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28 12:34
수정 : 2018.04.29 14:28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독일 드라마 <더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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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디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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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8월11일, 동독의 수영 선수 하리 멜히오르(하이노 페르히)는 전국대회에서 자유형 금메달을 차지하며 국민적 스포츠 영웅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시상대에서 당국 고위층의 악수를 거부하며 물의를 일으킨다. 보안국에서는 1953년 6월의 대규모 반정부시위에 참가해 4년간 복역한 이력도 있는 하리를 요주의 인물로 눈여겨본다. 하리의 친구이자 엔지니어인 마티스(제바스티안 코흐)는 예사롭지 않은 정치적 상황과 수상한 장벽에 대한 소문을 전하며 하리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8월12일, 동서베를린 경계선에는 기다란 철조망 벽이 설치된다.
독일 드라마 <더 터널>(원제 ‘Der Tunnel’)은 냉전시대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이 막 세워지던 시기의 이야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국경이 봉쇄되자 장벽 아래 무려 150m가 넘는 지하 터널을 뚫어 동독의 가족들을 탈출시킨 이들의 역사적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베를린장벽이 붕괴된 지 12년이 지난 2001년 티브이와 극장에서 동시에 공개되며 국제 티브이 시상식과 영화제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붕괴 25주년인 2014년에는 영화 주인공 하리 멜히오르의 실제 모델 하소 헤르셸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당시를 생생하게 회고하면서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헤르셸은 장벽 설치 당시 서독으로 급하게 홀로 피신했다가 두고 온 가족을 구하기 위해 이 놀라운 계획을 주도했고, 이후에도 지속적인 작전으로 1000여명의 동독인을 탈출시킨 전설적 인물이다.
드라마는 약 2시간40분간의 러닝타임을 통해 장벽을 긴박하게 넘나들며 서독의 구출 작전과 동독의 삼엄한 생존기를 교차해 담아낸다. 보안당국의 혹독한 검열을 피해 서독으로부터의 연락을 은밀히 주고받는 동독의 가족들 이야기는 첩보전을 방불케 하며, 무장한 군대의 살벌한 감시가 펼쳐지는 분단의 경계선 바로 아래에서 펼쳐지는 ‘터널 작업기’는 하루에 고작 수십
센티미터를 전진하는 지난한 과정임에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롤란트 주조 리히터 감독은 주요 인물만 10여명에 달하는 복잡한 사연의 드라마를 한정된 시공간 안에 촘촘하게 배치하면서 실화의 무게와 장르적 재미를 균형감 있게 조율해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분단 현실의 묘사다. 드라마는 낮은 철조망으로 시작한 경계선이 그 위에 차츰 무거운 벽돌이 쌓이면서 거대한 장벽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통해 분단의 비극이 심화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담아낸다. 앞이 훤히 보이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다가갈 수 없는 서로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양국 가족들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낯익은 장면이다. 구출 작업에 합류할 이들을 가려내는 과정에서 지원자들이 저마다 동독의 가족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토해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만약 이 이야기가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졌다면 틀림없이 자유를 향한 대탈주극으로 그려졌겠지만, 분단의 아픔을 경험한 자들의 시선은 이렇게 다르다. 이곳에서도 <더 터널>은 절절한 재회의 이야기로 읽힌다.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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