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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8 20:42 수정 : 2018.05.18 20:48

사진 넷플릭스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멕시코 드라마 <후아나 이네스>

사진 넷플릭스

멕시코가 스페인의 통치를 받던 1660년대, 총명한 원주민 소녀 후아나 이네스(아란차 루이스)는 궁정에 들어가 살길을 모색한다. 레오노르 카레토(리사 오웬) 부왕비는 이네스를 보자마자 천재성을 알아보고 궁녀로 곁에 두며 총애한다. 더 많은 지식을 갈망하던 이네스는 부왕 가문의 가정교사를 목표로 삼는다. 하지만 “여자는 무지하게 태어나 무지하게 살아야 남편을 더 잘 섬긴다”는 종교 지도자들의 반대에 부딪히고, 이네스는 가정교사 자질을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학자들 앞에서 시험을 치르게 된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멕시코 드라마 <후아나 이네스>(원제 ‘Juana In?s’)는 위대한 시인이자 페미니스트인 후아나 이네스 수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드라마는 3살 때 이미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20시간 만에 라틴어를 깨치는 등 일찍부터 천재로 칭송받던 이네스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나간 궁정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네스의 세상은 순종을 강요하는 수 겹의 지배질서로 둘러쳐져 있다. 원주민 출신으로 스페인 왕의 명령을 따라야 하고, 절대적 권위를 지닌 교회의 가르침에 묵종해야 하며, ‘무지한 여자’로서 남자를 섬겨야 했다. ‘첩의 사생아’로 태어나 글을 쓰고 지식을 갈구하는 여성 이네스의 삶은 내내 금기의 경계에 서 있다. 여기에 레즈비언 정체성까지 더해져 이네스의 존재 자체가 ‘불순한 이단자’나 마찬가지였다. 이네스가 수녀의 길을 선택한 것도 한 남자에게 귀속되는 아내의 삶 대신 홀로 글을 쓰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택한 것이지만, 그 결과 더 치열한 자기검열에 고통받아야 했다.

<후아나 이네스>는 첫 회부터 소녀 이네스가 가정교사 자격시험을 치르는 에피소드를 중요하게 배치하며 일생 동안 혹독한 검증과 억압의 시선을 통과해야 하는 그녀의 삶을 예고한다. 전원이 나이 든 남성으로 구성된 수십명의 학자들 앞에서 홀로 시험당하는 이네스의 모습은 마치 종교재판을 받는 마녀처럼 비친다. 종교재판소 재판관인 안토니오 누녜스(에르난 델 리에고) 신부가 ‘순종의 미덕’을 말하자, 이네스가 ‘영적 지도자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있다’고 맞받아치는 장면은 드라마에서 가장 통쾌한 순간일 것이다. 뒤로 갈수록 그녀의 시험 상대는 점점 더 거대하고 잔혹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익히 알려진 이네스의 비극적 말로를 극 초반부터 소녀 시절과 교차하는 구성을 통해 시대의 한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성인 이네스(아르셀리아 라미레스)는 끝내 대주교의 분노를 사 글쓰기를 금지당하고 병에 걸린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일직선적 구성을 따르지 않은 덕에 시대와 불화한 여성 특유의 하강식 서사가 아니라 임종 직전까지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었다. 드라마는 그녀의 죽음 뒤에 발견된 수백권의 저술을 언급하며 이네스가 결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그 저술에 “신성하고 세속적인 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지배권력은 불경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가르고 전자를 핍박하지만 그럴수록 되레 권력의 불순함을 증명할 뿐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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