대학살과 인종청소가 벌어지는 미래의 ‘디스토피아’적 풍경을 에스에프의 웅장한 전쟁 신이 아니라 오로지 생존자들의 진술만으로 풀어낸다. 참상의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생존자들의 얼굴, 파편적이지만 하나같이 일관되고 생생한 증언은 상상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미래의 비극을 한순간에 설득시킨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당시의 그 어떤 기록화면도 사용하지 않고 관련자들의 인터뷰만으로 증명한 클로드 란즈만 감독의 전설적 다큐멘터리 영화 <쇼아>를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다.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으며 자신의 기억을 되새기는 에마 렌의 이야기도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녀 역시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와 검열의 시선에 둘러싸여 공포에 떨었던 이주민으로서의 경험이 있다. 에마 렌은 생존자들에게 이입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격리하고 감시하고 조사해야 하는 상황에 갈등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인상적인 초반부를 벗어나고 중반부로 접어들면서는 좀 더 장르적 성격에 충실한 전개가 펼쳐진다. 생존자들의 저마다 간직한 비밀스러운 사연, 시간여행자들의 도착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단서, 세계의 역사를 뒤바꾸려는 신인류 에이펙스의 음모, 이를 각각 다른 입장에서 수사해나가는 주드 엘리스와 에마 렌의 추적 등 흥미로운 설정들이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특히 중반부부터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낸 생존자 리스(나탈리 마르티네즈 분)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은 냉철한 수사요원 에마 렌과 함께 매력적인 히로인 캐릭터의 탄생을 예감케 한다. 여러모로 올해 등장한 가장 흥미로운 신작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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