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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14 20:03 수정 : 2018.09.14 20:16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키딩>

제프(짐 캐리)는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어린이 티브이 쇼를 30년째 진행 중인 스타다. 쇼의 이름을 따서 ‘미스터 피클’로 불리며 어린이뿐 아니라 모든 대중에게 사랑받는다. 하지만 티브이에 비친 밝고 명랑한 그의 모습 뒤에는 불행하고 어두운 개인사가 숨겨져 있다. 1년 전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 필을 잃은 뒤 아내 질(주디 그리어)과는 이혼했고 남은 쌍둥이 아들 윌(콜 앨런)과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고통을 감추고 미소만을 보여주려 안간힘을 쓰던 제프는 필의 1주기를 맞아 그의 상처를 대중 앞에 공개하기로 결심한다.

이달 초 미국 <쇼타임>에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키딩>(Kidding)은 따스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던 중년 남자가 삶의 위기를 겪으며 변화하는 이야기다. 짐 캐리가 주연을 맡고, 그와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협업했던 미셸 공드리가 연출을 맡아 방영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과연 드라마 곳곳에 두 예술가의 개성이 묻어나온다. 잘 만들어진 자신만의 안온한 왕국에서 모두에게 사랑받던 남자의 각성에서는 짐 캐리의 대표작 <트루먼 쇼>가 떠오르고, 사랑스러운 색감으로 가득한 미스터 피클의 왕국에서는 미셸 공드리 특유의 동화 같은 비주얼을 만날 수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삶의 비극을 대하는 드라마의 태도다. 이는 쇼의 제작자 서베스천(프랭크 란젤라)과 제프가 죽음과 이별을 주제로 한 어린이 쇼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자신의 경험을 빌려 아이들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나 공포, 불안 등의 어두운 감정에 관해 이야기해줘야 한다는 제프에게, 서베스천은 쇼의 다정하고 밝은 모습 때문에 모두의 사랑을 받는 거라고 반박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어른들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삶의 어두운 비밀을 목격하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에 대처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제프의 말을 지지한다.

드라마를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개념이다. 회복탄력성은 시련과 실패를 디딤돌 삼아 오히려 더 높이 날아오르는 ‘마음의 근력’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어둡고 비극적인 이야기를 접하지 못하게 하는 어른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드라마의 주인공 제프는 모든 부모의 롤모델이자 아이들의 영원한 스승으로 사랑받지만, 그 자신이 삶의 따스하고 아름다운 면만을 바라보느라 마음 한구석이 어린이로 남은 채 미처 다 자라지 못한 인물이다. 아들의 죽음과 가족의 해체를 계기로, 제프가 그동안 억눌러온 내면의 어둠이 폭발하면서 그의 또 다른 얼굴이 드러나게 된다.

김선영
<키딩>은 배우 짐 캐리 특유의 연기 세계가 압축된 작품이기도 하다. 그동안 맨얼굴에 수많은 가면을 바꿔 써온 짐 캐리는 이 작품에서도 불행한 중년 제프와 사랑받는 스타 미스터 피클의 이중적 얼굴을 오가면서 복합적인 감정을 자아낸다. 그 표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는 드라마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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