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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01 09:59 수정 : 2018.09.22 14:00

1986년 봄 고석만 연출은 ‘한강종합개발’ 준공을 축하하는 특집극 제작 명령을 받고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갈매기를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를 기획했다. 용비교와 성수대교 일대를 오가며 특수효과 담당 박광남의 지도로 ‘갈매기 연기자’들과 씨름했다. 사진 엠비시 가이드 제공

1986년 5공정권의 한강종합개발 준공
환경파괴 반대론에 ‘축하 특집’ 명령

1년전엔 ‘새마을운동 특집극’ 제작 요구
회장 전경환 ‘고석만 지명’에 거부 ‘파란’

제1한강교 쪽에서 갈매기 한마리 발견
“사람 등장 없이 새만 주인공으로” 영감
‘새박사’ 윤무부 교수에게 ‘생태’ 자문
“시베리아 갈매기들 한강에서 서식중”

속초 ‘잠복’ 한달만에 몇마리 생포 성공
남녀 주인공 ‘갈구와 지혜’ 연기 훈련
수종사 범종에 부딪쳐 울리는 장면 촬영
일본 미니어처 전문가들 포기하고 철수

1986년 봄 고석만 연출은 ‘한강종합개발’ 준공을 축하하는 특집극 제작 명령을 받고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갈매기를 주인공으로 삼은 드라마’를 기획했다. 용비교와 성수대교 일대를 오가며 특수효과 담당 박광남의 지도로 ‘갈매기 연기자’들과 씨름했다. 사진 엠비시 가이드 제공
[짬] 고석만의 첨병 (33회) ‘갈매기 연기자와 씨름한 69일’

<한겨레> 연재 회고록 ‘길을 찾아서’ 21번째 주인공은 고석만 프로듀서다. 1973년 <문화방송>(MBC)에 입사한 이래 그는 30여년간 숱한 화제작을 제조했다. ‘정치드라마의 대부’ ‘스타 피디 1세대’ 같은 명성과 더불어 ‘문제 피디’라는 시비도 따라다녔다. 특히 ‘공화국 시리즈’와 ‘재벌 시리즈’는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환부를 정면으로 드러낸 까닭에 대부분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끝내지 못한 드라마의 숨은 이야기들을 ‘고석만의 첨병’에서 마침내 직접 글로 털어놓는다.

드라마 <갈매기>는 한강종합개발 준공 축하 목적으로 하달된 작품이었지만, 고석만 연출과 김상열 작가는 밤섬 등 환경 파괴로 위협받는 생태계의 위기와 생명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했다. 문화방송 제공

프롤로그 1986년 봄, ‘한강 개발’을 주제로 ‘한강’의 변형과 개발이 갖는 역사적, 현실적 가치가 특집 드라마 속에 부각되어야 한다는 명제가 떨어졌다. 수많은 환경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강 개발’은 감행되었다. 이제 준공을 축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1년 전 ‘새마을운동 특집극을 제작하라’ 전경환 회장이 ‘고석만’을 직접 지명했다. 피했다. 조직에 파란이 일었다. 그 뒤끝이라, 또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신념과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아이템이나 제작을 강요받는 것은 분명 ‘저널리즘 본령’ 위배다.

전두환 신군부의 5공화국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유치를 추진하면서 1982년부터 ‘한강종합개발사업’을 강행했다. 86년 9월 준공을 전후해서는 자연생태계를 파괴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대한 비판여론을 잠재우고자 ‘유람선’ ‘둔치 공원 조성’ 등에 대한 대대적인 홍보 공세를 폈다. <한겨레> 자료사진
한강 다리 밑의 갈매기 한강에서 단 하나의 생명체라도 찾는다면 그건 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아주 절망적인 상태에서 무모한 탐색은 시작되었다. 꽃피는 봄인데 한강은 죽어 있었다. 제1한강교 쪽에서는 재채기가 나왔다. 오늘도 아침부터 흑석동 대학에서 최루탄이 터졌나 보다. 그때, 난간을 스쳐가는 갈매기 한 마리를 보았다. 희뿌연 빌딩숲을 배경으로 밤섬 쪽으로 사라져가는 갈매기의 지친 날갯짓이 한참 동안 슬로모션으로 남았다. 그때 생각났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를 만들어 보자! 영감은 아주 우연히 찰나적으로 떠올랐다. 자유자재로 한강을 조감할 수 있는 시각, 저 갈매기라면 가능할 것이다.

무모한 도전 소설로서도 대단히 우수하고 영화로서도 기막히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 있다. 흥행엔 참패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한 작품이다. <갈매기의 꿈―조나단 리빙스턴 시걸>(1973년·홀 바틀릿 감독). 그 작품이 특집극 <갈매기>의 기획 단계에서 우리에게 힌트를 준 건 부인하지 않는다. “그 녀석들이 10여년 전에 4년 걸쳐 그 정도 만들었다. 우리한텐 4개월밖에 없다. 그러나 못 만들 것도 없다.” 우리 제작팀(연출 고석만, 촬영 김명균, 조연출 이은규)은 열정 하나만 믿고 만용을 부렸다. ‘첨병 의식’의 발동이다.

1986년 특집극 <갈매기> 기획에는 비행사였던 작가 리처드 바크 원작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73년 나온 영화 <갈매의 꿈-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을 참고했다. 국내에서는 80년 5월 허리우드극장에서 <죠나산>으로 개봉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갈매기를 찾아서 바닷새 갈매기가 어떻게 한강까지 왔을까? 경희대 윤무부 교수를 만났다. 3월20일. 한강에서 갈매기가 살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시베리아 갈매기가 몇년 전부터 한강에 날아들고 있다는 놀라운 답변을 해주었다.

3월29일부터, 우리는 윤 교수와 한 팀이 되어 한강 갈매기의 생태계를 확인함과 동시에 촬영 헌팅에 들어갔다. 종합개발의 막바지에 다다른 한강은 처절한 전쟁터와 같았다. 첫날 우리는 한 마리의 갈매기도 보지 못했다.

둘째 날, 용비교 밑에서 갈매기 여섯 마리를 발견했다. 모두 환성을 올렸고, 이 갈매기들이 청계천으로부터 내려오는 음식물 찌꺼기(콩나물, 라면, 멸치 등)를 먹는 모습도 확인했다. 윤 교수도 경이적인 발견이라 평가했다.

셋째 날, 우리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생선 내장을 대량으로 구입해 밤섬 언저리와 용비교 물가에 뿌려놓은 다음 갈매기들이 모여드는 상황을 지켜봤다. 그러나 갈매기들은 뿌려놓은 ‘먹잇감’ 위에서 배회만 할 뿐, 차 안에 숨어 있는 우리를 인지하고 절대 먹이에 접근하지 않는 노련미를 보였다. 가시거리 2킬로미터라는 갈매기의 놀라운 시력에 우리가 잡힌 것이다.

넷째 날, 우리는 밤섬에서 50여 마리의 갈매기를 발견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성수대교 밑에서 갯지렁이 떼를 발견한 것이다. 숙제가 풀렸다. 한강 개발 공사가 시작되면서 강바닥을 모두 뒤엎는 바람에 플랑크톤~갯지렁이~숭어 새끼~갈매기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이 생겨난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댐이 많이 생기면서 바닷물이 역류하는 데도 있었다. 실제로 한강 하류의 물은 짠맛이 돌았다.

갈매기를 주인공으로 작가 김상열을 찾았다. 연출자는 ‘갈매기’를 제시했고, 작가 쪽에서는 ‘갈매기와 소년’을 절충안으로 내놓았으나 결국 순수한 ‘갈매기의 시각’으로만 이끌어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구체적 구상에 들어가 4월12일 초고가 나왔다. ‘시베리아로 이주했던 갈구가 지혜를 찾아 한강에 정착하는, 그들의 역사와 사랑’ 이야기다.

배우를 찾아라 컴퓨터 그래픽(CG)이 없던 시절. 실사와 미니어처의 조합을 시도했다. 그러나 미니어처로는 선회비행과 주행비행은 가능하나 수직비행이나 도보, 표정, 이착륙 동작은 불가능하다. 글라이더의 리모컨을 박제 갈매기에 부착시키는 작업이기 때문에, 걷고 뛰는 것은 물론 날개를 접고 펴는 동작, 물 위를 나는 동작 등 유연하고 아름다운 몸짓들은 전혀 불가능하다. 실사로 전환하여, 갈매기에 할 수 있는 데까지 접근해야 한다. 4월 말이면 철새들의 이동이 막바지에 다다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드라마 <갈매기>의 촬영감독 김명균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아직 없던 시절, 다양한 특수효과로 의인화한 새들의 움직임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갈매기떼를 배경으로 오래 전 한강의 흑역사인 한국전쟁 때 폭격 순간을 재연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촬영 4월21일부터 한 달을 잡고 본격 촬영에 돌입했다. 난지도, 밤섬을 지나 강원도 속초에 진을 치고 닥치는 대로 찍어댔다. 갈매기들은 새벽녘과 석양 무렵 왕성하게 활동한다. 이제 그들의 움직임만 봐도 대략 알 것 같다. ‘지금은 먹이를 찾으러 나서는 사냥길이다. 지금은 하루 일을 마치고 취침하러 가는 귀갓길이다. 급한 일이 있다. 놀러 가는 길이다.’ 그들의 생활과 양상을 어느 정도 익힌 우리 팀은, 초고를 다 익히고 기본 콘티에 들어갔다. 800장 정도의 기본 컷이 나왔다. 무조건 다 외웠다. 갈매기 두 마리가 하늘에서 날다가 한 마리가 선회하며 하강한다. 누군가 외쳤다. “저 그림은 신 넘버 58, 컷 넘버 16에 썼으면 좋겠다.” “아냐, 주인공 갈구와 지혜의 갈등 시작에 넣자.” “그 앞의 컷도 투숏인데 어떻게 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대본과 콘티를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는 것이다. 20분짜리 테이프 50개를 다 찍었다. “하늘이 도울 것이다.”

1986년 사상 처음으로 ‘갈매기 의인화 드라마’를 제작한 고석만(왼쪽) 연출과 김명균(오른쪽) 촬영감독은 “한강에 부끄럽지 않을 작품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도전했다. 사진 엠비시 가이드 제공
생포작전 한 달을 잡고 속초에서 집중 촬영한 우리는 오늘 철수해야 한다. 일주일 전 단골 식당에 방을 붙였다. “갈매기를 생포해 주십시오. 한 마리에 만원꼴로 사겠습니다.” 어부들에겐 미신이 많았다. 술을 사준대도 소용없고 돈을 준다 해도 싫다 한다. 상경 준비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하려는데 나이 지긋한 어부가 나타나, 갈매기를 잡아주겠다 한다. 부둣가 뱃머리에 앉아 금방 잡아 온 큰 멸치를 하염없이 바다에 툭툭 던진다. 양동이로 하나 가득한 멸치를 다 던지자 놀랍게도 갈매기들이 날아든다. 일반 낚시에 미끼를 걸어 내던지자 갈매기가 너무 쉽게 낚인다. 오죽하면 배고팠던 어린 시절, 먹어도 먹어도 껄떡거리는 친구를 ‘횟거리 갈매기’라고 했을까. 순식간에 일곱 마리를 잡아 전해준다. 서울까지의 긴급수송 작전은 조류 전문가 이정우씨가 맡았다. 급히 팬티스타킹을 사왔다. 스타킹의 반을 잘라서 그 속에 갈매기를 넣었다. 신축력 때문에 갈매기가 오금을 못 추스르는 것이다. 예쁘기만 하던 갈매기가 이토록 사나울 줄 몰랐다. 그 녀석들에게 물리지 않은 사람은 우리 팀에 아무도 없다. 가장 사나운 놈은 벌써 부리의 윗부분이 다 까졌다. 우리는 그놈의 이름을 ‘현직’이라고 불렀다. 그때 이미 녹음을 위한 성우 캐스팅을 마친 상태다. 선 녹음·후 편집 방식을 택했다. 배우나 성우의 고정 이미지를 가장 중히 여겼다. 예를 들어 악역에 김현직, 회장에 최불암, 남자주연 갈구에 배한성, 여자주연 지혜는 송도영….

서울에서의 적응훈련 서울에서의 첫날, 그들은 단식투쟁에 돌입한 듯했다. 밤늦게 비타민영양제 ‘삐콤’을 탄 물을 넣어주었다. 자정쯤 가보니 물이 반 정도 없어졌다. 오징어 내장을 잘게 썰어 넣어주었다. 사흘째 아침 일곱 마리 중 다섯 마리가 오징어 내장을 다 먹어 치웠다. 오늘부터 특별외출이다. 라면 상자에 망을 씌워 한강변에 나갔다. 처음엔 푸드덕거리더니 곧 조용해졌다. 발에 피아노선을 감아 두 마리를 내놓았다. 카메라를 장치하고 촬영 준비를 마칠 즈음, 한 녀석이 푸드덕거리더니 잽싸게 날아갔다. 힘이 셌다.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이제부터는 분장차 속에서 재웠다. 처음엔 라면 상자 속에, 다음엔 냉장고 상자 속에, 마지막엔 풀어놓았다. 날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는 자유롭게 움직이며 놀았다. 닷새가 지나자 기름기가 빠지고 동작이 둔해졌다. “자! 지금부터다!”

드라마 <갈매기>의 특수효과 담당 박광남(왼쪽)과 일본 야지마(왼쪽 둘째) 감독이 미니어처 갈매기에 줄을 매달아 고공낙하비행 장면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미니어처팀은 실패하고 돌아갔다. 사진 엠비시 가이드 제공

본격 촬영 우리가 찍고자 하는 장소에 갈매기들을 데리고 가서 두 시간 정도 적응시킨 뒤 촬영하기를 반복했다. 인내가 필요했다. 동작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동작을 기다리는 것이다. 어떤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절묘한 동작이 나오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이 녀석’들을 분장차 밖에 내놓고 5분쯤 지나면 틀림없이 한강의 다른 갈매기들이 하나둘 다가와 우리 위에서 선회한다. 소리도 지른다. 우리는 지상에 있는 훈련새(?)와 하늘을 나는 갈매기를 기동성 있게 번갈아 찍었다. 카메라의 기민성을 최대한 발휘했다. 기묘한 영상이 나왔다. 우리들의 몸짓에 따라 그들은 반응을 보인다. 낚싯줄을 살짝 당기면 앞으로 두 발짝 움직인다. 손수건을 흔들면 놀라서 본다. 우리들이 노래를 하면 두리번거린다. 한 녀석을 건드려 약을 올린 뒤 ‘현직이’를 옆에 보내면 틀림없이 싸운다. 한두 컷을 찍기 위해 우리들은 목이 쉬었다.

미니어처 촬영 제작본부장의 깊은 뜻(?)을 알 길 없지만, 그의 요청으로 일본에서 미니어처 촬영팀 ‘야지마’와 ‘스즈키’가 왔다. 조수와 함께 그들이 들고 온 네 마리의 갈매기 박제는 제작진에게는 성에 차지 않았다. 일본인들에게 우리가 촬영한 일부 편집본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혀를 내둘렀다. “우린 저렇게까지 도저히 못 한다. 일본에서 저렇게 근접 촬영한 리얼 동작을 본 적이 없다. <조나단~>보다 훨씬 좋다.” 그들 특유의 과장과 아부와 계산이 섞인 발언이다. 그들을 불러들인 제작본부장의 체면을 생각하여 다음날 경기도 남양주 수종사에서 미니어처 촬영을 하기로 했다.

[%%IMAGE11%%] ■ 두개의 하이라이트 5월29일 수종사 촬영, 양수리 쪽 북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발 600미터 운길산 중턱에 버티고 있는 절과 잘생긴 종이 무대다. 오늘은 갈매기가 그 평화의 종을 울려 수백 마리의 갈매기 떼를 부르는 클라이맥스 장면, 갈매기가 날아와 온몸으로 타종하는 살신 장면을 찍는 날이다. 지프와 경운기만 오를 수 있는 가파른 산길에 인부 15명이 동원되어 트럭 3대 분량의 소품과 미니어처 거치용 부감대를 올렸다. 부감대를 삼단으로 세우는 데만 일곱 시간 걸렸다. 범종각을 선회하는 5초짜리 한 컷을 위해, 그 가파른 낭떠러지 위에서 우리는 생명을 걸고 촬영을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이제, 훈련 갈매기가 그 대역을 해야 한다. 머리로 종을 쳐야 한다. 날아와 수종사의 큰 종을 친다. 타종 끝에 쓰러지고 만다. 실제로 죽었다. 감동과 울림을 준 ‘평화의 소리’가 북한강변 수종사에서 한강 하류 인천 앞바다까지 울려 퍼지는 장면이다.

[%%IMAGE12%%] 긴 하루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죽은 지혜를 담요로 감싸안고 밤길을 내려오는 가파른 산길에서, 공교롭게 지프가 뒤집혔다.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다. 온 스태프가 로프로 지프를 매달아 자정 넘어 겨우 하산했다. 한 마리의 갈매기는 그렇게 죽고, 일본인들은 한 컷도 찍지 못하고 슬그머니 돌아갔다.

5월30일, 특집극 <갈매기>의 가장 어려운 촬영 장면. 갈구가 어느 집 거실에 박제된 ‘어머니 갈매기’를 발견하고, 유리창을 깨며 들어가는 눈물의 상봉 장면이다. 훈련된 갈매기에 철사 코르셋을 씌워 피아노줄을 매달아 유리창을 통과시키는 영상이다. 명사수의 새총 탄알이 유리창을 0.1초 먼저 깨주면 라인에 매달린 갈매기가 차고 들어가 어미 갈매기와 포옹하는 장면이다. 온 제작진이 초긴장하여 리허설 또 리허설. 숨죽이며 시도, 두번 만에 성공했다. 자정을 넘기며 마지막 장면을 찍었다.

[%%IMAGE13%%]

[%%IMAGE14%%] ■ 에필로그 짐승을 통해 인간의 드라마를 꾸미면서 우리가 얼마나 절실하고 뜨겁게 ‘생명과 평화’의 문화작업을 하고 있는가. 한강은 알 것이다. 무모한 도전 끝에 뜻밖의 반전을 안겨준 <갈매기>. 한강의 갈매기들과 생태계의 모든 미물에게 축복이 있기를 빈다.

기획·진행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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