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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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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대한 누나들의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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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나 내일 밥 사달라면 사주나?”
서준희는 친누나의 친구 윤진아에게 묻는다. 둘은 20년간 가족처럼 지내온 동생과 누나 사이. 하지만 어느 날부터 서로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설렘. 점점 부풀어오르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진아는 술자리에서 탁자 아래로 준희의 손을 잡는다. 준희도 그 손을 놓지 않는다. 비밀 연애가 시작된다.
요즘 인기를 끄는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이하 <예쁜 누나>) 이야기다. 커피전문회사에서 매장을 관리하는 슈퍼바이저로 일하는 1983년생 윤진아의 일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4살 어린 친구 동생과의 달달한 연애와 함께 30대 직장 여성의 애환을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드라마 <하얀거탑> <아내의 자격>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의 안판석 감독이 연출을, 김은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윤진아 역은 5년 만에 TV 드라마로 돌아온 손예진이, 서준희 역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 <슬기로운 감빵생활> 등에 출연한 정해인이 맡았다.
닐슨코리아 집계 결과에 따르면, <예쁜 누나>는 3월30일 첫 방송 때 시청률 4%를 기록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4월14일 전파를 탄 6회 방송은 자체 최고 시청률 6.2%를 기록하며 지상파 포함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20∼40대 여성 시청자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미투 운동이 일면서 젠더 감수성이 높아진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이 연상연하 커플의 사랑 이야기는 왜 이토록 사랑을 받을까. <예쁜 누나>는 기존 로맨스 드라마와 무엇이 다를까. 4월19일 저녁 7시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김선영 TV평론가, 최지은 작가, 세 누나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돈 내고 ‘가오’ 잡지 않는 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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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인기요인을 이야기하는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김선영 TV평론가, 최지은 작가(왼쪽부터).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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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누나>가 인기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시청자를 사로잡은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최지은 준희는 밥을 사달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식당에 가서는 본인이 밥값을 계산한다. 그게 누나들이 흐뭇해하는 포인트다.
황진미 맞다. 준희는 돈을 내고 ‘가오’(폼)를 잡지 않는다.
김선영 발렛비(주차대행비) 1천원을 뜯어가는 옛 남친, 점심때 밥을 뺏어먹는 ‘개저씨’ 공 차장과 준희의 모습이 대비된다.
황진미 준희는 나대거나 잘난 척하지 않고, 이성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지 않으면서도 살짝살짝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상대방을 잡았다 놓았다 하는 뭔가가 있다. 그만의 원천 기술이자 매력이다. (웃음)
김선영 그동안의 로맨스 드라마에는 ‘재벌 3세’ ‘출생의 비밀’ 등이 자주 나왔다. 남녀 주인공의 운명적인 인연을 강조하려고 작위적 설정을 무리하게 둔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치한으로 오인해서 엮이거나, 자동차 접촉 사고가 나서 만나기도 한다. <예쁜 누나>에는 그런 게 없다. 진아와 준희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다. 여자의 일상 속에 남자가 마치 커피처럼 스며 들어온다.
최지은 35살 나이의 진아는 정말 고민이 많을 때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직장에서 자리를 어떻게 지키고, 앞으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집에서는 결혼에 대한 잔소리를 심하게 듣는다. 35살 넘으면 시집을 못 간다며 엄청 괴롭힌다. 그 나이쯤 되면 사회생활도 해보고 연애도 해보고 별달리 신나는 일도 없다. 더 이상 인생이 리셋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다. 그때 준희가 ‘짠’ 하고 나타난다. 모르던 남자도 아니고 그동안 알던 익숙한 남자인데 이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색다른 행복감을 주는 준희는 생활의 활력소이고 비타민이다. 여기에 감정이입하는 여성 시청자가 많다. 물론 현실 세계에서 친구 남동생은 준희 같지 않다. (웃음)
최근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미투’ 운동을 반영하듯, <예쁜 누나>에서도 직장 내 성희롱, ‘리벤지 포르노’(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하기 위해 유포하는 성적인 사진이나 영상 콘텐츠), 데이트폭력 등을 다뤘다.
최지은 옛 남친의 데이트폭력 장면을 담긴 했지만 그리 심각한 문제로 다루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입은 진아의 내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 일을 겪고 준희와 아무렇지 않게 또 ‘썸’을 탄다. 보통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은 남자와 연애 관계를 힘들어하는 등 트라우마를 겪는다. 그런데 진아는 그 일을 그저 별일 없었던 듯 지나간다. 그게 너무 이상하다.
김선영 나도 그게 이해가 안 갔다.
“이 드라마는 양다리 걸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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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달달한 연인 케미를 보여주는 손예진(오른쪽)과 정해인. JT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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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데이트폭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짚어줘야 한다. 데이트폭력을 다뤘지만 피해자의 상황에 초점을 안 맞췄다. 이게 왜 지나가는 사건이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선영 데이트폭력, 몰래카메라 문제에 대해서는 직장 내 성희롱만큼 사회적 접근을 안 한다. 옛 남친을 경찰에 신고도 안 하고 끝난다.
최지은 진아의 동생과 준희가 옛 남친 집에 찾아가 그의 노트북을 부수고 위협하는데, 정작 피해 당사자인 진아는 이 상황을 알지도 못한 채 배제되어 있다. 게다가 뒤늦게 사진에 대한 얘기를 듣고 옛 남친을 찾아가는 장면은 불안하다. 진아는 강제추행과 불법촬영을 저지른 남자의 집에 혼자 간다.
황진미 진아는 무방비다. 그 범죄에 대한 인식이 없다.
최지은 한번 폭력을 경험한 여성은 한동안 불안 증세를 겪는다. 나도 겪어본 일이다. 피해망상처럼 문 밖에 나가면 그 남자가 지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진아는 금세 다 잊은 것처럼 새로운 남자친구와 연애 초기의 설렘을 즐긴다. 방금 경험한 폭력에 대한 분노와 공포가 너무 간과된 느낌이다.
황진미 실제라면 준희와 연애 진도를 못 나간다. 오랫동안 상담을 받거나 그래야지. 결국 준희가 어디선가 멋지게 나타나기 위한 도구로서 데이트폭력을 활용한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예쁜 누나>가 기존 한국 로맨스 드라마와 다른 점은 뭔가.
최지은 한국 사회에서는 ‘멋진 남자’에 대한 상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다. 미디어에서도 폭력적이고 강압적이지만 가진 게 많은 남자가 멋진 남자처럼 그려졌을 뿐이다. 상대를 존중하면서 사랑하는 남자, 제대로 소통할 줄 아는 남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준희는 괜찮은 남자인가 묻는다면 기존의 남성 캐릭터들과 다른 매력이 있지만 역시 문제가 많다.
김선영 <예쁜 누나>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전통적 로맨스물 시청자를 위해 남자 주인공의 분노 폭발 장면을 넣는다. 실제 이런 장면이 분당 최고 시청률이 나오니 드라마 엔딩 신에 넣는다. 그러면서도 20∼30대 여성 시청자를 위해 여성 직장인의 동료애와 연대, ‘개저씨’에게 일침 놓는 장면을 넣는다. 이런 시도로 미투 운동 속에서 변화된 시청자의 관심사를 담는 것 같다.
“일에 대한 자긍심 어디로 갔나”
30대 직장 여성들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선영 직장인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미생>이 있었다. 그건 남자 중심의 이야기였다. 남성 중심 직장물에선 여자 직장인의 동료 관계가 적 아니면 호의적 관계로 단순하게 그려진다. <예쁜 누나>에선 여성 직장인들의 역학관계를 잘 그렸다.
최지은 커피전문회사에서 프랜차이즈 매장을 관리하는 여성 직장인의 모습을 그린 게 흥미로웠다. 본사와 점주 사이에 껴서 감정노동을 하고, 올라갈 길은 안 보이고 힘들기만 한 중간관리자 위치에 선 모습을 잘 그렸다.
황진미 정 부장은 여성 멘토 구실을 하고, 여성 동료들끼리는 연대를 보여준다. 서로 영향을 주고 연결돼 있다.
김선영 남성 중심 드라마의 목표는 업적 달성과 미션 성공이다. 그런 것에만 초점을 두어 그린다. 직장 내 여성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남자 상사와의 관계와 감정노동, 조직 내 스트레스다. 이들의 위치에 서서 그린 드라마가 거의 없었는데 <예쁜 누나>에서 현실감 있게 그리고 있다.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회식 자리에서 고기를 굽고 불쾌한 스킨십을 받아주던 진아가 사랑을 하며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황진미 진아는 일할 때 모습이 무척 자연스럽다. 35살 사회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연애할 때는 마치 23살처럼 군다. 연애 경험도 있는데 어린 후배한테 남자에 대한 상담을 받고 그 말을 받아들인다. 이해가 안 된다.
최지은 진아는 엄마와의 관계에서도 35살이나 먹은 딸 같지 않다. 양다리를 걸쳐 헤어진 남자친구가 스펙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만나라고 종용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도 되받지 못한다. 수동적인 반응이다. 이 드라마의 끝은 준희와의 결혼이 아니라 진아의 독립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준희가 진아의 회사일에도 조금씩 개입한다. 옥상에서 상사와 이야기할 때 준희가 끼어들어 말을 끊는다. 그가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는 것 같지만 그 상황에서 진아는 ‘이건 내 일이니 끼어들지 마’라고 했어야 한다. 그런데 ‘날 지켜주는 멋진 남자가 있어’라고 말한다. 일과 연애가 엮이는 순간 진아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은 말을 하는 건지, 이 사람의 일에 대한 자긍심은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 든다.
황진미 진아는 멋진 남자의 사랑을 듬뿍 받아 자존감이 급상승한다. 마치 ‘여자들, 불행하세요? 사랑을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게 35살 전문직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36살에 결혼했는데, 결혼 전에 주위에서 ‘전문직 여성으로 사회에서 아무리 잘나가도 남자의 사랑을 못 받으면 공허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삶이 로맨스로 포획되지 않길”
최지은 불쾌한 술자리 스킨십을 받아주며 싫은 내색을 못하던 진아가 사랑에 빠진 뒤 부당한 요구를 거부한다. 이 작품은 직장 내 성폭력이 예외적인 변태 한 사람의 일회성 행동이 아니라, 그걸 오랫동안 가능하게 한 남성 중심 문화와 구조에 있다는 걸 보여준다는 면에서 의미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 문제로 고민해온 조직 구성원들의 각성과 논의 이전에 진아의 연애, 즉 준희의 존재가 변화의 포인트가 되었다는 게 아쉽다.
10회 남은 이 드라마에서 앞으로 보여줬으면 하는 것은.
황진미 준희가 마초의 면모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준희가 진아에게 ‘잘될 거야’라고 하는데, 막연히 그런 말 하지 말기를. ‘오빠만 믿고 따라와’의 또 다른 버전이다.
최지은 결국 이들이 한국 가부장제에 편입될 것인가, 즉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라는 선택이 중심이 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진아의 삶이 로맨스에 포획되지 않았으면 한다. 진아가 연인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침범당하지 않는 자신의 영역을 단단히 만드는 모습을 보고 싶다.
황진미 앞으로 둘의 비밀 연애가 사람들에게 들켰을 때 진아의 태도가 어떨지 궁금하다. 전에 진아가 준희에게 “작은 거에 흔들리지 말자, 프로답게”라고 했다. 그처럼 진아가 “누나 믿고 따라와”라고 준희를 끌고 나가는 건 어떨까. 기존 남녀 성역할을 반전시키는 것도 좋을 듯싶다.
김선영 안판석 감독의 전작 <아내의 자격>의 여주인공은 진아보다 훨씬 더 억눌리고 수동적인 인물이었는데 나중에 가장 용감한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 잘못된 세계를 깨고 나왔다. 그런 여성 캐릭터도 있지만 한국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멋지고 당당한 여성 캐릭터도 연애를 하면 수동적으로 변한다. 이제는 여성 캐릭터를 그렇게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로맨스보다는 윤진아의 성장에 응원을 보낸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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