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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7.21 10:59 수정 : 2018.07.21 14:41

1980년 5월 신군부의 광주 학살극이 벌어지던 와중에 고석만은 6·25 특집극 <아베의 가족>을 연출하며 소리 없이 울었다. 1979년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은 전상국의 동명 소설을 김상열 작가가 4부작 대하드라마로 각색해 한-미 현대사에 얽힌 전쟁의 상흔을 드러냄으로써 안방극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만삭 상태에서 미군에게 집단강간을 당한 충격으로 지적장애아 아베를 낳아 끝내는 버리고 이민을 떠났던 ‘어머니’(김혜자)의 토막일기로 드라마가 이어진다, 사진 고석만 피디 제공

1980년 6·25특집극 ‘아베의 가족’
전상국 원작·김상열 극본 ‘4부작’ 연출
“미스터리 형식 한-미 현대사 상흔 추적”

한국전쟁 터져 남편 의용군 나가고
‘만삭 어머니’ 미군 집단강간 당해
팔삭둥이 지적장애아 ‘아베’ 출산
버리고 미국 이민갔던 어머니 ‘운명’
이복동생 ‘진호’ 귀국해 ‘아베 찾기’

‘광주학살’ 터진 5월 중순 첫 촬영
김혜자·최불암·정혜선·정한헌 등 열연

사흘 통산 2500만명 시청률 63%
‘한국방송대상’ TV 연출상 첫 수상

1980년 5월 신군부의 광주 학살극이 벌어지던 와중에 고석만은 6·25 특집극 <아베의 가족>을 연출하며 소리 없이 울었다. 1979년 한국문학작가상을 받은 전상국의 동명 소설을 김상열 작가가 4부작 대하드라마로 각색해 한-미 현대사에 얽힌 전쟁의 상흔을 드러냄으로써 안방극장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만삭 상태에서 미군에게 집단강간을 당한 충격으로 지적장애아 아베를 낳아 끝내는 버리고 이민을 떠났던 ‘어머니’(김혜자)의 토막일기로 드라마가 이어진다, 사진 고석만 피디 제공
[길을 찾아서] 고석만의 첨병 (27회) ‘아베의 가족’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글로 털어놓는다.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 이전 <한국방송> <문화방송> <동양방송> 등 방송 3사의 마지막 6·25 특집극 경쟁도 치열했다. <문화방송>은 간판스타들이 총출연한 <아베의 가족>을 자매사였던 <경향신문>에 대대적으로 광고하기도 했다.
서울의 봄, 우리는 전상국의 중편소설 한편을 만났다. 며칠 밤을 지새워 혼을 불어넣고, 사람들을 살려내고,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를 쏟아 넣자 그 짧은 소설은 곧 거대한 대하드라마가 되었다. 김상열 작가는 빠른 말만큼 글도 빨랐다. 글보다 생각은 더 빨랐고 의식의 흐름은 시공을 초월하며 번득였다.

1980년 6·25 특집 드라마 <아베의 가족>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곧 촬영을 시작했다. 아까시(아카시아) 향기가 풀풀할 때, 그때 광주는 불타고 있었다. 주인공 ‘어머니’(김혜자)가 임신한 몸으로 미군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는 장면을 그릴 때, 광주는 무장 군인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아까시 꽃향기가 창을 넘어온다고 말하면, 디자이너(임수영)는 통째로 아까시나무를 스튜디오에 베어다 놓았다. 카메라(김명균)가 아까시잎 사이를 뚫고 ‘아버지’(최불암)의 창가에 머물 때, 광주의 도청은 적막에 싸여 있었다. 묘령의 여인(오미연)의 손에 끌려 ‘아베’의 흔적을 추적하던 동생 진호가 콧수염을 깎아내는 참회의 의식을 취할 때, 광주의 젊은이들은 등에 박힌 총탄에 죽어갔다. 지적장애아 ‘아베’의 처절한 흐느낌이 동두천 양공주촌의 어두운 우유 박스에서 새어나오자, 대금 소리(김영동)와 함께 이 나라는 모두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아베의 가족> 90분 4부작. 과거를 상기하게 만들어 오늘의 시간을 사로잡는 김상열 작가의 극적 마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된다.

김상열 작가는 원작 중편소설 <아베의 가족>에 혼을 불어넣어 4부작 대하드라마로 재탄생시켰다. 1980년 9월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장 앞에서 함께한 김상열(왼쪽 둘째) 작가와 고석만(맨 오른쪽).
‘숲, 침묵을 깨며 헬리콥터의 강렬한 엔진 소리가 압도하여 오고, 허공에서 무섭게 회전하는 헬리콥터의 날개가 뒤쪽으로 빠지면 지상의 수목을 휘저으며 랜딩. 미군 병사들이 뛰어내린다. 병사들은 포화에 불타는 숲속으로 질주한다. 미군 병사들의 군화들이 마루 위로 뛰어올라 작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간다. 진흙투성이의 군화를 따라서 방 안으로 들어가면 발 사이로 남루한 이불 속에서 병색이 완연한 만삭의 어머니가 누워 있다. 거친 이방인들의 영어가 웃음 섞인 희롱에 싸여 난잡하게 오고 간다. 방바닥에 떨어지는 배낭과 탄띠 그리고 소총들, 군화들이 어기적거리며 포위하듯 어머니의 이불 곁으로 다가간다. 점점 커지는 웃음과 영어의 난무. 대검으로 이불을 찍어 젖힌다. 드러나는 만삭 여인의 투명한 하반신.’

1980년 6·25특집극 <아베의 가족>의 제1부 첫 장면. 만삭의 어머니(김혜자)가 한밤중 시커먼 미군병사들이 들이닥치자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다. 엠비시 제공

1980년 5월, 어둠 속에서 미군 군화들이 대검으로 이불을 걷어젖히자 드러나는 만삭 어머니의 하반신 장면으로 <아베의 가족> 도입부 집단강간을 연출하면서 고석만은 광주를 떠올렸다. 사진 엠비시 제공
‘수술실, 어둠 속의 침묵. 운명 직전의 고통으로 크게 벌리고 있는 입에서 조금 뒤로 물러서면 어두운 공간에서 심호흡으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나타난다. ‘아베’의 어머니다. 허공을 응시한 채 “아베” 발음의 어머니의 입모습에서 정지한다. 운명한 것이다. 스톱모션의 그 얼굴 위에서 미국인 의사들의 영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며 타이틀이 뜬다. <아베의 가족>. 미국인 의사와 간호사들의 시체 처리에 관한 전문용어가 점점 확대되어 들려오고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들과 얽혀 의사 대기실에서 들려오는 아메리칸 풋볼의 중계방송 소음이 덮쳐 온다.’

드라마는 어머니의 일기에서 시작한다.

“여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관계가 있던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 이모의 중매로 결혼을 했다. 그때 나이 21살. 6·25 일어나기 석 달 전 1950년 3월이었다. 시부모님께서 결혼을 서둔 것은 마음에 드는 며느릿감을 놓치기 싫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어서 빨리 손자를 안아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었다. 결혼 생활은 행복했고 시댁에서의 나날은 나에겐 꿈같은 시절이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짧았고 우리는 곧장 헤어져야 했다.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났던 것이다. 남편(최불암)은 전쟁이 일어나자 군대에 지원입대를 하였고, 태극기를 흔들며 고향 잠실의 나루터를 떠난 것이 남편과의 마지막 이별이 되고 말았다. 뱃전에서 손을 흔들며 곧 돌아오겠다고 했던 남편은 내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미 뱃속에 그의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

‘잠실, 긴 뽕나무의 숲. 눈을 가린 지주들 밭고랑에 양손을 땅에 짚고 침묵 속에 앉아 있다. 순간, 한 떼의 새들이 놀라서 허공으로 휘돌아 오른다. 숲속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빠르게 붉은 깃발은 도망치듯 나온다. 숲속으로 헤집고 달려 들어가는 어머니, 치마와 저고리를 펄럭이며 무섭게 뽕나무를 헤치며 전진하여 간다. 카메라, 어머니의 뒤를 쫓아 깊숙한 뽕나무 숲속으로 들어간다. 어머니의 발길이 멈칫하며 멈춘다. 밭고랑에 엎드려 죽어 있는 시아버지(유춘)의 모습. 어머니, 멍청하게 주검을 쳐다보고 있다. 어디선가 다시 매미 소리가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잠실 시댁에서 쫓겨난 뒤 강원도 창말에 있는 친정집까지 사흘 밤낮을 걸어왔지만 친정집은 폐허가 되고 부모님은 멀리 남쪽으로 피난을 떠난 뒤였다. 김성도(추송웅), 그는 뱀을 찾아 돌무덤을 헤치며 돌아다녔지만 마음은 착하고 순박하였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난 아무도 없는 창말에서 죽었을 것이다. 다음해 봄 전쟁이 막바지에 치달을 때 나는 애기(팔삭둥이)를 낳았다. 잉태하고 있을 때 충격과 고통을 당했던… 그… 아베…. 그는 나보다도 애기를 더 귀여워했는데 자기 자식이 아닌 줄 알면서도 언제나 친자식처럼 각별하게 우리 모자에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남편이 살아서 자기 아들을 본다면 얼마나 즐거워할 것인가…. 그는 전사한 것인가? 내 남편 조창배(최불암)…… 한시도 그를 잊을 수가 없었다.”

‘완전히 불에 탄 집터 숯덩이가 된 기둥들의 엉킴과 검은 잿더미에서 피어오른 연기. 전쟁이 몰고 온 허망한 자취 속에서 산발한 시어머니(정혜선)가 잿더미 속에서 기어 다니며 쇠꼬챙이로 무엇인가를 찾으려 뒤적거린다. 잿더미 저쪽에서 차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시어머니 가만히 고개를 돌려 그쪽을 본다. 국군 복장을 한 아들(최불암)이 연기 속에 서 있다. 시어머니는 전혀 감동하지 않는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본다. 눈빛이 정상적인 판단의 초점을 잃고 있다.’

<아베의 가족>에서, 한국전쟁 중에 인민군의 총살로 남편을 잃고 정신이 나가버린 ‘시어머니’ 정혜선(오른쪽)과,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불구의 몸으로 돌아와 은둔해 목각 장인이 되는 ‘아버지’ 최불암(왼쪽)이 열연하고 있다. 사진 고석만 피디 제공
어머니의 독백은 계속된다. 그 토막일기는 큰 강의 바닥에서 긁어낸 수초덩이 쓰레기 같았지만, 개인의 심성이 묻어나면서 대서사를 읽게 했다. <아베의 가족> 주제는 ‘아베’를 통한 속죄, 스토리는 전쟁의 파편, 스토리텔러는 진호와 주혜의 추적기, 미스터리 형식을 유지하며, 한-미 현대사를 구조적으로 깔았다.

“첫애 ‘아베’를 잉태했을 때 당한 무서운 충격과 고통이 가끔 되살아나, 그들의 검정 피가 내 몸에 스며들어 검정 뱀을 낳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의 이름은 ‘아베’로 불렸다. ‘아베’는 나에게 고통의 씨앗이었다. ‘아베’는 내 육체에서 떼어버릴 수 없는 처절한 혹덩어리였고 언제까지 지니고 다녀야 할 증인의 그림자였다. ‘아베’는 먹고 잠자고 우는 것이 전부였다. ‘아베’의 울음소리는 내겐 단죄의 칼날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베’는 짐승의 형상으로 바뀌어 갔고 벌레의 꿈틀거림으로 근육이 일그러져 갔다…. 하늘은 왜 내게 ‘아베’를 주셨을까? ‘아베’가 지네나 송충이처럼 변모해가면 갈수록 ‘아베’에 대한 찐득한 연민의 정은 깊어만 갔다. ‘아베’는 나에게 있어서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될 혈육의 십자가였다. 나는 휴전이 될 때까지 땅꾼 김성도와 일년 남짓 그곳에서 살았다. 그렇게 징그럽던 뱀이… 흉물이 아닌 영물로서 차차 호기심과 어떤 신비한 동물로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나는 땅꾼의 자식 진호를 낳았다. 땅꾼의 자식 진호! 진호.”

‘동두천 양공주촌의 좁은 방. 어머니가 촛불을 켠다. 확 하고 밝아지는 아베의 우리. 얼룩과 곰팡이가 가득한 어두침침한 방. 아베의 울음소리가 쌓여진 장롱 틈바구니에서 들려온다. 촛불을 들고 가만히 다가가서 커다란 우유통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서 눈물과 땀과 땟물이 가득한 아베의 일그러진 얼굴이 노출된다. 허공의 불빛을 향해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외치는 아베의 절규. 어머니, 가만히 아베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손을 놓아버린 어머니. 아베, 아베, 아베…. 그 얼굴과 울음과 비행기 소리를 배경으로 대금의 주제곡 ‘아~베~’가 흐른다.’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특히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아베에게 이 글을 남긴다. 우리 가족은 드디어 출국 비자를 받았다. 내일이면 우리 세 식구, 진호와 동두천에서 낳은 혼혈아 정희와 나는 정희 아버지(흑인 병사)의 주선으로 비행기를 탈 것이다. 거센 운명의 뗏목을 타고 여기까지 흘러온 것이다. 내 목숨은 모질고 길었다. 죽기를 두려워했거나 삶에 대하여 어떤 미련이 있었던 게 아니라 내던질 수 없는 한 가닥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는 남편과 아베를 찾아서 헤맸다. 그러나 남편과 아베는 나타나지 않았다.”

혼혈아 정희와 큐레이터 주혜(오미연)가 미국의 갤러리에서 만나면서 ‘아베의 가족’ 역사가 밝혀진다. 아버지의 목각 작품 하나가 매개가 된 것이다. 은둔의 아버지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어머니의 독백은 계속된다.

“나는 이제 내 갈 곳에 다 왔다고 생각했다. 아베를 찾아 헤매다 지친 나는 상엿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나를 싣고 떠날 꽃상여가 내 곁으로, 점차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내가 만약 이방인 땅에서 죽는다면 누구든 이 편지를 내 남편이나 ‘아베’ 앞으로 부쳐 주기 바란다. 한국의 잠실, 내가 묻힐 곳은 새봉재와 활터거리가 있었던 잠실의 뽕밭이란 걸 밝혀둔다.”

남편(조창배)은 주혜가 건네준 아내의 편지를 들고 있었다. 그는 전쟁의 외상이 너무 깊다. 두 눈과 삼지가 불구 되어 한 손으로 목각을 하고 있는 ‘은둔자 목각 장인’이 되었다.

<아베의 가족>은 6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고석만은 1980년 9월 ‘제7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처음을 ‘티브이 연출상’을 수상했다. 왼쪽부터 엔지니어 김정수, 연출 고석만, 조연출 황인뢰, 탤런트 오미연·오미희, 부인 진경옥과 큰딸 고주연, 성인 아베역을 연기한 탤런트 정한헌 등이 함께 축하했다. 고석만 피디 제공
1980년 9월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 ‘제17회 방송의 날 기념식’과 ‘제7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문화관광부 장관은 이광표, 방송협회장은 한국방송 사장인 이원홍이었다.

4부의 끝자락. 주혜가 진호를 이끌고 남해 낙도에서 ‘아베’ 증인을 만난다.

“삼년 전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 바다에서는 연사흘 해일이 일어났고 태풍으로 양계장과 양돈장의 지붕이 날아갔어요. 닭과 돼지들이 바닷속으로 몰려 들어갔고 ‘아베’(정한헌)는 짐승들을 쫓아 밤새도록 바닷가를 헤맸습니다. 누군가는 ‘아베’가 바다를 향해서 통곡하는 걸 봤다고도 하고 물에 빠진 돼지를 껴안고 어디론가 뛰어갔다고도 했습니다. 태풍과 해일이 잠들고 폐허가 된 막사에 그 뒤부터는 ‘아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베’는 태풍과 해일을 타고 갔다고 모두들 믿었으니까요.”

태풍이 잦아들고 갈매기 울음소리. ‘아베’의 영혼을 달래듯 대금의 피맺힌 음률이 멀리 수평선까지 퍼져나가 남편의 속죄의 독백을 불러온다.

“이제 내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기다린다는 믿음으로 살아온 삼십년의 시간이 한순간에 허물어져 내린다. 이제 나를 정리할 시간이 온 것이다. 기다림의 의지가 부서진 내겐 더 목각을 파헤칠 기력도 목적도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 내가 나를 정리할 수 있도록 한쪽 팔을 남겨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그 한 개의 팔에게 나는 속죄의 칼날을 맡긴다.”

대하드라마 <아베의 가족>을 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원작자 전상국 소설가는 춘천 금병산 자락에 지은 서재의 이름도 ‘아베의 가족’으로 지었다.
원작자 전상국 소설가는 감탄해 마지않으며 “충격적이다. 또 다른 ‘아베의 가족’ 장편 개작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포기하겠다”며 극찬했다.

통산 2500만(시청률 63%) 시청자들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때가 1980년 6월. 전쟁의 파편, 그 상처는 광주까지 껴안으며 소리 없이 울었다. <아베의 가족>. 나에게 최초의 ‘텔레비전 연출상’(1980년 제7회 한국방송대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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