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5.17 18:52 수정 : 2018.05.18 09:35

[짬] ‘방송 남북교류’ 전문가 오기현 피디

오기현 피디.

오는 20일 시청자와 만나는 <에스비에스(SBS) 스페셜―84년생 김정은과 장마당 세대>는 ‘시장’(장마당)을 통해 지금의 북한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이다. ‘전기밥솥 등 남한의 물건이 유입되고, 계모임 사금융이 활성화하고 있다. 시장을 중심으로 불법적인 부동산 거래가 활기를 띠고 ‘돈주’라 불리는 신흥부자들이 나타나고 있다 등등.’ 재미언론인이 촬영한 영상과 전문가·탈북민 취재를 통해 시장의 활성화가 몰고 온 북의 이런 변화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북한의 생활 경제에 주목한 다큐는 드물다. 막연히 짐작만 했던 것들을 확인해 보여준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오기현 피디의 자평이다. 이 다큐는 남북한 방송 교류의 장을 열어온 북한 전문 피디가 정년을 앞두고 방송사 현역으로 제작한 마지막 ‘북한 프로그램’이란 점에서도 주목된다. 14일 서울 목동 <에스비에스> 사옥에서 오 피디를 만났다.

그는 1998년부터 지금껏 30여차례 북한을 드나든 이른바 ‘남북한 교류 전문 피디’다. 남북 방송 교류가 전무하던 1998년 처음 개인 자격으로 평양에 다녀온 이후 발벗고 나서 북과의 교류를 이어왔다.

“1999년 베이징 북한 대사관에 무작정 전화해 당시 가장 급선무인 ‘이산가족 문제’ 취재를 제안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1999년 최초로 남북한 당국의 승인을 받아 만든 다큐 <조경철 박사의 52년 만의 귀향>이었다. 2000년 국내 방송사 최초로 김일성 광장에서 생방송 뉴스를 했고, 2005년 조용필의 평양 공연을 추진하는 등 대형 프로젝트를 성사시켰다.

1989년 ‘장기수 석방’ 계기 북한 관심
98년 평양 이후 30여차례 방북 취재
99년 첫 남북승인 다큐 ‘조경철’ 제작

‘SBS’ 정년 앞두고 현역 마지막 작품
‘84년생 김정은과 장마당’ 20일 방영
“남북방송문화교류연구소 만들 터”

2005년 10월 평양 공연을 위해 북한 순안비행장에 도착한 가수 조용필(오른쪽)을 인터뷰하고 있는 오기현(왼쪽) 피디.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5·24 조치로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2007년 남북 합작 드라마 <사육신>이 한국에서 방영되는 등 활발했던 교류가 하루아침에 끊긴 것이다. 그도 2013년 언론인이 아니라 어린이 의약품 지원본부 이사 자격으로 북한에 간 게 마지막이었다. “북한과 방송 교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는 등 남북간 화해 무드가 조성되어서다. 남북간 방송 교류가 정치에 종속변수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아쉽다.”

그는 <시비에스>(CBS) 피디였던 1989년 ‘장기수 석방환영대회’를 취재한 뒤 처음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됐다. “6·25 전쟁 무렵 감금돼서 89년 석방된 북한 종군기자를 만났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한반도의 비극을 없애려면 남북간 교류 평화 정착이 필요하다, 방송이 그 역할을 선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북한 관련 방송을 추진할 때 세가지 큰 목표를 세웠단다.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주자. 김일성 광장에서 생방송 뉴스를 하자. 북한 최고 지도자를 인터뷰하자.’ “앞의 두 가지는 이뤘는데, 4·27 남북정상회담 때 도보다리에 앉아 얘기를 나누던 두 정상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니 마지막 소망 역시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4월 남북 예술단 공연도 희망의 불씨를 키웠다. “2002년 윤도현의 북한 공연이 전국에 생중계됐었다. 당시 기존 가수들과 다른 모습에 북한 사람들이 놀랐었는데 방송 이후 그의 목소리나 노래 스타일이 화제가 되어 윤도현은 이후 북한의 스타가 됐다.” 이선희 ‘제이에게’, 최진희 ‘사랑의 미로’ 등 북 예술단이 불렀던 노래들은 대부분 1999년 이후 7차례 대규모 방북공연에서 불러 북한 주민들에게 알려진 노래들이다.

2005년 10월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 앞에서 진행된 <에스비에스> ‘생방송 모닝와이드’에 출연중인 오기현 피디. 사진 에스비에스 제공
그는 “남북 교류에서는 동질성 추구보다 이질성 확인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며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려면 다른 부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차이점을 극복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물꼬를 튼 남북 문화 교류도 시야를 넓히고 장기적으로 폭넓은 사업을 준비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남북간 방송 교류가 공동사업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식으로 광범위하고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면서 덧붙였다. “북한도 장마당 세대의 의식이 다른 것처럼, 우리 젊은 세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외치던 과거 프레임에 맞춰 북한에 접근하면 안 된다.”

그는 북한에서 일방적으로 공연 리허설을 중단시키고, 처음 얘기했던 것과 다른 요구를 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했다. 한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하는 구조 때문이란다. “실무자끼리 협의나, 합의 담보가 불가능했었다. 향후 교류에선 이런 점을 대비한 대안도 마련해야 한다.”

그는 내년에 정년퇴임한다. 현업은 이달까지만 한다. “북쪽 사람들과 일하는 10년간 초 단위로 일정을 기록해 놓는 등 늘 긴장하며 일했다. 북쪽 사람들에게 남쪽에 동지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것은 보람되다.” 이런 말도 했다. “당시 70대였던 조경철 박사와 동생이 만나던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가던 모습이 북한 관련 프로그램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퇴직 후에도 남북방송문화교류 연구소를 설립해 남북간 교류를 위해 계속 애쓰고 싶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